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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19(금) 16:58

충실히 복원된 니체의 삶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레지날드 홀링데일 지음, 김기복·이원진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2만4000원

더 생생히 다가오는 사유세계

한때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의 저작은 철학이라기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인생론 작품으로 유통됐다. 실존주의 바람을 타고 들어온 니체는 ‘초인사상’이니 ‘권력의지’니 하는 모호한 개념으로 실존의 비의를 설법하는 광기의 현자처럼 보였다. 니체가 아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프랑스 탈근대 철학이 알려진 뒤의 일이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같은 일군의 철학자들이 구축한 사상의 바탕에 니체 철학이 깔려 있음을 알고 ‘니체 다시 읽기’가 번진 것이다. 니체 이해를 돕는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가운데 니체를 아는 데 길잡이 노릇을 할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니체 전기에 관한 고전적 저작인 레지날드 홀링데일의 <니체, 그의 삶과 철학>이 니체의 사상을 그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다.


△ 욀스키제 폰 한스 올데가 1899년에 그린 병상의 니체(위 사진). 가브리엘레 로이터는 그즈음 니체를 만나고 나서 “이처럼 위대하고 불행한 영혼이 여전히 저 유폐된 육체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들 알 수 있겠는가?”라고 격앙된 감정을 글로 썼다.

홀링데일의 니체 전기는 1년 전에 우리말로 나온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와 여러 측면에서 대비를 이루고 있어서, 서로 비교해 가면 읽어볼 만하다. 홀링데일의 <니체>는 전형적인 전기 서술 형식을 따라 주인공의 삶과 철학을 서로 엮어 보여주다. 삶은 삶대로 보여주면서 철학의 변모와 진화를 그 위에서 서술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자프란스키의 <니체>는 그의 생애는 가능한 한 압축해 건너뛰면서, 철학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가령, 자프란스키는 니체가 관능적 쾌락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억눌렀음을, 음악이야말로 니체가 누린 최고의 쾌락이었음을 그의 ‘사창가 경험’에 대한 편짓글을 소개하는 것을 통해 설명한다. 반면에 홀링데일은 우연히 마주친 사창가 풍경에 놀란 니체가 가까이 있는 피아노로 달려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안정을 찾았다는 그 편지 내용을 곧이곧대로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니체가 사창가에서 매독을 얻었으며, 그것이 훗날의 발광과 죽음의 원인이 됐다고 설명한다.


△ 니체와 루 살로메와 파울 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던 1882년에 만나 살로메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했다.

니체가 출간한 책·편짓글 통해
그의 삶 세밀히 보여주고
그 바탕위에서 사상체계 서술
‘실험주의적 철학 방법’을
니체의 가장 중요 지점으로 꼽아

또 자프란스키는 니체 사상을 철학사의 계보 속에서, 철학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홀링데일과 차이를 보인다. 자프란스키의 책에는 니체가 한때 열광했던 쇼펜하우어는 말할 것도 없고, 칸트·헤겔 같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수시로 등장할 뿐더러 사후의 영향도 사상사적 차원에서 길게 서술하는 데 반해, 홀링데일은 니체의 저작으로 바로 들어가 뒤엉킨 실타래 같은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서 강점을 보인다. 특히, 홀링데일은 자신의 <니체>를 준비하던 1960년대 초에 영향력이 컸던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데, 하이데거가 니체의 미발표 유고에서 니체 철학의 진수를 발견한 것을 놓고 ‘하이데거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니체’일 뿐이라고 말한다. 니체를 알려면 그 자신이 직접 출간한 책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것이 홀링데일의 믿음이다. 이 번역본의 판본으로 쓰인 1999년판에서도 홀링데일은 몇 가지 전기적 사실을 변경하는 것말고는 초판본(1965)의 해석을 그대로 따른다. 그 30여년 사이에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한 대신 니체 안에 있는 정치적 좌파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고, “실존주의자 니체를 뒤이어 해체주의자 니체가 나타났”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는 것이다.

홀링데일이 주목하는 철학자 니체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실험주의적 철학 방법’이다. 니체의 철학은 때로 야수적 비도덕성을 보여주고, 때로는 스스로 상반된 주장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유의 실험을 그 극한에까지 밀어붙여 모든 것을 의심과 부정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진정한 탐구자는 자신의 물음이 가져올 결과에 상관없이 질문을 하는 사람일 아닐까?” 사유의 전투에 나선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파고들어가 모든 가치를 때려부수고 그 잔해에서 권력의지를 발견하며, 그 권력의지를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자기를 극복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된 자들, 곧 초인의 상을 찾아낸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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