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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9.17(금) 18:09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 윤성희/소설가

시인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나는 그 시집을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샀다. 내가 사는 ㅅ시에는 ‘경기서적’이라는 오래된 서점이 있는데, 2층의 시집 코너에서 최승자의 시집을 발견했다. 똑같은 디자인의 책들이 쭉 꽂혀 있는 게 신기했고 그 중 한두 개를 빼어 보다가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라는 구절을 읽게 되었다.

그 후, 그 시집을 나는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이십대를 같이 통과했던 내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산다. 우리들은 자주 만나서 수다를 떤다. 시가에 대한 불만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떡여주기도 하고, 어제 본 드라마 내용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복잡한 과거사에 얽매인 남녀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내가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내가 ‘진부함’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다. 친구들과, 가장 허물없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3년 전에 묻어두었던 부적을 나는 다시 꺼내본다. 나는 그 문장을 진정으로 가슴에 품어본 적이 없었음을 지금에 와서 깨닫는다. 사람은 고독 속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내 안 깊은 곳에서 상처를 받고 내 안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싶다. 내가 진부하게 느껴진다고? 그렇다. 갈 길이 아직 먼 것이다. 아직 상처가 적은 탓이다.

윤성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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