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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09월19일18시59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너무 간단하다...첫 바로크 미술


    카라바조의 `마태오 간택'

    나보나 광장 뒷골목의 산 루이지 교회. 바로크 시대에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관 구실을 했던 이곳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술청이 즐비하다. 때는 1600년께. 미술학교 성 루가 아카데미의 병아리 화가들이 떼지어 몰려들었다. 아카데미 학장 추카리가 이끄는 무리였다. 추카리는 어둑한 교회를 곧장 가로질러 한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모든 이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말없이 그림을 뜯어보던 그의 입에서 신음 같은 탄식이 흘렀다. “이건 새로운 미술이야.” 매너리즘 최고의 명성을 거머쥔 화가이자 당대의 미술론을 정리한 대학자 추카리가 두말없이 인정했다는 그림 소문은 그날 저녁 발빠르게 퍼져나갔다. 진원지는 아마 인근 술청들이었을 것이다.

    예수 부름받은 세리 그려

    카라바조. 풋내기 무명화가가 하루 아침에 17세기 예술의 메카 로마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첫차 타고 와서 막차 타고 간다는 말이 있지만, 매너리즘의 막차를 떠나 보내고 바로크 미술의 첫차 운전대를 잡았다. 문제의 그림은 <마태오 간택>.

    마태오가 예수의 부름을 받았다. 성문 어귀를 지나던 예수는 세리를 발견하고 “따르라” 한마디를 던졌다. 13세기 기독 성자전 <황금전설>은 부름을 받은 세리가 눈곱만치도 주저하지 않고 예수를 따라나섰다고 기록한다. 참으로 날랜 믿음이었다. 당장 제자가 된 그는 훗날 제 이름을 딴 복음서를 남겼다. 신의 손 `마누스-테오스'를 줄여서 마태오가 되었으니 제 이름 값을 제대로 한 셈이다.

    꾸밈을 버리고 곧장 본론으로

    추카리가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놀란 건 당연했다. 지금껏 보아왔던 <마태오 간택>은 대개 성문 어귀 왁자한 시장거리 배경에다 올망졸망한 조역들이 깔리는 그림들이었다. 금전 거래가 활발한 시장통이 세리들의 활동무대였을 테니, 화가들은 너나없이 제 깐의 상상력을 뽐내면서 붓의 재간을 다투기 바빴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그림은 한마디로 너무 간단했다. 등장인물과 탁자가 전부였다. 체면치레와 꾸밈 따윈 죄 털어 버리고 곧장 본론을 치고 들어가는 본때 있는 예술이었다. 매너리즘의 늘어진 수사법에 탐닉하던 추카리로서는 눈에서 묵은 비늘이 벗겨지는 듯했을 것이다.

    자연을 바로 퍼 옮긴듯

    자연주의 직필 화법으로 그려진 등장인물들은 마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밑그림 없이 붓으로 자연을 바로 퍼 옮긴 그림이었다. 인물들이 전부 실물대 크기인데다, 그림 속의 빛도 예배소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빛과 방향이 같아서 잡힐 듯한 실감을 더했다. 더군다나 예수를 어두운 그림자 아래 감추어 두고 세리들을 밝은 빛 위로 띄워 올리는 구성도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자를 부르는 예수의 선택보다도 부름에 응하는 마태오의 결단이 더 중요했던 걸까?

    중앙제단 얼굴과 맞추느라 이랬다 저랬다

    카라바조의 자연주의는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붓을 흉내내는 화가들이 로마와 나폴리, 멀리는 위트레히트까지 속출했다. 그러나 정작 간택 그림에서 누가 진짜 마태오인지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탁자 한 복판의 검정 베레모가 주인공이 아닐까 조심스레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등을 돌린 칼잡이를 제외하곤 죄다 한 차례씩 성자의 후보에 올랐다. 누가 진짜 마태오일까?

    <마태오 간택>은 성자의 행적을 기록한 연작 석 점 가운데 하나다. 연작이 전부 한 예배소 안에 전시되었으니 세 그림에서 마태오의 용모와 체구가 제각기 일치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연작 작업과정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

    카라바조가 <마태오 간택>을 주문 받았을 당시, 예배소 중앙 제단에는 네덜란드 조각가 코바르트가 진행하는 대리석 마태오가 거의 완성단계였다. 뒤늦게 합류한 카라바조는 코바르트의 대리석 모델을 따를 수밖에. 세리들 가운데 탁자 한 복판의 검은 베레모가 준수한 대리석 마태오와 빼 닮았다. 추카리도 그가 마태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간택 그림이 의외의 반향을 일으키자 교회측에서는 이미 중앙 제단을 차지하고 있는 코바르트의 대리석 마태오를 치우고 카라바조에게 그 자리를 대신할 제단화를 부탁한다. 만약 이때 카라바조가 제단화에다 대리석 마태오와 닮은 성자를 그렸더라면 훗날 미술사학자들의 머릿기름을 짤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뱃심이었는지 준수한 대리석 마태오와 전혀 인상이 다른 차돌멩이 두상을 그려놓았다. 그렇다면 간택 그림에서는 탁자 끄트머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 젊은 세리가 둘째 마태오다.

    교회측은 실랑이 끝에 카라바조의 차돌멩이 마태오를 거부했다. 성자 치고 너무 꼴불견이라는 이유였다. 공들인 그림이 보기 좋게 퇴짜맞자, 이번에는 무난한 용모의 성자를 후딱 그려서 넘겨주었다. 작업기간은 두어 달 남짓. 교회측도 만족했다. 지금껏 제단 중앙에 걸려 있는 마지막 제단화다. 간택 그림에서는 탁자 귀퉁이에 엉거주춤 서서 안경을 추스르는 중늙은이가 셋째 마태오다.

    한편, 그림 속의 예수를 뢴트겐으로 찍었더니 믿기 어려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의 어깨에 오른팔이 무려 셋씩이나 달려 있었던 것. 중앙 제단 작품이 교체될 때마다 예수는 재깍재깍 제자를 갈아치웠던 모양이다. 한참 곡을 하고 나서 누가 죽었는지 묻는다더니, 미술사학은 지금껏 누가 마태오인지도 모르고 감탄만 했던 꼴이 되었다. 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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