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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3.17(목) 16:52

(17) 황우양씨는 어떻게 성주신이 되었나


△ 집안의 평안과 부귀를 지키는 성주신을 모시는 것은 정착과 농경의 문화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사진은 안동 수몰지구 ‘큰기와집’에서 성주풀이굿을 벌이는 모습. 강창광 기자, 연합 chang@hani.co.kr



기운 하늘궁 바로세운 ‘영웅본색’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 땅의 제비원의 솔씨 받아, 봉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도리기둥이 되었네.” 이렇게 이어지는 민요 <성주풀이>가 있다. 제비원 솔씨가 낙낙장송으로 늘어져 큰 재목이 되자 대목(大木)들이 베어 집을 지으니 집안으로 부귀영화가 들어온다는 내용이다. <성주풀이>라는 제목만 보면 성주신의 근본을 풀이하는 신화인 듯하지만, 풀이하는 것은 대목이 집을 짓는 과정뿐이다. 집을 수호하는 성주신의 진짜 ‘풀이’는 어디 있는가?

천지 조화로 태어난 황우양씨
대장장이 부인 도움으로
천지 통달한 대목이 되니
‘성주무’ 가 내력이라

천하궁 천대목신과 지하궁 지탈부인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두루 통달한데다 홍길동마냥 둔갑술에도 능한 인물이다. 게다가 몸집도 보통이 아니니 누가 보더라도 영웅감이다. 천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이라면 신화적 영웅임에 틀림없다. 이 인물이 바로 훗날 성주신이 되는 ‘황우양씨’다. 이렇게 시작되는 진짜 성주풀이가 성주굿에서 불리는 무가(巫歌) <성주풀이>다. 해방 전에 경기도 용인 무당 이성녀가 부른 <성주본가>에 그려진 황우양씨의 내력을 따라가 보자.

어느 날 난데없이 동풍이 불어와 천대목신이 거주하는 천하궁이 기울어진다. 궁이 기울자 궁을 수호할 성주신도 사라진다. 성주신이 사라진 천상의 폐가(廢家)! 우주적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이를 해결할 해결사가 하늘나라에는 없다는 데 있다. 이때 하늘나라에 해결사로 불려온 존재가 바로 지하궁(천하궁이 천상을 뜻하듯 지상을 뜻한다) 황산 밑에 사는 황우양씨다.

그런데 하늘나라 궁전이 동풍 한 바탕에 기울어진다는 것도 이치에 안 맞지만 기울어진 궁전을 다시 세울 해결사가 하늘나라에 없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난감한 상황 설정은 신화의 이치로 봐야 수긍이 된다. 천지가 조화로워야 만사가 형통하므로 하늘에 문제가 생기면 땅에서 해결하고 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하늘에서 해결한다는 식의 이치다. 이런 이치에 따르면 하늘에는 해결사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천지의 조화로 태어난 지상의 황우양씨 말고 하늘의 문제를 해결할 인물이 누가 있겠는가. 하늘 궁전을 다시 세운 황우양씨가 지상의 성주신이 되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런 대립항의 관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다음이다. 유일한 해결사 황우양씨를 잡으러 천하궁의 차사가 왔지만 그에겐 집을 지을 연장이 없다. 세 달 말미를 요구했지만 얻은 것은 사흘 말미다. 식음을 전폐케 만든 이 기막힌 상황에서 황우양씨의 기를 뚫어주는 이는 이름 없는 그의 부인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성주본가> 어디에도 황우양씨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이름도 없이 그냥 ‘부인’이다. 아마도 황우양씨의 어머니인 지탈부인과 비슷한 지모신적 존재일 테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부인일 뿐이다.

이 무명의 부인이 그만한 일로 식음을 전폐하느냐면서 나선다. 황우양씨를 ‘아이처럼’ 재워놓고 천하궁에 소지(燒紙)를 올려 가루쇠·놋쇠·편쇠를 열 닷 말이나 받아 풀무를 만들고 연장을 마련한다. 도끼, 톱, 자귀, 먹통, 대패, 먹자…. 대목들에게 필요한 연장 일습이다. 뿐만 아니라 사철 의복에 버선, 신발까지 갖춰 행장 일체를 대령해 놓고 있다. 무명의 부인치고는 능력이 엄청나다. 그녀는 평범한 아낙네가 아니라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의 능력을 소유한 신이한 존재로 보인다.

한데 다시 의문이 생긴다. 황우양씨는 천지의 이치를 통달했다고 했는데 그런 영웅이 연장이 없어 식음을 전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천하궁이 동풍에 기울어졌는데 그 집에 고칠 신이 없다는 상황과 동일한 상황 설정이다. 천지의 조화를 만사형통의 근원으로 보듯이 남녀의 조화를 대길(大吉)로 보는 신화의 논리가 서사에 내면화되어 있다. ‘무능한 황우양씨-유능한 부인’의 대립항은 ‘무능한 하늘-유능한 땅’의 변형인 것이다. 그러나 황우양씨와 부인의 관계 속에는 단순한 신화적 변형 이상의 뜻이 감춰져 있다.


△ 지난 2001년 11월 남한행궁 복원 상량식 모습.

부인은 천하궁으로 떠나는 황우양씨에게 ‘금기’를 던진다. “도중에 누가 묻든지 말대꾸를 하지 마옵소서. 만일 대꾸하면 사랑하는 마누라를 남을 주는 것이오니 부디 말대꾸 마옵소서.” 그러나 금지에는 위반이 뒤따르는 것이 신화의 문법이다. 그는 황우양씨가 거주하던 황산뜰과 천하궁 사이에 존재하는 소진뜰이라는 공간을 지나다가 소진랑을 만나 말대꾸를 한다. 소진랑이 말대답을 하지 않는 황우양씨를 보고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하자 마누라 말 듣다가 욕봤다면서 대꾸를 했던 것이다. 결국 적대자인 소진랑의 계략에 말려들어 황우양씨는 소진랑과 옷을 바꿔 입고 천하궁으로 간다.

겁탈꾼 소진랑은 서낭신으로
부인은 베짜는 여성 변모
이는 이동·수렵에서 정착·농경
또 ‘남성중심’ 문화사 깔려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소진랑에게 당하는 황우양씨 부인의 수난이다. 마치 제주도 신화 <이공본풀이>의 원강암이가 자현장자에게 당하는 수난과 비슷하다. 황우양씨의 옷을 입고 황산뜰에 온 소진랑은 자신이 남편이라고 속이지만 총명한 부인이 속을 리 없다. 그렇다고 소진랑이 되돌아갈 리도 없다. 소진랑은 꼭꼭 닫은 대문·중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가 남의 부인을 차지하려고 용을 쓴다. 부인은 그때마다 시아버지 제사나 지내고 동침하자, 몸에 귀신이 붙었으니 개똥밭에 굴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 구멍밥 3년 먹은 후에 동침하자는 식으로 소진랑을 피한다.

부인이 구멍밥을 먹고 있는 동안 천하궁에서 일을 하던 황우양씨는 수상한 꿈을 꾼 후 점을 쳐보고 집안 사정을 알게 된다. 한 달 일을 하루에 마치고 황산뜰에 돌아온 황우양씨는 부인이 소진뜰로 끌려가면서 몰래 숨겨 놓은 혈서를 읽고 전후 사정을 알게 된다. 소진뜰로 내려가 새로 변해 부인의 치마폭에 숨어든 황우양씨는 잠든 소진랑을 잡아 돌함에 가둔다. 황우양씨는 천하궁의 일을 마쳤고, 고난에 처했던 부인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천하궁에 동풍이 불면서 야기된 천지간의 위기가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잠재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시종 무능한 모습을 보이던 황우양씨가 소진뜰을 통과하면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제 힘으로는 연장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인간이, 소진랑의 꾀에 바보처럼 속아 넘어간 인간이 소진뜰로 마누라를 약탈당했다는 점괘를 보는 순간 180도 변한다. 영웅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소진뜰은 한 존재를 다른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통과의례적 공간이다. 소진뜰이 황산뜰과 천하궁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 공간의 성격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소진뜰이 지하세계를 상징하는 ‘내려가는 곳’에 있다는 사실도, 황우양씨 부인이 땅속 구멍에 갇힌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 통과의례의 공간을 건너면서 남녀 관계는 역전된다. 제 연장을 마련하지 못해 아이처럼 부인의 도움을 받던 황우양씨는 천하궁 일을 뚝딱 해치우고, 악인 소진랑도 뚝딱 사로잡는다. 감춰진 능력을 발휘하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그 뒤에서 영웅의 인도자로 활동하던 부인은 형편이 달라진다. 부인은 신이한 대장장이의 능력을 어디에 두었는지 소진뜰 소진랑의 겁탈에 수세적으로 저항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황우양씨와는 전혀 다른 통과의례를 겪는 것이다. 이 의례를 통해 대장장이는 정숙한 여염집 부인으로 재탄생한다.

이 재탄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재회한 부부가 황산뜰로 돌아간 첫날밤이다. 황우양씨는 엉뚱하게도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재주를 배웠는가 묻는다. 부인을 시험하려 드는 것이다. 그간 천하궁에서 누에 새끼 한 접시를 받아 키워 베 짜는 재주를 익혔다는 것이 다소곳한 부인의 대답이다. 대장장이에서 베 짜는 여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꾼 것이다. 주체성을 잃고 타자화된 여성(신)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마지막 대립항에 고개를 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성조신과 서낭신의 대립이다. 황우양씨는 소진랑을 죽이는 대신 소진랑을 비롯한 온 집안 식구들을 서낭신에 임명한다. 오가는 길거리에 서서 장사꾼들 침이나 받아먹으라는 뜻이다. 이 대립이 관심을 끄는 것은 성주신과 서낭신이 각각 정주와 이동 문화의 상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주신이 좌정해 있는 집이란 무엇인가? 정착과 농경의 상징이 아닌가. 서낭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 입구에 서 있지만 <성주본가>의 진술대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위한 신이다. 더구나 서낭신에게 뒷동산 닭이나 짐승들을 총으로 쏘아 먹게 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무리이동사회의 수렵문화까지 감지할 수 있다. 성주 무가는 소진랑으로 상징되는 수렵문화를 통과하여 집을 짓고 정주한 정착민의 노래인 것이다.

왜 집의 신 성주와 집터의 신 성주부인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을까? 왜 성주 부인은 대장장이에서 베 짜는 여인으로 변했을까? 또 소진랑은 왜 서낭신이 되었을까? 이런 의문들은 이제까지 살폈듯이 <성주본가>에 구조화된 몇 개의 대립항들이 풀어준다. 거기에는 이동에서 정주로, 수렵에서 농경으로, 그리고 남성중심 문화로의 변모라는 문화사의 내력이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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