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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남녀 차이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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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서명

    전자결재가 확산된다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도장 없는 사회활동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사인을 개발하여 팬들을 사로잡느라 여념이 없다. 얼른 보기에 다국적 언어로 기묘하게 구성된 사인은 다분히 서구문화의 영향이며, 현대인의 개성적 자기표현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도장과 사인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한국적인 것일까? 뜻밖에도 답은 사인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도장을 사용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요즘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원형의 도장은 일본문화의 영향으로 1900년대 이후에 새롭게 등장했다. 이 사정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전통문화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도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문서 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내리는 문서에 한정하여 관인·어보 등을 찍는 등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관리들이 공무를 수행할 때도 `수결'로 결재(사진 왼쪽)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여자보다는 남자들의 수결 문화가 더욱 발달해 있었다.

    예법과 명분을 중시한 조선시대에는 수결에도 신분·존비·남녀에 따른 구별이 엄격하게 지켜졌다. 지도층인 사대부들의 기본적인 서명방식은 수결이었다. 수결은 자신의 이름 글자를 약간 변형하여 해당 문서에 자필로 기록(가운데)하는 것인데, 놀랍게도 지금의 도장과 같은 기능을 톡톡히 했다. 다만 존장에게는 예우의 의미로 이름을 약간 변형한 수결을 사용한 반면, 아랫사람에게는 `한마음', 즉 `일심' 두 글자를 바탕으로 수결을 만들어 사용토록 했다. 변하지 않는 한마음으로 보증을 다짐하겠다는 뜻이다.

    양반과는 달리 글을 모르는 노비나 일반 상민들은 수결 대신에 `수촌'을 사용했다. 수촌이란 손마디를 문서에 대고 본을 뜨는 것(오른쪽)이다. 여기에도 남녀의 구별이 있어 남자는 왼손 중지를, 여자는 오른손 중지를 그렸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유일하게 도장을 사용한 계층이 있었으니, 바로 사대부의 부인들이었다. 비록 여자들의 사회활동이 크게 제한되어 있었지만 부인들은 주로 자녀에게 재산권을 행사할 때 네모난 방형의 도장을 사용했다. 다만 도장에 자신의 고유한 이름은 사용하지 못하고 남편에 대한 종속관계를 의미하는 문구가 새겨졌다는 것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다. 예컨대 영천군수를 지낸 홍길동의 아내(이씨)라면 `통훈대부 영천군수 홍길동 처 이씨'라 새겼던 것이다(가운데).

    전통이라고 해서 모두가 진부하거나 구태의연한 것은 아니다. 세련된 서구문화로만 알았던 사인문화도 알고보면 수백년 동안 면면히 지속된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었던 것이다. 붉은 인주를 사용하는 원형의 도장이 일본의 영향임을 알고, 자신의 고유성보다는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사인문화가 재고될 수 있을 때 도장과 사인에 얽힌 우리의 전통도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국학자료연구실 www.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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