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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6.06(월) 18:37

퀴어 문화축제 현장을 가다



△ (사진설명)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성적 소수자 인권단체들의 연대모임인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5일 오후 서울 종묘공원 일대에서 연 ‘제6회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5 퍼레이드’ 행사 참가자들이 화려한 분장을 한 채 인사동까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화려한 분장 뒤안 ‘소수의 상처’ 보이나요

지난 5일 오후 1시 서울 종묘시민공원. 노인과 노숙자들의 아지트인 이곳에 빨·주·노·초·파·보 여섯색깔 무지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동성애자와 동성애 문화를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지난 2000년 여름, 게이·레즈비언·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들이 성소수자들의 문화활동 및 인권활동을 지지하고 자긍심을 키우기 위해 첫번째 문화축제를 열었고, 이 축제가 어느덧 여섯돌을 맞았다. ‘퀴어(성소수자)문화축제 무지개 2005’의 슬로건은 ‘퀴어절정! 퀴어업!’.

성적소수자 500여명
종묘 일대서 퍼레이드

“붉은 리본은 촬영거부 의사의 표현입니다, 붉은 리본을 착용한 참가자는 촬영하지 마세요!” 프레스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종묘공원 한 켠에 마련된 현장 안내 데스크로 갔다. 진행 요원들이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축제 현장에서 찍힌 사진이 일반에 공개돼 ‘아웃팅’(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성적소수자라는 사실이 공개되는 것)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란다. 붉은 리본을 살살 피해가며 소심하게 취재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세명 가운데 두명 꼴로 붉은 리본을 달고 있는 통에 취재를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닥쳤다. “저…실명 안 쓸거구요, 사진도 안 들어가는데…인터뷰 좀…”하고 붉은 리본을 단 게이에게 쭈뼛쭈뼛 말을 걸었다.




“촬영하지 마시라니까요! 붉은 리본을 단 퀴어들을 무단 촬영·공개하시면 초상권 침해로 소송까지 당하실 수 있습니다! 책임 안 집니다!” ‘앗, 사진 안 찍었는데…’ 날카로운 진행요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서 까치발을 한 시민들이 붉은 리본을 단 드렉 퀸(여장 남자)을 향해 카메라폰 플래시를 터뜨렸다. 심지어 붉은 리본을 단 퀴어들에게 과감하게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를 들이대는 시민들도 있었다.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잦아질수록 진행요원의 목소리 톤은 신경질적으로 변해갔지만, ‘퀴어’도 낯설어하는 시민들에게 ‘붉은 리본’의 의미까지 이해시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일인 듯 했다.

점입가경. 현장 진행요원들이 사진촬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이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퀴어들이 퍼레이드 분장에 한창인 틈을 타 술에 취한 척 준비 현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퀴어들을 만지고 다니는 성추행범이 등장한 것. 놀란 진행요원이 재빠르게 마이크를 잡고 성추행범 인상착의 수집 및 현장수배에 들어갔다. 하지만 더 골치 아픈 것은 성추행을 하고서도 성추행인 줄 모르는 몇몇 노인들이었다. “남자야, 여자야?”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몇몇 이성애자 할아버지들은, 덥썩덥썩 드렉퀸들의 가슴에 손을 갖다대며 ‘성감별’을 시도해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이 일으킨 소동에도 불구하고 퍼레이드 준비는 차질없이 이뤄졌다. 퍼레이드 준비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아무래도 분장실. 천막하나로 달랑 30도를 웃도는 더위를 가린 분장실은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열기와 맞물려 물감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웠다. 이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끈 참가자는 3시간 동안 분장사 이아무개(30)씨를 독차지했던 레즈비언 최아무개(24·대학생)씨였다. 최씨는 흰 원피스의 가슴 부분을 도려낸 뒤 맨 가슴을 드러낸 파격적인 의상과 검정·빨강·노랑·파랑·보라색으로 온몸을 칠한 바디페인팅으로 시선을 모았다. 앞서 3년 내내 퍼레이드에 참가했던 최씨는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속옷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 것”이라며 당당한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서길 주저하지 않았다.

구경꾼 할아버지 허허허
“고추끼리 결혼한다네 직접보니 덜 징그럽구먼”


오후 3시40분, 화려하게 분장을 마친 드렉퀸들을 필두로 퀴어 500여 명이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대표 퀴어’인 탤런트 홍석천씨가 “자신있게, 멋있게, 앞으로 앞으로 행진하자”는 말로 퍼레이드 카를 출발시켰다. 퍼레이드는 종묘 시민공원에서 남인사 문화마당까지 1시간이나 계속됐다. 시민들의 시선은 가장 먼저, 과감한 에스닉 의상(이국 민속 의상)을 차려입고 나온 23명의 트랜스젠더 무리에 꽂혔다. 그 다음은 드렉퀸들의 몫.

하지만 시민들은 성적인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화려한 행렬에 시선을 빼앗기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성전환수술 비용 의료보험 적용하라!’, ‘학교는 청소년의 이반(동성애)검열 중단하라!’, ‘성적 지향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노동!’ 등 가장 정치·사회적인 구호들을 접했다. 빨간색·하얀색 중국 의상을 커플룩으로 차려입고, 혼인신고서를 2절지에 확대해 그린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를 든 채 퍼레이드에 참가한 게이 커플 ‘엽군&솔리드’를 바라보던 이성애자 김아무개(75)씨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허허허, 고추들끼리 결혼을 한다네”라며 웃어재끼던 그는, “웃기고 이상하세요?”라는 질문에 “이상헌디(한데) 직접 보니 덜 징그럽고 귀엽구먼”이라고 답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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