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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6.29(수) 18:22

공포영화 ‘분홍신’ 탐욕의 신발, 신으면 죽는다


오랜 세월의 윤색을 거치기 전, 많은 동화의 본래 모습이 그렇듯 안데르센의 〈분홍신〉도 끔찍하고 공포스럽기조차 한 결말을 지니고 있다. 신발가게에서 본 분홍신에 눈길이 사로잡힌 소녀는 검은색 구두를 사야 함에도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분홍신을 사서 신었다가 저절로 춰지는 춤을 멈추지 못해 결국 발목을 잘랐다는 이야기. 분홍신은 헛된 욕망이고 동화는 헛된 욕망에 무릎 꿇었을 때 운명이 어떤 보복을 하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안데르센 잔혹동화 모티브
절제된 연출로 ‘냉기’ 두배

통제불능의 물욕을 모티브로 한다는 점에서 〈분홍신〉은 소유가 존재를 증명하는 요즘 시대에 더 걸맞은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와니와 준하〉의 김용균 감독이 4년 만에 연출에 나선 공포영화 〈분홍신〉(30일 개봉)은 원작의 모티브를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적절하게 옮겨왔다.

남편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 헤어진 선재(김혜수)의 유일한 즐거움은 구두를 모으는 것이다. 딸과 둘이 살게 된 선재는 어느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버려진 분홍색 구두를 발견하고 구두를 집어 온다. 6살 된 딸 태수(박연아)도 구두를 보자마자 가지고 싶어하고, 선재는 어린 딸과 몸싸움까지 벌일 정도로 구두에 집착한다. 그러나 우연히 집에 들렀던 후배가 구두를 가져갔다가 죽음을 당하고 똑같은 구두를 신었던 여고생이 먼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선재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게 된다.

안데르센의 분홍신은 단순히 탐욕의 상징물이었지만 영화 〈분홍신〉은 그보다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60여년 전 한 여인으로부터 투기의 세례를 받은 분홍신은 유혹의 껍데기를 두른 복수의 칼이 됐다. 영화의 전반부는 유혹에 빠져드는 선재의 불안한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반면 후반부는 선재와 선재의 병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인철(김성수)이 그 감미로운 외피 속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을 파고 들어가는 데 집중한다.

공포영화로 〈분홍신〉이 가진 첫번째 미덕은 작위적 음향효과를 동원한 놀래킴이나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풀고 나타나는 귀신-지난여름 공포영화 팬들을 지치게 했던-을 남발하지 않는 데 있다. 영화는 텅 빈 지하철 정류장 같은 휑하고 차가운 공간이 주는 으스스함과 선재의 집착이 광기로 변질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공포스러움을 은근하고 조심스럽게 연출해간다. 이미 〈장화, 홍련〉에서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공포의 선율을 담아낸 이병우의 맵시있는 음악도 스크린에 서정성을 보탠다. 다만 중반부터 드러나는 분홍신의 불행한 과거는 현재의 날 선 공포와 그다지 매끄럽게 붙지는 않는 느낌이다. 치정관계는 가장 끔찍한 사연을 제공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만 또 너무나 흔한 복수와 원한의 사연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정교하게 다듬지 않으면 공포의 독한 맛을 주기에는 싱거운 소재일 수도 있다. 특히 과거를 배경으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복선처럼 펼쳐지는 집단 춤 장면은 작품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야심이 지나치게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종종 화면을 뒤덮는 핏빛과 대조적으로 무채색의 복장을 한 채 불안과 피로에 젖어 까칠하고 음울한 표정을 보여주는 김혜수와 포동포동한 우윳빛 뺨 위로 아찔하게 눈초리가 변하는 박연아의 착 감기는 연기조합은 긴장감을 팽팽하게 조여주면서 진부한 귀신소동에서 영화를 멀찌감치 떨어뜨려놓는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청년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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