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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8.13(금) 15:22

“너무 꾸미지 말아라, 너무 이쁘게 그리려 말아라”


참으로 바쁘게 살아 온 터이다. 어떤 목적이 있거나 딱히 뜻을 세운 것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뛰어온 것은 사실인 것같다. 물론 여러모로 부족한 탓에 결국은 아둥바둥 헤쳐 나온 것 일 뿐이지만. 어렸을 적 읽었던 책 한 구절조차도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와 약속에 밀려나 이미 저 만치 물러 난 지 오래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내 영혼을 울린 한마디”를 떠올린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내 삶을 돌아 보건데 이런 말 한 마디조차도 떠 올 릴 수 없는 척박한 삶을 살아왔던가. 고민하던 도중에 문득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떠올랐다. 예비 미술학도들을 지도하시면서도 화가로서의 꿈을 접지 않고 정진하시다가 꿈을 펴보기도 전에 지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의 “너무 꾸미지 말아라, 너무 이쁘게 그리려 하지 말아라”라는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있는, 보이는 그대로 그리라는 말씀이셨다. 하지만 그 말씀을 따라보면 그림이 폼이 나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의 진실을 포착하라는 말씀의 뜻을 새긴 건 십수 년이 지나서였다. 어느 작가의 개인전을 열심히 준비할 때였다. 문득 내가 작가보다 더 흥분해서 작가의 작품과 삶을 꾸미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선생님의 한 마디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 누군가에게 “영혼을 울릴 한마디”를 해 줄 수 있을까. 아,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고 이젠 나를 꾸미려 했구나.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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