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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7.06(수) 18:06

백기완씨 자전적 회고록 ‘부심이와 엄마생각’


귀밑머리 허연데도
얘들처럼 당신이 그립습니다

통일운동가 백기완(72)씨가 황해도 장연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를 마흔세 편의 꼭지로 엮은 자전적 회고록 <부심이의 엄마생각>(노나메기·02-762-0017)을 펴냈다. 백씨는 책을 내기 전에 예비 독자 1천명을 상대로 사전 예약 주문을 받은 바 있다(<한겨레> 6월1일치 21면)

어릴적 어머니에 들은 얘기
43편의 꼭지로 엮여 펴내

‘부심이’란 백씨의 아이 적 덧이름(별명)으로, 풀빛 바지에 빨간 대님, 빨간 저고리에 풀빛 고름의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새싹과 꽃을 떠오르게 하는 이 옷을 입고 한겨울 눈밭으로 나가면 겨울의 맵찬 추위를 거뜬히 갈라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부심이의 엄마생각>에 그려지는 어머니는 지혜와 용기와 사랑을 두루 지닌 ‘대지모신’과 같은 면모를 보인다. 가령 어머니는 웬만한 현자나 종교 지도자들 뺨칠 만한 ‘말씀’을 예사로 하신다. “굶주린 남의 배를 채워 주려고 하면 제 배는 좀 주리고 주는 것이 그게 남을 주는 거란다”(58쪽)라거나 “물에 빠지면 사람은 물이 되어야 한다. 옷가지도 목숨도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물이다 하고 모두를 놓아 버리면 물속에서도 저절로 뜨게 되거든”(134쪽), 또는 “학교란 한켠으로는 모르던 것을 배우기도 하고 또 한켠으로는 애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할대(원칙)를 익히고 배우는 데지, 일등 이등을 따지는 데가 아니야”(147쪽)라는 말은 자비와 순리, 공생의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철학적 통찰로서 손색이 없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비로운 어머니지만,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는 분연히 맞서 싸우는 ‘억척어멈’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는 ‘천황’의 행차를 위한 신작로 공사 참여를 독려하거나 집 안의 유기 그릇을 공출하러 온 일제 순사를 호통과 욕설로 쫓아내기도 하고, 전쟁이 나서 남쪽 군대와 북쪽 군대가 차례로 들이닥쳐 태극기를 달라는 둥 달린 태극기를 떼라는 둥 괴롭힐 적에는 “나는 지금 서울에 사는 우리 아들딸과 남편을 기다리지, 총을 든 군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당찬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이 씩씩한 어머니가 “여자란 태어나면서부터 발이 묶이고, 허리도 묶이고, 손도 묶이고, 목도 묶이고, 머리채도 묶이고, 웃음도 묶이고, 울음도 묶이고, 골나기(화내기)도 묶이고”(135)라며,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난 운명의 불합리함에 대한 온당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책의 전반부에서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내던 주인공 부심이는 후반부에서는 아버지와 형이 있는 서울로 월남해 전쟁을 겪으며, 그것으로 어머니와는 영영 헤어지게 된다. 백기완씨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것은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애들처럼 어머니를 그리는 나의 피눈물이다”라고 적었다.

뚱속(욕망) 꼽힌네(선수) 벗나래(세상) 속꽂이(다이빙) 끈매(인연) 한살매(일생)처럼 부러 살려 쓴 우리말, 그리고 “번덕번덕 밤안개 속을 흐르는 호롱불빛 같으신 우리 엄마의 눈매”(148쪽), “부심이 마음은 겨울 무밭에 우거지처럼 헷갈렸다”(178쪽)와 같은 토속적인 비유는 백기완씨의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맛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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