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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종씨, 진정 팔자가 늘어진 사내?


아는 이들은 그를 “팔자가 늘어진 사내”라고 부른다. 돈도 있고 시간도 넉넉한 사십대 남자인 그가 바람처럼 사는 걸 부러워해 하는 소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 하고 싶은 일로 떠다니고, 일 년이면 한 두달씩 훌쩍 티베트나 알마타로 떠났다가 돌아오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정작 김영종(46)씨는 “진짜 배부른 사람들은 이렇게 못 산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 명함 만드는 데 칠 년이 걸렸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찾아 헤매다 겨우 자리를 잡은 셈이죠. 이제 죽을 때까지 여기 매달려 파고 또 파다 갈 작정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름 석 자 밑에 `한국중앙아세아학회 회원, 저술·사진 활동'이라고 박혀있다. 중앙아시아에 빠져서 하루 열댓 시간씩 공부하고 쓰고 사진 만드는 일로 그 광활한 대륙과 씨름해 온 지난 세월이 거기 묻혀 있다. 홀쭉한 몸피와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오래 헤맨 사람만이 풍겨내는 진득한 그림자가 묻어나온다.

“1970년대 중반에 전남대에서 데모하다 잘리고, 징역 살고 나와 도망다니다 어찌어찌 서울로 올라와 한신대에 몰래 편입학을 했습니다. 거기서도 또 운동하다 감옥에 갔어요. 들락날락 어정거리다 시작한 일이 출판사였는데 운이 좋았는지 잘 팔리는 책들을 꽤 냈습니다. 그게 밑천이 된 셈이죠.”

김영종씨는 82년부터 94년까지 사계절 출판사 대표였다. <임꺽정>과 <반갑다 논리야>같은 베스트셀러들을 내놓으며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가운데서는 탄탄한 길을 닦았다. 십 년 넘게 책을 만들고 났을 때, 그는 사업가로 남을건지 아니면 다른 일에 뛰어들 것인지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았다. 그 때, 원고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벽화에 고구려 사신으로 짐작되는 사람 둘이 있다는 얘기였는데 그는 `왜 그들이 먼 그곳까지 갔을까' 궁금했다.

“운명이었나봐요. 그들을 찾아 바로 중앙아시아로 떠났습니다. 오십일에 걸쳐 돌아본 그 사막에서 정수리가 뚫리는듯한 기쁨을 맛봤죠. 그 뒤로 수십 번 드나들었지만 아직도 그 첫 여행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 순간이 다 좋았어요. 밤이 그냥 검정이 아니라 수많은 색들로 뒤덮인 신비한 시공이란 걸 알았죠.”

그는 그 사막이 자신을 평생 던져넣어야 할 곳임을 느꼈다. 사무실 한 귀퉁이에 야전 침대를 들여놓고 너댓 시간 눈 붙이는 외에는 종일 중앙아시아 공부에 매달렸다. 출판사 일은 자연스레 부인 강맑실씨가 맡게 됐고, 그는 읽고 쓰고 사진 찍는 작업으로 날밤 새는 몇 년을 보냈다.

“중앙아시아는 제게 근대문명에 대한 저항으로 다가옵니다. 기계주의적 세계관이 인류를 돌이킬 수 없는 구덩이로 몰아가고 있어요. 근대 학문이 생명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걸 오히려 죽이는 쪽으로 가는 지금, 우리는 심각하게 이 문명이 가는 미래를 걱정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초원과 도시들에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원초의 모습을 보았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파괴된 우리를 다시 살릴 힘이 거기 있었다. 그는 “온 몸으로 받아들인 그 자연의 힘을 글쓰기로 토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티벳에서 온 편지>에서 그는 그 힘을 `진동'이라고 표현했다. “근대 이성을 버리고 고대의 지혜로 돌아오라는 가르침,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21세기에 지구 가족이 공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였다.”

“사람들이 다 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연 속에서 조용히 사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이 촌놈이 무지막지하게 공부하며 뭔가 쓰려고 애쓰는 건 그 큰 길에 조그만 조약돌 하나라도 되고픈 맘 때문입니다. 지식이 힘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깨달음이 힘입니다. 세상에 온 한 목슴, 그 생명에 대한 기쁨으로 충만하다 가야지요.”

글 정재숙 기자jjs@hani.co.kr

사진 서경신 기자rao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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