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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1월17일19시48분 KST

    나혜석 회고전/ 시대를 앞서간 여성예술가의 잔향

    정월 나혜석(1896~1948).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류화가. 아마 한국미술사에 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름은 아직도 그의 평범하지 않았던 삶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예술적 성과는 이름처럼 친숙하지 못하다. 최초라는 선각자적 영예와, 시대와는 걸맞지 않았던 불운한 삶이 명징하게 공존하는 이 인물의 예술세계와 생애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다음달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02)581-1300.

    그동안 나혜석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사실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모처럼 그의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만 정작 그의 진품 그림은 너무나 적다. 단 9점뿐이다. 그의 그림은 현재 불과 20여점만이 남아있을 뿐이서 주최쪽도 그림을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한세기를 먼저 살아간 그의 그림이 겨우 그 정도 밖에 안남았다는 사실은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물론 그림말고 다른 볼거리도 보탰다. 그가 그린 삽화와 목판화 등이 사라진 대신 남아있는 필름 인화본, 그리고 생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 총 80여점이 관객을 기다린다.

    정월의 인생은 우리 문화계에서 그처럼 파란만장하게 산 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격정적이었다. 1913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여자미술학교에서 서구 미술을 배운 그는 1919년 동경에서 2·8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뒤이어 귀국해 이 사건으로 여섯달 옥고를 치렀다. 21년 서양화가로선 국내 최초로 열렸던 그의 개인전은 무려 5천여명이 몰리는 일대 문화적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년 결혼한 남편 김우영이 외교관이 되면서 프랑스로 떠난 혜석은 최린과의 염문으로 결국 31년 이혼이란 불행을 만났다. 사회의 냉대에 모진 삶을 살다가 그는 결국 48년 서울의 한 병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쓸쓸히 숨졌고, 주검을 수습해주는 사람도 없어 한평 묘자리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런 평범찮은 삶의 궤적은 그의 예술적 성과를 감춰버렸다. 문필가로서, 여성운동가로서의 활약 역시 그의 미술적 성과를 되려 가려버리는 몫을 했다. 하지만 그런 비범한 의식과 재능은 그림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서구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들은 힘있는 붓질과 단아한 구도로 보는 이의 마음속에 긴 잔향을 남긴다. 초기 운동적 성향이 드러나는 그림, 프랑스에 체류하며 그린 인상주의 풍경, 인생의 말년에 닥친 궁핍함을 보여주는 베니어판 그림까지 그의 그림속에 스며든 다사다난한 삶과 철학을 느끼면서 화가 나혜석과 자연인 나혜석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이야말로 이번 전시 감상의 요체이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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