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문학/출판 등록 2001.11.02(금) 18:31

“제군들, 자네들의 맥박은 한번도 쉰 적이 없다네.”

1973년. 정정은 아직 불안하고 대학은 은밀하게 감시받고 있던 시절, 여름방학 때 영농실습을 떠날 서울대 농대생들은 하나 둘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그에 따른 이농현상이 두드러지던 때에 갖는 대학생들의 농촌활동의 의미와 그들의 자세에 대해 류달영 교수의 강의가 있었다.“농사짓는 심정으로 묵묵히 노력을 하다 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농사짓는 마음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근면하고 겸손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류 교수의 느릿한 진양조의 강의는 여름을 이고 있는 후덥지근한 강당의 천장 아래에 조청처럼 녹아 흐르고 있었다. 학생들의 관심은 그런 강의보다는 오히려 그날 받을 영농실습자금의 용처에 있었다. 나도 이미 그날 저녁 친구 몇 명과 팔달문 근처 대포집에서 술 한잔 하기로 약속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따분한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그때 “마지막으로”라는 말이 졸린 귀속에 파고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나도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제군들, 자네들의 맥박은 이제껏 한번도 쉰 적이 없다네.” 처음 이 말은 농담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도 전에 정수리가 쩍 갈라졌다. 이 세상에 처음 뛰는 맥박이 있었으리라. 온 힘을 다해 뛰었던 그 첫 맥박과 그 다음 맥박까지는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또는 희망찬 시간이었을까? 맥박과 그 다음 맥박 사이의 기다림. 지금 바다의 파도만큼이나 수많은 맥박이 고동치고 있다. 삶이 고동치고 있다. 그 삶의 처음의 모습을 보게 해 준, 영원에 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말이었다.

김창완/가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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