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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7.04(월) 18:07

조선후기 사형집행 신중했다


▷ (사진설명) <심리록>에 실린 여러 유형의 강력범죄 판결 기록들은 조선 후기의 사회적 변화상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구체적 단서들이다. 위 사진 도판은 형틀에 묶인 죄인을 형리들이 몽둥이로 마구 치는 형벌인 장형(杖刑)의 한 장면을 그린 조선시대 풍속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서

심재우씨 ‘정조대 사형범죄 유형’ 분석 논문
사형대상 3.2%만 실제집행…신중함 엿보여

200여년 전 조선 팔도에서 인구수에 견주어 살인 따위 강력범죄가 가장 잦은 지역은 서울·경기·황해 등 수도권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발생건수로는 전라도가 가장 많았고, 서울 안에선 현재 마포, 서대문구 일부인 서부가 최대 우범지역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 학예사 심재우씨가 최근 서울대 국사학과에 낸 박사학위 논문 ‘정조대 사형범죄의 유형과 사회통제 연구’에서 조선 후기 형사사건 종합 통계를 처음 만들어 분석한 결과다. 통계의 근거가 된 사료는 정조 임금 때 사형 대상 중죄인들의 형사 판결 기록을 담은 <심리록(審理錄)>. 정조가 영조의 왕무를 대리하던 1775년 12월(재위는 1777년부터)부터 그가 서거한 1800년 6월까지 직접 사형 판결 여부를 심리한 중죄 사건 1112건의 처리 과정을 요약한 형사판례집이다.

논문을 보면 정조 재위기간 중 서울의 중범죄는 161건. 당시 인구(18만9천여명) 대비 범죄비율(5.7%)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2, 3, 4위는 황해도(1.5%), 경기(1.2%)와 전라·충청도(1%) 였다. 당시 서울 인구는 전체의 2.6%에 그쳤으나 범죄건수는 14.5%에 이르러 다른 지역보다 범죄 비율이 5.7배나 됐다. 서울 인근의 황해도, 경기도도 전국 평균치보다 범죄비율이 높았다. 수도권의 범죄 발생률이 높았다는 사실은 당시 도시화와 유민의 유입 등으로 상당한 도시 문제가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강력 범죄 발생건수로는 전라도(185건·16.6%)가 경상도(165건·14.8%), 서울(161건·14.5%), 평안도(143건 12.9%) 등을 앞질렀다. 당시 행정구역상 5부였던 서울 안에서는 신흥 상공업 지대였던 서부(현재 용산, 마포구 접경지역 일대)가 69건으로 동·남부와 중·북부를 압도했다. 지방 도시(군·현)별로는 전주(21건)와 평양(20건), 해주(18건), 봉산(17건), 공주(16건), 순천(14건), 충주(13건), 대구·광주·재령(12건) 등이 범죄 다발지였다.


△ 중죄인들의 형사 판결 기록을 담은 <심리록>

<심리록>의 범죄유형은 살인 등 인명범죄가 90.3%로 가장 많으며, 경제범죄(6.7%), 관권 침해 범죄(1.9%), 사회풍속 범죄(1.2%) 등의 순인데, 공문서 위조와 왕실품 절도 같은 경제 범죄의 경우 서울 지역에서 전체 건수 74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건이 일어나 당시의 급속한 도시화, 상업화 흐름을 암시하고 있다. 전체 범죄의 16.1%인 가족, 친족 살해 사건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경우, 즉 대부분 남편이 처, 첩의 간통을 의심해 살해한 것이어서 여성들이 일방적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

논문에 따르면 “공문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으로 옥안(獄案: 형벌을 판결하는 서류)만한 것이 없다, 한 글자를 옮겨 바꾸는 사이에 사람의 생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홍재전서>)라는 정조의 말마따나 당시에는 사형 등 형의 집행이 매우 신중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록>의 사형 대상 죄인 1112명 가운데 실제 사형 집행은 3.2%(36명)에 불과했으며 수감 중 숨진 ‘물고’(物故) 또한 8.9%에 그쳤다. 반면 43.8%(487건)는 감형, 30.9%(344명)는 석방된 것으로 나온다. 사형 대상자의 90% 이상이 처형됐던 15세기 초 실록 기록과 달리 조선 후기 들어 인권 중시 풍조로 사형 판결은 더욱 신중하게 심리가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정조가 사형급 중죄사건의 최종 판결을 내리기까지 심리 기간이 평균 15.3개월이 걸려, 사형판결을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엿보게 한다. 심 학예사는 “사형 대상 죄인의 70% 이상이 사형을 면한 것은 18세기 사회 변화기를 맞아 군왕 등의 권력층이 ‘관용’과 ‘사면’ 으로 효율적 통치를 추진하려 했음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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