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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닮은 영산강가 5~6세기 고분


△ 고대일본의 장고형 무덤형태를 띤 광주 월계동 고분

남도의 광주 변두리와 영산강 강가에는 기묘한 모양새를 지닌 5~6세기 옛 무덤들이 10여 기 널려있다. 앞은 네모꼴, 뒷쪽은 둥그렇게 생겼다고 해서 `장고형 무덤' 혹은 `전방후원분'이라고 불리우는 이 무덤들은 학자들의 발굴대상에서 빠지거나 발굴해도 보고서를 쓰지않기가 예사이다. 이른바 `왕따'당하는 무덤들이다.

기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3~5세기 고대일본의 무덤양식을 빼닮은데다 원통형 모양새의 토기류 부장품도 일본무덤 주위에 열을 지어 놓였던 장식토기(하니와)들과 별 차이가 없는 까닭이다. 우리 문화의 일본 전파만 가르쳤던 교과서 상식과 어긋나는 것도 그렇지만 봉분이나 토기모양 등이 당시 일본 야마토정권의 장묘풍습을 본떴다는 점에서 이들 유적은 국내학계가 쉬쉬해온 콤플렉스였다. 실제로 광주, 해남, 영암 등지의 장고형 무덤들 가운데 보고서가 나온 것은 광주 명화동 무덤뿐이며 무덤주인공이나 일본과의 연관성에 얽힌 가설들은 무덤이 발견된 80년대 이래 오히려 일본학자들이 활발하게 제기하고 있다.

최근 국내학계에서 미흡하나마 이 문제를 되짚자는 움직임이 일고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두 결과물이 눈에 띄는데, 첫째는 4일 국립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한·일 고대의 문화교류'심포지엄이었고, 둘째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최근 나온 전남 나주 신촌리 9호분 재발굴조사보고서이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과 박순발 충남대교수, 기노시타 일본나라현립연구소 연구원 등 한·일 학자 10여 명이 참석한 심포지엄은 박 교수가 발제한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과 하니와'가 시종 고갱이였다. 박 교수는 발제에서 무덤주인공이 왜인 아닌 토착세력이라고 못박았다. 장고형이나 옹관무덤 주위에 묻힌 원통형 장식토기를 `분구수립형 토기'라고 명명한 그는 그 뿌리가 일본열도의 하니와에 있으며 5세기 전반부터 등장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를 만든 장본인은 현지 유력자들로 이곳을 압박했던 백제를 견제하고 일본세력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등의 정치적 배경에서 일본의 아이디어를 빌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성낙준 국립김해박물관장은 “원통형토기는 천안에서도 비슷한 것이 나온만큼 일본영향설은 유보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1917년 일제발굴당시 금동관, 고리칼 등의 유물을 쏟아낸 신촌리 9호분의 재발굴 분석결과를 담은 연구소 보고서 역시 무덤 가장자리에서 줄이어 출토된 원통형 토기가 일본 하니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받침대에 항아리 얹힌 형태가 일본에 극히 적고 태토, 제작기법 등에서 토착냄새가 난다는 점, 인물·동물상이 많은 일본하니와의 특징이 없다는 점 등으로 미뤄 일본과 가까왔던 현지세력이 하니와의 모양을 참고해 만든 창작품이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장고형 무덤에 관한한 일본이 논의를 주도하는 양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교대상인 일본옛무덤에 대한 고고학전공자가 극히 드물어 축적된 연구성과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일본고고학 전공자인 충남대 우제병 조교수는 “일본연구자들은 서태지 음악까지 들으며 한반도 옛 무덤과 토기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주/노형석 기자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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