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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배구/농구 등록 2003.01.29(수) 16:24

배구계 이경수 파동의 전말

대한배구협회와 본격적인 소송 절차에 들어간 이경수(24.LG화재) 자유계약 파동은 대학의 `본전심리'와 LG화재의 피해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예고된 사건이다.

특히 90년대 이후 NBA의 폭발적 인기가 배구가 농구보다 인기를 끌고 있던 국내 겨울스포츠 판도에 변화를 줘 배구인기 하락 및 실업팀 해체, 프로화 난항을 부채질한 것도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경수 파동의 전말과 책임 소재, 이를 둘러싼 진실을 파헤쳐본다.

△서곡 이경수 문제는 2000년 12월 두번째 드래프트가 실시된 직후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배구의 실세였던 한양대 송만덕 감독은 일부 언론를 통해 이경수의 자유계약 입단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공론화를 시도했고, 송 감독의 측근인 김경운(홍익대),유중탁(명지대) 감독 등 대학세가 대부분 이에 거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2년연속 드래프트로 재미를 보지 못한 대학들은 97년 신진식(성균관대)이 18억원(추정)을 받고 삼성에 간 점을 상기시키며 "이경수는 20억원은 받아야하며 이를 위해선 자유계약으로 바꿔야한다"며 여론몰이를 노골화했고, 이에 실업팀들은 이경수의 드래프트 1순위 계약금을 10억원 안팎으로 현실화하자며 공세에 맞섰다.

△실업 양분 대학의 투정으로만 치부되던 이경수 문제를 `파동'으로 키운 것은 LG화재였다.

"드래프트가 아니면 해체"라며 김찬호 감독 때인 2000년 슈퍼리그에 불참하기도 했던 LG화재는 2001년 7월 김 감독이 경희대 교수직을 보장받고 모교로 옮기면서 그의 경북사대부고 후배인 노진수 성균관대 감독을 영입했다.

노 감독을 세운 LG화재는그 때부터 이경수 자유계약론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LG화재는 9월24일 대한항공, 삼성화재와 함께 드래프트 유지를 천명했지만 나흘 만에 돌연 "자유계약도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때를 맞춰 현대도 자유계약 지지 입장을 밝혔고 송 감독도 "이경수가 현대에 갈 수도 있다"고 거듦으로써 실업 4팀은 드래프트 유지와 폐지로 양분됐다.

△배구계 진통 그해 10월15일 LG화재가 "드래프트에 의한 선수를 뽑지 않겠다"고 기존 제도의 폐지를 협회에 공식 요구하면서 이경수 파동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이에 협회는 LG화재의 요구 내용이 팀 해체 불사로 판단, 이사회를 열고 드래프트 존속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그날 회의에선 송만덕(강화), 이춘표(국제), 최종옥(시설) 이사 등이 자유계약제 전환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조영호(전무) 이사 등 나머지 인사들은 이경수에 대해 사실상 지분을 갖고 있는 대한항공의 해체를 우려해 "실업의 자율에 맞기자"고 나서 결론이 유보됐다.

그러나 실업 단장회의에선 드래프트를 없애자는 현대와 LG화재에 맞서 대한항공이 팀 해체, 삼성화재가 슈퍼리그 보이콧으로 대응해 결론을 내지 못했고, 이에 조영호 부회장 겸 전무는 "원칙대로 하자"며 10월30일 드래프트 유지에 손을 들어줬고 일주일 후 드래프트 유지가 공론으로 확정됐다.

△이경수 자유계약 강행 협회가 드래프트 유지로 결론을 내자 이경수와 LG화재는 드래프트 불참을 결정했고, 이에 협회는 이경수에 대해 "드래프트 없이는 실업에 못 간다"고 못박음으로써 강경 대응했다.

사태를 관망하던 LG화재는 결국 협회가 12월 3번째 드래프트를 강행하자 2002년 1월 이경수의 12억원(선수 8억+학교 4억) 계약 입단을 전격 발표했다.

LG화재가 발표를 앞당긴 것은 현대의 심상치 않은 행보가 결정적이었다.

앞서현대는 강만수 감독을 경질하고 한양대 송만덕 감독을 영입한 뒤 송 감독의 입을 빌어 이경수의 현대행 가능성을 흘려 느긋하던 LG화재를 압박했다.

"송 감독이 현대에 갔으니 모르겠다"는 이경수측의 애매모호한 자세도 LG화재의 발표를 앞당긴 요인이었다.

△송만덕 감독이 밝힌 진실 송만덕 감독은 29일 당시 이경수의 LG화재행과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문에 대해 이제 하나라도 숨길 게 없다"며 사태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송 감독은 "이경수와 LG화재가 가계약을 맺은 것은 내가 한대 감독으로 있던 9월이었고 전체 계약금은 11억원에서 좀 넘는 액수"라면서 "그러나 협회가 드래프트를 유지하려고 하자 이경수부모를 찾아 `12억원은 드래프트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다.

LG에 돈을 돌려주자'고 애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감독의 해명이 신빙성을 갖는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최근 LG화재가 임시 드래프트 참여를 조건으로 이경수 계약금이라며 16억원의 공탁금을 내건 사실을 미뤄볼 때 `송 감독이 현대로 간 후 이경수측의 심경이 흔들리자 LG가 추가로 4억원을 지급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본선 라운드 자유계약으로 인해 선수등록이 거부된 이경수는 드래프트주의자였던 김찬호 전LG화재 감독이 경희대로 간 뒤 소신과 달리 자유계약으로 친정팀에 보낸 세터 황원식과 함께 협회를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 2002년 6월 승소했다.

이에 따라 협회는 이들을 일반선수로 등록시킨 뒤 이의신청을 냈으나 이달 중순 기각되자 29일항소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누구 책임인가 이경수가 자유계약을 강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배구계의 그릇된 풍토와 협의의 `갈짓자' 행보와 무관치 않다.

특히 협회는 지난 97년박병래 전무 당시 프로화를 한다면서 대학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드래프트 유보를 선언했고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삼성화재가 대학 4인방을 싹쓸이, LG화재의 피해의식을 키워놓았다.

LG화재의 경우 96년 김세진과 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협회가 "삼성이 창단 조건으로 김세진을 달라고 한다"고 해 억울하게 내준 경험이 있다.

김세진 파문 때 협회에 쌓인 서운함이 결국 이경수 파동으로 연결, 폭발한 셈이다.

그러나 과거를 따지기에 앞서 이경수의 자유계약은 고작 남자 4팀만이 남은 배구계 현실과 질서를 감안할 때 무리수임에 틀림없으며, 이에 관여한 당사자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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