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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09월05일20시11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개선문은 일종의 받침대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

    기원 후 71년 유월의 어느 날 새벽. 로마 근교 마르스 들판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해오름과 더불어 개선식이 시작될 참이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건 한 해 전. 원정군 사령관 티투스는 끝나지 않은 유대 전쟁을 부하들 몫으로 남겨두고 때맞추어 로마에 귀환했다. 황제이자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와 함께 거둔 승리였다. 전리품 수레가 무려 수백 대. 산더미 같은 약탈물과 성전 보물 가운데 팔이 일곱 달린 거대한 황금촛대와 통금으로 빚은 탁자가 행렬의 맨 앞줄에 섰다. 흰털이 눈부신 황소 120마리도 뿔에다 금을 입혔다. 미리 압송해둔 건장한 전쟁포로 700명과 더불어 승리의식의 제물이었다.

    코끼리가 끄는 차 떠받쳐

    병사들은 무거운 군장을 벗고 비단옷을 걸쳤다. 개선수레에 오른 티투스와 베스파시아누스는 자줏빛 홍포에다 누런 월계관을 썼다. 붉게 칠한 개선장군의 얼굴은 피를 뒤집어쓴 아귀처럼 끔찍했다. 악귀가 근접하지 못하도록 해방노예가 수레 뒤에 올라타서 연신 큰 소리로 외쳤다. “기억하라, 너도 한낱 부질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윽고 승리의 우렁찬 합창에 발맞추어 수레 행렬이 기동을 시작했다.

    유대 사제 출신의 요세푸스도 이날의 개선을 보았다. 예루살렘의 치욕과 로마의 영광을 함께 목격한 그의 실감나는 기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로마의 개선식이 어땠는지 별로 아는 바가 없었을 것이다. 행렬의 목적지는 캄피돌리오 언덕의 유피테르 신전. 원정을 떠나기 앞서 승리의 서원을 올렸던 곳이다. 마르스 들판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4km. 강변 야채시장과 가축시장을 거쳐 막시무스 경기장을 관통하고, 로마 공회장을 가로질러 가파른 캄피돌리오 언덕에 이른다. 천천히 걷는다면 서너 시간쯤 소요되는 거리다.

    요세푸스는 “그날 로마 시민 가운데 집에 붙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썼다. 로마 인구는 당시 팔십만에서 백만 가량. 노약자와 필수 치안 병력을 빼더라도 운집한 구경꾼이 오륙십만은 웃돌았을 것이다. 군열에서 울려 퍼지는 쇠북과 피리소리에다 시민들의 연변 환호가 자못 왁자했다. 또 이날만큼은 병사들이 개선장군에게 짓궂은 대거리를 해도 괜찮았다. 예컨대 카이사르가 분에 넘치는 사치행각을 벌이고 미소년을 침실에 끌어들인 일 때문에 부하들에게 낯뜨거운 창피를 당한 것도 개선마차 위에서였다고 한다.

    티투스 사후 신격화

    개선문을 정면에서 보면 네모반듯해서 무척 단조롭고 심심해 보인다. 그렇지만 원래는 청동 코끼리 네 마리가 끄는 커다란 개선 마차가 문 위에 올라가 있었다. 개선문은 그러니까 거대 조각을 떠받치는 일종의 받침대였던 셈이다. 카시오도루스를 들추어보면, 청동 코끼리들은 6세기 중반 이후까지도 건재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티투스는 코끼리가 끄는 개선수레를 탔던 걸까? 개선마차를 꼭 백마 네 필이 끌라는 법은 없다. 27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백마 대신 고트 족과의 싸움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노루 네 마리를 개선 수레에 달고 의기양양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티투스의 개선수레를 정말 코끼리가 끌었다면 “사두마차를 타고 개선했다”는 요세푸스의 증언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개선문 안벽 부조에도 백마 네 필이 마차를 끌고 있다. 무슨 영문일까?

    티투스 개선문은 티투스가 죽은 뒤에 세워졌다. 그의 개선문은 예루살렘 원정에서 거둔 승리의 기록이라기보다 죽은 황제를 위한 추모 기념물의 성격이 짙다. 티투스는 이미 신격화되어서 유피테르의 독수리와 함께 올림포스로 거처를 옮겼다. 죽은 황제의 신격화는 이미 1백여 년 전 카이사르부터 시작된 전통. 그래서 개선문 천장 복판에 승리의 여신 대신 독수리 등에 업힌 황제의 영혼이 새겨졌다. 신성을 상징하는 코끼리들이 개선문 위에 올라섰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술사가

    첫 개선식

    로마시조가 여자뺏기 싸움에서 이기고

    로마인들이 알았던 최초의 개선식은 로마의 창건시조 로물루스가 기원전 753년, 그러니까 창건 첫해에 생각해냈다. 백주에 이웃나라 여성들을 훔친 일이 첫 발단이었다. 시비를 걸어온 아크론과 한판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자 로물루스는 유피테르에게 서원했던 대로 빼앗은 갑옷과 무기를 신전에 바친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이다.

    로물루스는 신과 약속했던 서원을 어떻게 잘 지켜낼까 궁리하다가 시민들에게 그럴듯한 볼거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진영 안에 자라던 굵은 떡갈나무를 베어서 트로피 모양으로 깎은 뒤에 거기에다 아크론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보기 좋게 매달았다. 로물루스는 제 손으로 허리띠를 두르고 숱 많은 머리에다 월계관을 엮어 썼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트로피를 바로 세워 걸치고는 승전가를 부르며 개선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군장을 갖추고 그의 뒤를 따랐고 이들을 맞는 시민들은 놀라움과 기쁨에 넘쳤다. 이날 행진이 훗날 로마에서 거행된 모든 개선식의 시작이자 모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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