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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3.10(목) 16:18

(16) 소년 할락궁이, 서천꽃밭 신이 된 사연


△ 구름에 가린 보름달빛을 받아 메밀꽃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저승의 한쪽에 있다는 서천꽃밭은 어떤 모습일까.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어미 주검 밟고
‘아비 찾아 삼천리’

꽃밭이 있다. 서쪽으로 삼천리를 가다보면 저승이 있고, 저승의 한쪽에 온갖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 있다. 그래서 서천꽃밭이다. 그러나 이 꽃밭에 피는 꽃들은 제비꽃이나 할미꽃, 혹은 진달래나 개나리꽃이 아니다. 수리멜망악심꽃, 도환생꽃,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 등 이상한 꽃이 피어 있는 꽃밭이다. 저승의 꽃밭. 죽음의 세계에 생명을 상징하는 꽃밭이라니? 신화적 상상력이 대단하다. 대체 무슨 꽃밭인가?

이 꽃밭에는 훌륭한 관리사가 있다. 정성껏 물을 주고, 이따금씩 불길한 부엉이가 울어대면 활을 쏘아 쫓기도 하는 관리사다. 아버지 원강도령의 뒤를 이어 꽃 감관(監官)이 된 소년 ‘할락궁이’가 바로 그 신(神)이다. 뭔가 신산(辛酸)함이 느껴지는 이름 ‘신산만산할락궁이’가 온 이름이다. 소년 할락궁이는 어떻게 저승에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거룩한 일을 담당하는 신이 되었을까?

제주 무가 ‘이공본풀이’ 보면
아비는 아내 팔아 저승 벼슬길
그 아들조차 생부찾기와
부엌데기 어미 죽음 바꾸니

제주도에 가면 <이공본풀이>라는 무가(巫歌)가 있다. 평안북도 지역의 <신선세텬님청배>, 경상남도 지역의 <악양국왕자노래> <방심굿>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제주도 것이 이야기가 잘 갖춰져 있다. 제주도에는 무당의 조상신에 관한 신화인 <초공본풀이>,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전상(前生)신에 관한 신화인 <삼공본풀이>가 있어 <이공본풀이>의 작명 내력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서 큰 굿을 할 때 두 번째 굿거리에서 청하는 신이 이공신(二公神)이다. 이 이공신의 본명이 오늘 우리가 만날 신산만산할락궁이다.

옛날 아랫마을 김진국과 윗마을 임진국은 자식이 없어서 걱정이었다. 친구였던 둘은 함께 절에 가서 수륙제(水陸祭)를 드리고 나서 각각 아들과 딸을 낳는다. 약속대로 둘은 사돈 사이가 된다. 세월이 흘러 김진국의 아들 원강도령과 임진국의 따님 원강암이가 스무살이 됐을 때 아이가 뱃속에 들어선다. 그러나 행복도 잠깐, 귀신의 시기 때문인지 원강암이의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원강도령은 서천꽃밭 꽃감관 벼슬을 살러가게 된다. 이 가족의 균열사태로부터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원강암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천행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서녘 삼천리, 저승길이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결국 원강암이는 도중에 주저앉는다. 더는 못 가겠으니 두고 가라고. 마침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자현장자의 집이 나타나자 원강암이는 자신을 저 부잣집 종으로 팔고 가라고 한다. 그 돈으로 저승길 노자를 하라고. 눈물겹다. 굿판의 청중들도 이 대목에서는 필경 눈물을 흘렸으리라. 자현장자는 막내딸의 말을 듣고 원강암이는 300냥에, 태아는 100냥에 산다.

이제 이별이다. 제주시 용담동의 심방 안사인이 구연한 <이공본풀이>에는 이 이별 대목이 절절하다. 인신매매가 끝나자 자현장자는 원강도령에게는 사랑방에 음식을 차려주고 원강암이에게는 식은 밥에 물을 말아 부엌 구석에 내어준다. 부엌데기 신세였던 하층 여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면이다. 그러자 원강도령이 청한다. “이 마을 풍습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마을 풍습은 서로 이별할 땐 상을 차려 마주앉아 먹게 하는 법입니다.” 이 원강도령의 발언 속에는 남성중심사회를 살았던 여성들의 환상, 남편과의 겸상으로 표현된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 이별의 만찬을 나누며 둘은 머리빗을 꺾어 증표를 나누고 태어날 아이의 이름도 짓는다.


△  제주도에서는 큰 굿을 할 때 할락궁이를 굿거리의 신으로 모신다. 사진은 제주시 화북동 곤을동 마을에서 열린 해원상생굿 모습. 제주/뉴시스



그러나 원강암이의 고난은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최초의 고난이 부모간의 혼약으로 만난 사내 원강도령의 서천꽃밭 행에서 왔다면 두번째, 세번째 고난도 사내들에게서 온다. 먼저 자현장자. 장차 무간지옥으로 떨어질 자현장자는 원강암이의 몸을 요구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성폭력의 문제다. 원강암이는 “우리 마을 풍습은 밴 아이를 낳아야 몸 허락하는 법”, “우리 마을 풍습은 낳은 아기 나이가 15살이 되어야 몸 허락을 하는 법”이라는 논리로 자신을 방어한다. 그러나 결국은 아들을 도망치게 했다는 죄목으로 자현장자에게 살해된다. 능지처참, 온 몸이 해체되어 버려졌으니 고난도 이런 고난이 없는 것이다.

세번째 고난은 아들 할락궁이한테서 온다. 할락궁이는 열다섯이 되자 아버지를 찾는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공본풀이>가 영웅 서사의 일반적 행로를 따라가고 있다는 점을 쉽사리 포착할 수 있다. 생부를 모르고 자란 영웅이 소년이 됐을 때 징표를 들고 부친을 찾아가 부친의 자리를 승계하는 이야기. 고구려의 유리왕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건국 영웅과는 달리 무속 영웅이라고 할 만한 할락궁이 이야기에는 좀 다른 국면이 있다. 그것은 어머니가 생부를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할락궁이가 묻자 원강암이는 자현장자가 아버지라고 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할락궁이의 대응이 흥미롭다. 어느 날 할락궁이는 콩을 볶아 달라고 한다. 어머니가 콩을 볶는 도중에 밖에서 누가 부른다고 속여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죽젓광이를 숨긴다. 돌아온 어머니가 죽젓광이를 못 찾아 허둥대자 아들은 콩이 다 탄다면서 손으로라도 저으라고 한다. 어머니가 솥에 손을 넣자 손을 꽉 누르면서 ‘고문’을 한다. 이래도 바른 말을 못하겠느냐는 심문이다. 결국 원강암이는 “너희 아버지는 서천꽃밭 꽃감관 꽃성인이시다”라고 실토한다.

인간 생사 주관하는 남성신이
어미의 고난을 딛고 오른다?
이는 부계사회로의 변화속
자기희생 여성 목소리 짙게 깔려

대체 생부의 정체가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고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일까? 그런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제석본풀이>에도 나온다. 아들 삼형제는 어머니 당금애기가 아버지의 정체를 숨기고 자꾸 거짓말을 늘어놓자 마지막에는 칼을 들고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겁박한다. 생부의 정체를 숨기려는 생모의 몸짓이 <이공본풀이>만의 특수성은 아니라는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잘 안 되는 이런 신화적 현상은 기실 부계 중심 사회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다. 생부를 찾아 적자임을 확인해야 소년이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사회, 아버지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가 신화에 투영된 것이다.

건국신화나 왕권신화의 어머니들은 아들의 아버지 찾기에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 부쿠리용손의 어머니 부쿠룬(만주신화)은 모두 아들을 키워 때가 되자 아버지를 알려주고, 나라세우기라는 삶의 목표까지 제시한다. 건국신화는 이미 아버지의 서사이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의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속신화는 형편이 다르다. 무속신화에는 여전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다. 여무(女巫), 혹은 여성화된 무당과 부녀자 청중의 만남이라는 굿판의 특성과 무관치 않다. 원강암이는 단지 아들이 도망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에 생부를 숨겼던 것이 아니다. 당금애기가 아버지가 중이기 때문에 숨긴 것이 아니듯이. 거기에는 사회형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신화의 속살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가 주로 어머니 원강암이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아들 할락궁이의 이야기다. 할락궁이는 어머니에게 만들어 달라고 한 메밀범벅 세 덩이를 들고, 부러진 빗을 품고 자현장자 몰래 길을 나선다. 메밀범벅은 장자의 천년둥이 개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미끼다. 무사히 추적을 벗어난 할락궁이는 달리고 달려 무릎까지 잠기는 물, 잔등이까지 차는 물, 목까지 찬 물을 건너 서천꽃밭에 들어간다. 거기서 할락궁이는 아버지와 머리빗을 맞추어 친아들임을 확인한다. 유리가 주몽과 부러진 칼을 맞추었듯.

그런데 아들임을 확인한 아버지는 아들이 건너온 세 종류의 물 이야기를 한다. 그게 바로 네 어머니가 자현장자 앞에서 죽음을 세 번씩이나 ‘다짐받던 물’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너는 네 어미의 주검을 밟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할락궁이에게 수레멜망악심꽃,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으로 원수를 갚고, 도환생꽃으로 어머니를 살리라고 명한다. 꽃으로 무장하고 돌아온 할락궁이, 자현장자 집에서는 한바탕 복수극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복수극은 일반적인 복수극과는 다르다. 싸움싸울꽃을 던지니 자현장자 일가친척끼리 싸우고 수레멜망악심꽃을 던지니 저희끼리 멸망하는 자멸극이다.

이제 할락궁이는 여기저기 버려진 머리와 몸뚱이와 무릎과 뼈를 모아 도환생꽃으로 어머니를 환생시킨다. “봄잠이라 오래도 잤다”며 살아나는 어머니. 마침내 우리의 신산만산할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천꽃밭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꽃감관이 된다.

<이공본풀이>의 풀이는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우리에게는 마무리할 수 없는 ‘풀이’가 있다. 할락궁이는 꽃으로 자현장자 일가를 죽이고, 꽃으로 어머니를 살린 인물이다. 할락궁이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이공신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게 누구 덕인가? 아버지를 잘 둔 덕? 아니다. 그 아버지 역시 원강암이가 스스로를 종으로 판 덕에 무사히 저승의 꽃밭감관이 된 존재다. 게다가 그 아들은 어머니의 주검까지 밟고 서천꽃밭에 가지 않았는가. 모두가 원강암이의 모진 고초 덕이다.

<이공본풀이>와 깊은 관계가 있는 위경(僞經) <안락국태자경>이 원강암이가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의 여성적 이미지가 원강암이의 자기희생과 닮았기 때문이다. 비록 남성신의 내력을 풀이하는 신화지만 <이공본풀이>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깊고 은밀하게 스며 있다.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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