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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2.26(금) 19:25

기독교 세계에 남겨진 ‘오컬트’의 무늬


헬레니즘·헤브라이즘에 억눌린

마녀·마법사 등 신비주의 이야기

17세기의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굶어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3차 방정식을 발견할 정도로 대단한 수학자였던 그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또다른 정체성은 전문적인 ‘점성학자’였다. 어느날 별점을 치다가 그는 자신이 죽는 날짜를 알게 됐다. 점성학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별점에 나온 대로 일흔다섯살에 굶어 죽었다. 그의 죽음이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 역시 운명의 서에 적힌 대로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의 삶을 지배했던 중요한 원리가 이단처럼 무시되고 마법의 영역에나 속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점성술이었다는 점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세상에는 꼭 한가지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서양 문명 역시 ‘기독교’란 빛만, 또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란 주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 그 반대의 흐름도 분명히 한 축을 형성해 문명을 구성하고 지탱해 왔다. 천사의 반대편에 악마가 있었고, 천문학과 함께 점성술이 존재했으며, 기도의 대척점에 마법의 주문이 이어져온 것이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바로 비학, 또는 비의라는 뜻의 ‘오컬트’(Occult)다.

책은 바로 이 오컬트에 대한 종합 교양서랄 수 있다. 마법사와 마술, 메피스토펠레스와 벨제P 같은 악마들, 빙의와 강신술, 그리고 사랑의 묘약까지. 그리고 서양의 다양한 점술과 점성술, 타로카드와 관상학, 면상학(얼굴 주름을 보고 성격과 운명을 읽는 학문)…. 오컬트는 자연의 미스터리를 들추어내는 또다른 과학이자 철학이기도 했다. 세속의 인식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갈구는 늘 인간 마음속에 있었고, 그 속에서 오컬트는 자연스럽게 등장해 당시 사람들의 삶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앞서 말한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죽음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오컬트를 억압하는 그리스도교 등의 주류가 강해질수록 마법과 신비주의, 비학의 의지도 커져갔다. 이런 흐름이 서양문명에 다양한 무늬를 남겼고, 책은 그 사례들을 골라 모아 소개한다. 사실 이런 오컬트의 흔적들은 서구 문화의 홍수에 빠져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 됐다. 마녀 ‘세이렌’이 들어 있는 커피숍 ‘스타벅스’의 로고를 마주칠 때에나, 또는 영화 〈해리포터〉나 〈드라큘라〉를 볼 때 우리는 이런 비교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책은 이처럼 우리가 보아왔지만 몰랐던 것들에 대한 시시콜콜할 정도로 자세한 길잡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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