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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16(수) 18:02

서울 도심에 개신교 1호 명상원 연 씨알수도회


지난 14일 저녁, 서울 남대문시장을 굽어보는 회현동의 한 빌딩 사무실. 저마다 일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수녀님도 있고, 천도교 교도도 있고, 이슬람 선교사와 신도도 있었다. 여덟 평 남짓한 다다미방은 40-50 명의 사람들로 빼곡이 찼다. 저녁 7시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작은 공간에 종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예불 시작을 알리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한다는 법당의 쇠종과 비슷했다. 종소리가 여운만 남길 때쯤 명상용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개신교 1호 명상원은 도시의 가장 번다한 곳에서 그렇게 문을 열었다. 소란의 한 가운데서 소란을 감싸는 더 큰 침묵을 추구하며, 탐착의 삶 한 가운데서 ‘네 안에 있다’는 영성의 회복을 추구하겠다고 나선 곳이다. 이름조차 예수의 진리(도)가 꽃 피어나는 정원이라는 뜻의 ‘예수도원’이다. 이 정원의 가꿈이는 씨알수도회다. 10여 명의 개신교 여러 교단의 목사이거나 신학생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3년 전부터 개신교에 영성수련의 전통을 뿌리내리는 씨앗이 되고자 각자의 일터와 매주 모임에서 영성수련을 해온 이들이다.

개신교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알 수 없는 ‘방언’으로 악을 써가며 기도하고, 거리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위협하고, 다른 종교를 미신으로 매도하는, 외향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다. 불상 훼손 등 다른 종교의 상징물에 대한 파괴는 이런 이미지를 더욱 굳게 했다. 심지어 단군 등 신화적 상징에까지 공격성은 발동됐다. 게다가 미국의 부시 정권이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다른 종교권에 대한 침략전쟁의 전통은 이런 뿌리깊은 공격성을 실증해 보였다. 때문에 이들은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부정하고, 내면의 영성을 불신하는 듯했다.

그러나 씨알수도회 회원들은 개신교에 영성수련의 전통이 실종된 것이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톨릭의 교권주의와 이로 인한 폐해를 비판하며 독립해 나올 때 이 전통마저 외면했던 탓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 개신교의 경우 보수적이고 공격적인 미국식 개신교가 압도적으로 밀려오면서 전통의 흔적마저 사라졌다. 유럽 개신교에는 떼제공동체(프랑스) 마리아슈베스터(독일, 마리아자매회) 등 양적으로는 보잘 것 없지만 수도원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비움·밝힘·고요·하나됨으로
자기안의 하나님 드러내는 삶

물신숭배의 경향마저 보이는 한국 개신교(혹은 미국 개신교)의 문제는 이런 영성수련의 포기에서 비롯된 바 크다고 이들은 믿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만큼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우참나(진아) 혹은 불성과 같은 의미다. 그러나 이 형상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기고 그 가르침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면서 감추어지고 숨겨졌다. 세속적 탐욕을 비워 이 형상을 밝게 드러내는 것이 수도의 목적이다. 이 드러냄은 안으로는 부단한 명상과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밖으로는 평화운동이나 사랑실천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씨알수도회 이끔이 김진 목사는 이것을 됨의 영성, 함의 영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렇게 내 안의 영성을 회복할 때 자연계에 충만한 신의 기운 즉,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살게 하는 힘을 되살릴 수 있다고 씨알들은 믿는다. 그것은 이 땅을 사랑과 평화로 채우는 힘이다.

이들은 월요일 저녁마다 함께 모여 여러 종교의 다양한 수련법에 따라 제 마음의 거울을 닦아왔다. 모임을 비움(虛) 밝힘(明) 고요(靜) 하나됨(一)의 날로 나누어, 각 날마다 침묵 속에서 비움 또는 하나됨의 명상을 한다. 이끄는 이의 인도에 따라 기도문을 봉송한다. 성경 한 구절 주제로 말씀의 명상에 잠긴다. 명상의 내용을 서로 나누는 영적 대화를 한다. 이른바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이다. 기도한다. 이어 1주일간의 생활을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기쁨과 슬픔의 일, 반성과 성찰의 경험, 하나님의 체험 등을 서로 나눈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한다.

“개신교=배타적·공격적”이미지 비판적 성찰 통해 수련전통 복원
“나눔없는 화해·대화 불가능”6대 종교 아우른 영성공동체 꿈꿔

가톨릭 수도원의 영적 기도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렉시오 디비나는 가톨릭 수도원의 전통적인 수련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허명정일(虛明靜一) 명상은 옛 선비들이 공부할 때 정신을 맑게하고 온전히 한 곳에 집중하도록, 기운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다만 비움은 가난, 명은 헌신과 봉사, 정은 반성적 묵상, 일은 하나됨 즉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하나됨의 개념으로 확장했다.

씨알기도회는 궁극적으로 함께 살면서 나누고 섬기며 일하고,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생활, 신앙, 영성수도회를 추구한다. 가톨릭 수도원과 유사하다. 나아가 가톨릭 수도원, 불교의 선원, 원불교의 교당 등 6대 종교 영성수련자들이 함께 사는 영성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각 종교가 함께 노동하고, 영성도 함께 나누는 전혀 새로운 공동체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종교간 영성의 나눔이 없이는 궁극적인 화해와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이 꿈의 바탕이 되었다. 예수도원의 영성프로그램에는 유교, 가톨릭 이외에 불교의 위파사나, 요가 명상 등이 포함돼 있다. 개원식에선 터키 무슬림들이 이슬람 신비주의 명상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베리아 수녀는 “더 깊은 침묵과 단순함으로 참생명의 씨알이 되어달라”고 축원했고, 이슬람 선교사 파룩 이뎀은 “영성이 더욱 깊어지고 거룩해져, 종교간 평화를 이루는 씨알이 되기”를 기대했다. 씨알들은 ‘우리 안의 평화, 온 우주의 평화’라는 노래로 화답했다.

개신교에서 공동체운동을 펼친 사람은 안병무 목사다. 유신시절 민주화투쟁의 신학적 근거였던 민중신학을 정초했던 이다. 50년대 기독교개혁운동에 나설 때부터 그는 영성회복과 공동체 생활에 주목했다고 한다. 서울 향린교회는 안 목사의 이런 생각에 따라 가족공동체로 출범했다. 향린교회는 60년대 한국의 첫 개신교 수도원 공동체인 향린원을 꿈꾸며 경기도 용인 수지에 땅을 구입하기도 했다. 비록 이 공동체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안 목사를 따르던 몇몇 여성 신자들은 신앙공동체인 디아코니아 자매회를 만들었다. 종신서원한 이들로 이루어진 자매회는 사회적 헌신과 지극한 영성생활로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02)755-4187.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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