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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책과 사람 등록 2004.12.24(금) 15:00

“지복은 덕의 보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이 말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1989년이었다. 매호의 발간이 글자 그대로 전쟁이었던 월간 <노동해방문학>에 실을 글을 준비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마르크스 저작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다림 속에서 발간된 <마르크스·엥겔스의 문학예술론> 220쪽에서 본문보다 작은 인용문체로 인쇄되어 있는 “행복은 덕행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덕행 자체인 것이다”라는 글귀를 읽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참으로 드문 안정감과 자유로움이었다.

그것은 스물 한 살의 청년 마르크스가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노트하다가 적어놓은 스피노자의 말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책을 펼쳐보니 형광펜으로 그은 밑줄 옆에 ‘우리 시대의 유일한 덕행은 혁명이다’라고 플러스펜으로 내가 쓴 메모가 보인다. 아마도 위 경구를, “세계의 창조자가 되려 하지 않는 사람의 영혼은 저주를 받은 것이다”라고 해석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옮겨 적은 것이 아닐까 싶다. 20세기의 거의 끝에 이르러서야 나는 스피노자를 읽으며 이 경구가 <윤리학>을 총괄하는 정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정리의 증명에서 ‘지복은 고귀하지만 힘들고 또 드물다’고 덧붙이고 있다. 아마도 지복이 삶을 보상의 체계에 종속시키는 힘들과의 어려운 싸움을 수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스피노자의 경구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역사 속에서 혁명적 지복의 체험이 드물지 않으며, 돌아보면 그 체험이 매일매일의 삶까지도 이끌고 있다는 느낌인 것 같다. 조정환/갈무리 출판사 주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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