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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묶인 성(性)/ 백지연


근대 신여성의 사회적 좌절과정을 자신의 생애로 보여준 작가 나혜석은 정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갈을 남겼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것과 같이 임의용지로 할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당시 사회에서 요란한 풍문으로 흘러다닐 뿐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성이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향유되어야 한다는 나혜석의 부르짖음은 한 세기가 바뀐 지금도 온전한 의미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이 발화하는 성적담론이 선정적 주제 그 자체로 조명을 받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여성이 주창하는 성적인 평등과 자유로움은 종종 육체의 이미지로 포장된 소비재들과 뒤섞인다.

성의 욕망을 선정적인 화두로 포장하는 자본의 시스템이 한 작가의 열정적인 글쓰기와 눈부신 수사의 힘을 제압하기란 쉬운 일이다. 전경린의 신작 소설인 <열정의 습관>을 읽으면서 여성독자로서 느끼는 불편한 마음도 여기서 기인한다. 의외로 이 소설에서 탐색되는 남녀간의 성은 파격적이지 않다. 충격적인 성묘사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소설 속의 성이 지극히 사색적이고 교훈적이라는 점에 놀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향해 가면서 동시에 자신의 궁극에 이르는 길”이라든가, 섹스가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도 복제품으로 손쉽게 대체할 수 없는, 철저히 수공품”이라는 지식인적인 진술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정성들인 비유와 문학적인 상징은 육체적 감각을 지극히 미학적인 것으로 만든다. `작은 꽃송이에 고인 이슬을 한 줌 가득히 털었던 기억'과 `손이 빨갛게 얼도록 얼음 조각을 쥐고 있었'던 기억이 환기하는 육체의 아름다움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 공들인 묘사에 견준다면 소설을 떠받치는 미홍과 가현, 인교의 서사는 위태롭고 불안정하다. 내성적인 치열한 독백만으로 소설의 틀을 버티기에는 인물들이 내뿜는 입김은 지나치게 연약하고 모호하다.

남성과 여성의 움직이는 관계가 아닌 여성의 일방적 고백으로 포착되는 성과 육체는 탐미적이면서 추상적인 이미지들로 부유한다. 소설 속의 남성들은 철저하게 여성의 시선에 의해 포박되고 관찰된다. 여성은 그를 통해 육체와 정신이 완벽하게 합일하는 사랑을 구가하는 운명의 순간을 고대한다. 그녀가 꿈꾸는 남성의 육체와 성적 사랑에 대한 환상은 남성의 오래된 편견 못지 않게 허구적이다.

여성의 육체와 성이 철저히 대상화된 시선으로 그려진 다른 연애소설들과 견준다면 작가가 보여주는 섬세하고 따뜻한 관찰의 시선은 충분한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을 운명적인 열정으로 회귀시키는 이미지의 주술은 완벽한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새겨지는 여성의 내면적 갈망은 허구의 팬터지를 만든다. 사랑이 갑작스럽게 닥치는 뜨거운 열정이라는 오래된 로맨스의 신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또다른 이미지의 사슬이 되어 여성을 얽매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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