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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0.15(금) 17:44

당대 현실의 눈으로 본 과학·과학자


△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 과학에 크게 취해/ 막스 페루츠 지음·민병준 장세현 옮김/ 솔 펴냄·각권 1만원

노벨화학상 수상자 페루츠 에세이집
하버·사하로프·파스퇴르 등 삶과 업적
그 시대 정치·사회속에 살펴

1962년은 노벨상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입증한 해였다. 리얼리즘의 대표작가인 존 스타인벡이 문학상을, 디옥시리보핵산(DNA)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m슨이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를 노벨상이라 할 때, 1962년은 그 전범이었다.

당시를 기록한 사진이 남아 있는데, 연미복의 수상자들 가운데 가장 겸손한 자세로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어 오히려 두드러진 인물이 하나 있다. 영국의 화학자인 막스 페루츠(1914~2002)다. 그는 단백질의 구조를 푸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사용해 헤모글로빈의 작용방식을 알아낸 공로로 그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페루츠의 이름은 존 스타인벡은 물론 윗슨과 크릭에 비해 덜 친근하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도도한 존 스타인벡의 문학과 야심만한한 윗슨·크릭의 과학을 아울러 62년 노벨상의 기념비적 순간을 대표할 자격이 바로 페루츠에게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도서출판 솔이 생전에 남긴 그의 과학 에세이를 두 권으로 묶어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와 〈과학에 크게 취해〉로 냈으니, 이제 우리도 그의 세계에 발을 담가볼 수 있다.

두 쌍의 나선형으로 배열된 헤모글로빈 분자처럼, 이 책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나선형 구조로 이뤄져 있다. 두 책은 수십명의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 및 중요한 과학적 사건들을 톺아보는데, 이를 잇는 고리는 그 자신이 위대한 과학자인 페루츠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과학자와 과학적 논쟁을 제각각 이해하는 동시에, 페루츠의 과학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셈이다.

또다른 매력은 그 과학의 세계가 ‘인격’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페루츠는 거의 예외없이 탁월한 과학자들의 생애를 당대의 정치와 사회 속에서 드러낸다. 허점투성이인 인격을 깊은 연민과 함께 드러내는 솜씨는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과학 연구의 실체를 설명하는 문장에선 냉철한 과학자적 풍모가 번뜩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과학을 통해 세상을 향해 발언한 과학자들이 당대의 역사와 어떻게 불화하고 때로 화해했는지를 살피는 안목에 있다.

그러니까 페루츠의 에세이는 과학을 빌려 20세기 인류문명을 논쟁적으로 고찰한 열매다. 독일의 프리츠 하버, 러시아의 안드레이 사하로프, 영국의 윗슨과 크릭, 프랑스의 파스퇴르 등이 여기에 등장하고, 전쟁과 과학, 인권과 과학 등의 무거운 주제들이 과학자의 삶을 엮는다. 이를 통해 페루츠는 그 자신의 말처럼 과학은 결코 조용한 삶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한다. 취업을 걱정하는 이공계 대학생만 있고, 역사와 인간을 고뇌하는 과학자가 드문 우리에게 페루츠는 과학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소중한 실마리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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