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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6.26(일) 17:53

이라크. 아직도 끓는 분노…이라크인들 “TV가 유일한 낙”




이라크 ‘주권이양 1년’

치안불안 집밖 못나가
채널 3개서 10여개로

이라크에서 텔레비전의 황금시대가 열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 차량폭탄이 터질지 모르고 야간 통행금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텔레비전이 이라크인들의 유일한 도피처가 되고 있다고 <가디언>이 최근 보도했다. 극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박물관은 심하게 약탈당한 상태다. 현실이 폭력으로 치닫을수록 이라크인들도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후세인 시절 3개뿐이던 채널은 이제 10여개로 늘었고, <알자지라> <알아라비야> <알알람> <퓨처텔레비전> 등 아랍어 위성채널들도 호황을 맞고 있다. 집집마다 위성 안테나 접시가 설치됐고, 텔레비전 판매도 크게 늘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배우와 작가, 연출자들은 텔레비전 출연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라크의 짐 케리로 불리는 코메디언 마지드 야신은 “이라크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극장에 가면 누군가가 폭탄을 ‘빵’ 터뜨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텔레비전 인기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 주인공들이 많은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집트식 코미디가 이라크인들의 현실도피 심리에 호소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지만, 남녀 주인공들이 자살폭탄 공격으로 숨지는 드라마 <전쟁과 사랑>이나, 납치와 구타, 살인 등 이라크의 일상을 다루는 리얼리티 쇼인 <밤의 늑대들>도 시청률이 높다. 그렇지만, 많은 배우들은 보복이 두려워 저항세력들을 비난하는 역할을 맡지 않으려 한다. 한 배우는 <가디언>과 회견에서 저항세력들을 의식해 자체 검열을 한다며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결코 그들에 대한 농담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차량폭탄 사상 7천여명

1년 전 6월28일 바그다드 중심 ‘그린존’의 한 건물에서 철통 같은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이라크 주권이양식’이 열렸다. 미군이 주도하는 이라크 점령당국은 저항세력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깜짝쇼’로 주권을 이라크 임시정부에 넘겨줬다.

‘주권이양 1주년’을 맞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환호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수도 바그다드마저도 ‘4시간 정전된 뒤 고작 2시간 전기가 들어오곤 하는’ 열악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비비시>는 50℃의 폭염에 습도가 98%까지 치솟는 무지막지한 더위 속에서 이라크인들의 분노도 함께 끓어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라크인들에게 직업을 마련해 주기 위해 직업훈련소를 세우는 등 8800만달러를 투입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직업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저항공격 더 심해져…미, 수니파 달래기도
미국내 지지여론마저 추락 “미군 나와라”

저항공격으로 인한 치안불안은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졌다. <에이피통신>은 지난해 주권이양부터 지금까지 최소 479건의 차량폭탄 공격으로 2174명이 숨지고 5520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특히 지난 4월28일 이라크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무려 160건의 차량폭탄 공격이 일어났다. 저항세력의 사제폭탄 제조 기술과 전술이 정교해져 피해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최근 공개된 미 중앙정보국(CIA) 기밀문서는 이라크가 알카에다의 초기 근거지가 됐던 아프가니스탄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인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훈련소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이라크 주둔군 철수 일정을 둘러싼 논란만 치열해지고 있다.

이라크 연합군 사령관인 존 바인스 중장은 21일 “이라크에서 철군은 현지 상황에 달려 있으며 전격적인 대규모 철수는 상책이 아니다”라는 전제 아래 이라크에서 새 헌법에 따른 선거가 실시된 뒤인 3월까지는 이라크 주둔 미군 13만5천명 가운데 1만5천명의 철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23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한국전 때 전투에 참가한 미군에게도 철수시한이 정해진 적이 없었다”며 철수시한을 정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또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은 틀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숨이 넘어가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고 말했던 딕 체니 부통령도 24일 <시엔엔>에 출연해 “과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미군은 철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이라크전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최근 <에이피통신>과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41%만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수행 방식을 지지했으며, 60%는 이라크에서 부분 또는 전면 철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미군 사령관이 부분 철군 일정을 내놓은 것도 결국 이런 미국 국내 여론을 달래면서, 저항세력의 명분과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계산된 발언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시리아에서 넘어오는 외국인 전사들을 소탕한다면서 대규모 작전을 벌였지만 저항공격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자 많은 미군 지휘관들은 ‘군사적 방법’만으로는 저항공격을 제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미 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잇따라 이라크를 방문해 이라크 정부가 “수니파에게 더 많은 역할”을 줘야한다고 ‘압박’하며, 수니파에 화해의 손짓을 내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 헌법초안작성위원회는 지난 16일 기존 수니파 대표 2명 외에 추가로 15명을 참여시키기로 수니파 지도부와 합의했다. 이란과 관계가 깊은 현 이라크 지도부를 견제하기 위해 미군은 과거에 ‘후세인 지지세력’ ‘저항세력의 주축’으로 비난했던 수니파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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