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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7.10(일) 17:49

황석영 소설 ‘오래된 정원’ 임상수 감독 영화화


원작자와 감독 ‘오래된 정원’ 을 말하다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의 작가인 황석영(62)씨와 이 소설로 영화를 만드는 임상수(43) 감독이 만났다. 지난 4월 영국에 머물 때 <오래된 정원>의 영화화 계약 소식을 들은 황씨는 한국에 돌아와 임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사람들>을 본 뒤 안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일산의 한 카페에서 이뤄진 대담에서 임 감독은 영화판에 들어서기 전 소설가를 지망했던 이답게 여간해서는 기억하기 힘든 황씨의 단편들까지 줄줄 꿰며 작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할리우드 고전에서 최근 한국영화 경향까지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감식안을 펼쳐놓은 황씨는 “영화 <오래된 정원>이 대박 나면 나도 영화 한 편 찍게 도와줄 수 있을까?”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편집자

러브스토리? 당연하지

황석영=이번에 한국 들어와서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사람들>을 봤어요. 나는 <바람난 가족>이 훨씬 좋더라구. 콩가루 집안 이야기 하는 것같은데, 이게 우리의 자화상이거든. 남한 사회 천민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제대로 그렸다고 봐. 실향민 아버지가 느닷없이 김일성 군가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저게 미쳤나 그러겠지만, 그게 자기회한이기도 하고 남한사회의 회한이기도 하거든. 그런데 비약이다, 인권 변호사를 저렇게 바람이나 피우는 인간으로 그리냐 이런 답답한 소리들이 많이 나온 거 같애. 인권변호사는 교접 안하나?(웃음)

임상수=이제와 밝히자면, 김인문씨가 피를 토하면서 그 피가 아들의 옷을 뒤덮는 장면은 <오래된 정원>에서 한윤희가 아버지 관에서 쏟아진 피를 뒤집어 쓰는 장면을 가져와 변용한 겁니다.

=<그때 그사람들>은 뒷부분이 좀 아쉬웠어. 앞은 세련된 스릴러를 보는 거 같다가 뒤로 갈수록 약간 모호해지더라구. 아무튼 영화 보면서 다시 느낀 건데 역시 권력 언저리에 있는 놈들은 다 깡패들이야. 요새 하는 <제5공화국>을 봐도 이게 무슨 조폭 드라마인지 뭔지 참….


임상수 감독
인간은 이렇게 숭고한가
책 보며 밤새 눈물 줄줄 흘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20대도 눈물 쏙 빼게 할것

=<그때 그사람들>의 핵심이 그거죠. 원조 조폭영화. 실제 조폭들이 흉내내는 원형이 바로 청와대였다는 거. 그런데 <삼포 가는 길> 이래 선생님 작품이 영화화 되는 게 오랜 만이죠?

= 난 팔자에 감독을 한 번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어(웃음). <삼포가는 길>은 내 또래 친구가 영화로 찍겠다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엉망이야. 그래서 이만희 감독을 찾아갔지. 그런데 이 양반이 말년이야. 간암 판정 직전에 가정도 파탄 직전이었고 그러니 영화할 정신이 아닌거야. 결국 다 못만들고 죽었지. 그래서 영화가 중반까지는 아주 좋은데 제작자가 이어받아서 바꾼 뒷부분이 새마을 영화가 됐어요. 그 다음에 <섬섬옥수>가 <늪과 숲>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유행하던 청춘영화처럼 만들어졌는데 엉망이었구…. 10·26 터진 직후에 이장호 감독이 세상 바뀐 줄 알고 <객지>를 영화화하겠다며 제작자에게 나를 데려갔지. 근데 내가 계속 딴지를 걸었어요. 제작자가 로맨스도 나오냐 그러면 없는데요 이런 식으로. 결국 못했지. 금방 판정났잖아. 세상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게.

=선생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 <이웃사람>이에요. 막노동하며 매혈하는 친구가 어느날 자기한테 못되게 시비거는 야경꾼을 식칼로 푹 쑤셔 죽이게 되는 1인칭 소설이죠. 전 이 작품이 ‘황구라빨’의 진수라고 보는데, 전에 선생님이 했던 말처럼 내면화한 폭력이 순간적으로 나오는 거죠. 생각해보니 <바람난 가족>에서 성지루가 애를 던지는 거나, <눈물>에서 성지루가 시비 끝에 상대방을 과도로 찌르는 장면이 <이웃사람>에게서 알게 모르게 영향받은 것이더군요.

=임 감독이 <오래된 정원>을 러브 스토리로 만들겠다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오래된 정원>의 중심 줄거리는 러브스토리니까. 그런데 이 작품은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20세기 초반에 가졌던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을 돌아보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오래된 정원은 실패한 이상향이자 유토피아의 자기모순적 현재거든. 여기서 강조되는 게 일상이야. 임 감독이 이쪽에 강하잖아. 서사가 있는 홍상수라고. 기분 나쁜 이야기인가?(웃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현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화면이고 공감대거든.

=황 선생님 소설에 굶주려있기도 했고, <오래된 정원>이 한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하는 소설이고, 또 제가 실업자니까(웃음)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밤새 눈물 줄줄 흘리면서 읽었어요. 며칠 지나 친한 변호사랑 통화하면서 읽었냐니까 자기도 읽었대. 제가 근데 왜 인간이 이렇게 숭고한 거냐. 이럴 수 있어? 시비거니까 그 친구 왈, 세상엔 너같은 양아치만 있는 게 아냐. 숭고한 이도 있어 그러더라구요.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영화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본래 양아치가 예술에서는 정치 지도위원인 거야(웃음). <오래된 정원>의 남녀 주인공은 내 경험과 만난 여자들, 친구들을 모자이크 한 거야. 서준식을 좋아하는데, 지금 동시대 지식인 가운데 그만큼 도덕적인 사람이 없어. 서준식, 서승 형제의 체험도 녹아있고. 김남수는 김남주고 봉한이는 윤한봉이고 그렇지.

=저는 <그때 그사람들>이 보수신문의 융단폭격을 받으면서 피곤하기도 했고 이번에는 어머니 부탁도 있어서 적이 없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만들려고 해요. 근데 아무도 안 믿어(웃음).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는 제 말을 듣고 웃기지 마라, 보수언론은 이 자식 아직 정신 못차렸다 그럴거라구 하더라구요.

일상의 힘 보여주라고

=인간의 얘길하면 되요. 난 <바람난 가족>처럼 임 감독식의 간접화법이 좋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격변같은 건 멀리서 우뢰 울리듯 배경으로 깔고 그 다음 회한과 아름다운 일상을 돌아보고. 이게 아버지 세대의 세기말 얘기였구나,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면 젊은 사람이나 쟤네들도 눈물 빠질거야(웃음).

=그런데 선생님 작품 연보에서 러브스토리는 드물지 않습니까?

=드문 게 아니라 처음이지. 그건 감옥에서 나와서 얻은 자유의 공간이야.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맘놓고 러브스토리도 쓸 수 있게 된 거지. 옛날엔 우리끼리 복장도 서로 단속했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어 이러면서.(웃음) 예전엔 사랑할 자유도 억압됐고, 그러니까 러브스토리를 쓸 자유도 없었던 거지. 망명기간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시간이었어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한계, 한반도의 한계를 봤으니까. 감옥에서 정리할 시간도 있었고.


원작자 황석영
일상서 이탈하면 관념화
현실이 위대한 화면이야
소설로 펴내니까
징역병 치유 되더라고

=이 작품이 인간을 숭고하게 그렸다고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비판적인 부분도 많아요. 너희들이 한 게 뭐 있어, 윤희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이야기에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어요. 첫느낌은 숭고한데 사실은 신랄한 작품이라는 거죠. 또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오현우가 윤희에게 당신 아버지의 빛나던 시절은 20대였다,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 아버지가 20대 이후에는 시간 죽이며 살아간 건데, 똑같은 경우가 오현우에게도 적용돼죠. 감옥에서 18년 썩고 나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잖아요.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가지. 일상은 21세기의 화두거든. 나 자신도 감옥에서 발견한 건 일상이야. 모험하기는 쉽잖아.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을 축적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장기수의 큰 약점이 오랫동안 일상에서 이탈하면서 관념화한다는 거야. 감옥에서 책도 엄청 읽었는데 결국 깨달은 건, 책은 관념이야. 사람 만나고 술도 먹고 소통하면서 책 읽는게 독서지, 저 혼자 읽어서는 관념의 기둥만 남는다고. 일상으로부터 일탈해서 놀다가 나오면 굉장히 적응하기 힘든데 나도 3~4개월 겪었지. 지하철 타는 것도 힘들고 방에서도 가운데서 못자고 구석에다 자리 깔고 자는 거야. 근데 금방 적응했어. 소설로 퍼내니까 치유가 되는 거야. <오래된 정원>으로 징역병을 치유한 셈이지. 영화에서도 일상의 힘을 보여주면 돼요.

=제가 쓴 초고를 강남에 혼자 살면서 외제차 타고 다니는 젊은 여성이 읽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너무 올드하다, 하나도 안 슬프다, 한윤희는 왜 그렇게 사는 거냐. 이 세가지를 젊은 이십대 여성에게 납득시키는 게 관건이고, 납득시키고야 말겠다는 게 제 결심이죠.(웃음) 그런데 이런 신세대뿐 아니라 운동한다는 사람들도 문어체로 주둥아리를 놀리니까 정서나 예술적 감수성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이들은 소설 안보고 사회과학책만 봐. 소설 볼 시간은 없대. 그러니까 정작 동시대의 삶은 놓치는 거지. 삶과는 유리된 주둥아리지. 박정희도 소설책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안본다고 그랬대. 그러니까 정권이 추구하는 가치가 패권주의밖에 없는 거지. 휴머니티는 사라지고. 아무튼 영화 <오래된 정원> 잘 만들거라 보고 임감독 자신으로서도 새로운 전기가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래요.

정리·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혜정 <씨네21> 기자 socapi@cine21.com


수배자와 교사의 짧은 사랑…18년만에 출옥 편지만이

소설 ‘오래된 정원’ 은?

<오래된 정원>은 방북 뒤 유럽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귀국한 황석영씨가 5년 동안의 투옥 생활을 마치고 2000년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70년대 말부터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18년 동안 정치범으로 감옥 생활을 한 오현우의 출옥 뒤 일주일이 그려진다. 광주항쟁 뒤 수배자가 되어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은거지를 제공한 시골 학교 미술교사 한윤희와의 짧은 사랑이 이야기의 뼈대다. 출옥하고 얼마 뒤 한윤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와 짧은 한 계절을 함께 보냈던 갈뫼 마을에 찾아간 오현우는 고스란히 남아있던 두 사람의 둥지에서 한윤희가 죽기까지 오랫동안 써왔던 일기와 편지를 보게 된다. 소설은 오현우의 현재와 과거, 한윤희의 어린 시절과 오현우가 투옥된 뒤 딸 아이를 낳고 떠났던 독일 유학생활 등을 오가며 화자와 시제를 다층적으로 엮어 전개한다. 시대와 맞섰던 한 남자, 그리고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아픔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했던 한 여자가 겪어온 개인사를 통해 유토피아를 열망했던 한 시대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진술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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