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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0.01(금) 17:45

폭력은 피할수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


△ 휴머니즘과 폭력/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음·박현모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1만5000원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왼쪽 사진)는 현상학에 기반해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를 결합한 인물이다. 그는 같은 철학적 노선을 걸었던 장 폴 사르트르와 함께 1945년 〈현대〉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에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소련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적 행태를 중심으로 하여 ‘공산주의 문제’를 논평하는 에세이를 연재했다. 그 연재물을 수정·보완해 1947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 〈휴머니즘과 폭력〉이다.

연재할 때 이미 갖가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휴머니즘과 폭력〉은 정치적 폭발성이 큰 문제를 건드린 만큼 출간 뒤 뜨거운 반응에 휩싸였다. 메를로퐁티 자신은 이 책을 기점으로 하여 정치철학자의 대열에 합류했고, 후대에 ‘현상학적 정치철학’이라는 주제를 던진 셈이 됐다.


냉전 여명기 공산주의에 관한
철학자 메틀로퐁티 에세이 모음
'모스크바대숙청' 내재적 관점서 접근
'혁명의 변질' '방어적 폭력' 모두 인정
한국전쟁 뒤 스탈린주의와 결별

그에게 이 책의 에세이들을 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그즈음 프랑스에서 출간된 〈한낮의 어둠〉이라는 아르투르 쾨슬러의 소설이었다. 독일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가 1937년 스탈린의 ‘모스크바 대숙청’에 환멸을 느껴 탈당한 쾨슬러는 이 소설에서 니콜라이 부하린을 비롯한 옛 볼셰비키 혁명가들을 ‘반혁명죄’로 처형한 ‘모스크바 재판’이 지닌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드러냈다.

메를로퐁티는 이 소설의 기본 관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뭔가 불충분한 점이 있다고 보았고, 좀더 본질적인 차원으로 들어가 ‘정치와 폭력’의 문제를 따져보려 했다. 〈휴머니즘과 폭력〉은 그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메를로퐁티는 폭력에 대한 일방적 비판도 일방적 옹호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지각의 현상학’ 혹은 ‘몸의 현상학’에 입각해 ‘폭력’을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로, 다시 말해 불가피한 문제로 인식한다. 정치 행위에서 인간은 ‘폭력 없는 순수’와 ‘폭력 행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폭력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본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폭력은 대화나 설득을 통해 타자를 자신의 의지에 귀속시키는 행위까지를 포함한다. 폭력은 운명적 조건이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산파로서) 폭력을 공공연하게 옹호한다는 점에서, 폭력 위에 서 있으면서도 폭력과 무관한 체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위선에 비하면 차라리 정직하고 현실적으로도 올바르다. 다만 마르크스는 모든 폭력을 용인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도움을 주는 한에서만 폭력을 허용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적 폭력’은 ‘야만적 폭력’을 ‘인간적 폭력’으로 대체하는, 다시 말해 폭력 자체를 지양하는 폭력이었으며 휴머니즘적 미래를 향한 폭력이었다.



[사진설명]권력을 틀어쥔 이오시프 스탈린은 진실을 조작하기도 했다. 1939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실린 왼쪽 사진의 오른쪽 인물(비밀경찰 총수)이 ‘우익분자’로 몰려 42년의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가 저지른 정치적 폭력을 내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메를로퐁티는 후에 “혁명은 운동일 때에만 진실이고 정권이 되면 거짓이 되고 만다”라며 스탈린주의와 완전히 결별한다.

그런 관점 위에서 메를로퐁티는 과연 스탈린의 ‘모스크바 대숙청’이 용납할 만한 것인지를 따져들어간다. 분명히 스탈린이 저지르는 폭력은 1917년 러시아혁명 때의 폭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메를로퐁티는 정치적 반대파를 처형하는 행위에서 혁명의 후퇴, 혁명의 변질을 목격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스탈린의 이 행위가 2차대전 직전 위기의 상황에서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행하는 ‘방어적 폭력’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도 인정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어떤 면에서 공산주의자들도 옳고 그 반대자들도 옳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한다.

이런 판단의 딜레마는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유의 원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진정한 자유는 타자를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파악하고 자유를 부정하는 이론조차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이해’하기 전에는 ‘판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스탈린주의를 내재적으로 이해함으로써 판단하려는 그의 태도가 시비를 명쾌하게 가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메를로퐁티는 1950년 한국전쟁이 난 뒤 이 전쟁을 스탈린의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으로 이해하고는 스탈린주의와 완전히 결별한다. 혁명이란 운동일 때에만 진실이고 정권이 되면 거짓으로 떨어지고 만다고 그는 말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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