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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08월23일15시03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천국문엔 이상하게 천국이 없다


    노성두의 서양미술기행1-기베르티의 `천국문'

    천국 입구에 세워둘 만한 문

    피렌체의 수호성자는 세례 요한. 성 요한 세례당의 동쪽 문이 피렌체의 보석으로 일컫는 천국문이다. 흙투성이 두 발을 지상에 딛고 천국문 앞에 서니 감회가 없을 수 없다. 단테와 조토, 그리고 토스카나의 르네상스를 빛낸 수많은 영혼들이 그 옛날 덜 여문 머리를 기울여 이곳 세례반의 성수에 어린 이마를 적시었다. 적어도 미켈란젤로가 다윗 거상을 시뇨리아 광장에 세우기 전까지는 세례 요한이 피렌체의 으뜸가는 상징이었다.

    천국문에는 이상하게도 천국의 장면이 없다. 애당초 천국문이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청동을 부어 만든 문짝이 완성되고 나서 두어 세대가 지난 뒤 미켈란젤로가 두오모 광장에 서서 “이 문의 아름다움은 가히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둘 만하다”고 찬사를 내뱉은 것이 훗날 황금 문을 부르고 기리는 이름이 되었다.

    천국문을 보면서 꼭 천상의 눈부신 광영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로댕은 지옥문을 구상하면서 이탈리아 여행길에 눈여겨 보았던 천국문을 떠올렸다. 로댕이 문 위에 서 있는 예수와 세례 요한 그리고 세례 사건을 증언하는 천사를 치워두고 그 자리에 그림자의 악령 셋을 올려 둔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또 반듯하게 구획된 구원사의 기록을 지우고 깔때기의 형상으로 암울하게 소용돌이치는 지옥의 계단을 새겨둔 다음, 비극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시인 단테를 생각하는 사람의 우울한 자세로 앉혀 두기도 했다.

    아침 여덟시. 관광객이 꽤 붐비는 절기인데도 광장은 아직 적막하다. 부지런한 비둘기 몇 마리가 포석 틈에 낀 아침거리를 찾느라 덜 깬 울음소리를 낸다. 도심의 비둘기들이 으레 그렇듯이 빠알간 발가락이 성치 않은 놈도 눈에 띈다. 걸음을 조심하면서 천국문에서 몇 발짝 물러서니 팔각형 세례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성당이 조금 비켜 서 있었더라면 천국문이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맞았을 시각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대성당의 그림자에 가리워서 하루 종일 햇빛을 제대로 못 받는 세례당을 보고 안타까운 나머지 커다란 수압 기중기를 사용해서 세례당를 들어올리고 그 아래 높직한 기단부를 받쳐두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지는 않았다. 또 기베르티와 매사에 경쟁관계에 있던 브루넬레스키가 구경꾼들이 둘러선 가운데 이곳에서 르네상스 최초의 원근법을 시연해 보인 일도 잘 알려져 있다. 대성당 중앙 정문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간 위치에서 몽당연필처럼 생긴 팔각 세례당 건물과 주변 광장을 내다보면서 미리 그려둔 그림과 눈앞에 펼쳐지는 실제 풍경을 비교해 보이자 사람들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로써 원근법의 과학이 자연의 솜씨와 기량을 겨루게 되었다. 천국문을 구워내기 불과 몇 해 전 일이다.

    기베르티는 천국문을 열 구획으로 나누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부터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만남까지 구약 이야기를 활기찬 부조로 옮겼다. 앞서 완성된 세례당의 다른 문짝들과 비교하면 부조 그림이 들어차는 바깥 틀이 한껏 넓어졌다. 마치 투명한 창문을 통해서 툭 트인 풍경을 내다보는 느낌이다.

    기베르티는 부조를 새기면서 공간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회화적 원근법을 실험했다고 한다. 잠든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를 창조하는 첫 그림도 일품이지만, 둘째 그림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더 실감난다. 밭을 가는 아벨과 양떼를 치는 카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멀리 산꼭대기에 제단을 차린 두 형제가 번제를 올리는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중앙에는 카인이 지팡이로 아우를 쳐죽이고, 왼쪽 상단 귀퉁이에는 늙은 아담과 하와가 대낮의 비극을 눈치채지 못한 채 오두막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이 그림에서 압권은 아무래도 오른쪽 하단에 지팡이를 짚고 선 카인이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야훼의 물음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잡아뗀다. 지팡이에 묻은 붉은 피가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제법 삿대질을 해가며 둘러대는 모습이 여간 뻔뻔스럽지 않다. 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어서 동그란 뒤통수만 반질반질하게 보인다. 인간과 신의 만남이 이처럼 부끄러운 거짓과 수치스런 자책을 동반하게 된 것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기 전 아담과 하와도 그랬다. 카인의 먼 후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르네상스의 원년을 살았던 조각가

    기베르티는 자신의 초상을 청동문 테두리 장식에 얼핏 숨겨두었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들은 금세 알아보았다. 밋밋하게 벗겨진 머리, 두툼한 눈매와 강고한 콧날은 성서의 다른 인물들과 너무 판이한 인상이어서 아무리 조그맣게 만들었어도 눈에 띄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조각가가 성서 이야기 한 귀퉁이에 자신의 실물 초상을 끼워둔 것은 무슨 심사였을까? 창조된 작품 못지 않게 작품의 창조자도 기억되어야 한다는 뜻일까?

    물론 작가 자신이 성서의 진실을 목격하고 증언한다는 선언적 이유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익명을 아름다운 미덕으로 간주했던 앞선 시대의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이런 건 전혀 새로운 사상이다. 기베르티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살았다. 천국문은 성 요한 세례당에서 그가 맡아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은 피렌체 양모조합의 의뢰를 받고 완성한 북쪽 문. 1401년에 청동문 공모가 처음 내걸렸다. 이 해를 우리는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친다.

    노성두씨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해 쾰른대에서 서양미술사, 고전고고학, 로만어문학 등을 두루 공부한 미술사가다. 이미 <보티첼리가 만난 호메로스> <천국을 훔친 화가들> 등 충실하고 맛깔진 저서로 국내 출판계에 이름을 알렸고 <알베르티의 회화론> <정치적 풍경> 등 십여권이 넘는 중요 미술이론서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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