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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 고치니 몸도 힘을 냈다

△ 만성백혈병으로 진단돼 3~6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도 들었지만, 하루 하루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5년째 “행복하게” 사는 권성기씨. 다른 질환자들과 일자리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만성백혈병 환자 권성기씨

서른살에 시한부 선고 심장 기형 자식 보듬으며
“5년째 연장된 삶 사뢰에 도움주다 갈 것”

서른 살, 곧 아빠가 될 사람이 갑자기 백혈병에 걸려 3~6달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권성기(35·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씨 삶이 그랬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2001년 1월. 모두가 새해를 활기차게 시작하고 있었지만 권씨는 만성 피로에 시달렸다. 피로감은 한 달이상 계속됐고 미열도 생겼다. 병원을 찾았다.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의사는 신체 검사 등 몇 가지 진찰과 피 검사를 한 뒤 만성골수성백혈병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 병은 뼈의 골수에서 적혈구, 백혈구 등을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의 변형으로 암 세포가 만들어지는 혈액 암의 한 종류다. 초기 과정 3~5년이 지나면, 3~9개월의 가속기를 거쳐, 급성기에 접어들면 대개는 3~5달만 살 수 있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이 뭔지를 그때 알았습니다.”

맨 먼저 임신 6개월이었던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생각났다. 이어 두려움이 그를 덮쳤다. 살고 싶었다. 아내를 위해, 아이에게 아빠 얼굴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했다. 이곳 저곳 병원을 찾아 다녔다. 항암제, 인터페론 등을 처방받았다. 골수이식을 위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대만까지 찾아 다녔지만 면역 거부 반응을 해결한 만한 골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냈다. 그해 3월.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급성기로 진행됐다. 의사는 앞으로 남은 삶이 3~6달 정도라고 ‘선고’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권고사직으로 월급 500만원을 받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권씨의 형수도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돼 자가 골수 이식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그해 5월에 태어난 아이마저 선천성 심장병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과 아이의 수술비와 치료비 등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단란했던 가족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사였던 권씨는 1~2년 만에 집을 포함해 모든 재산을 치료비로 다 날리고 2003년에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예전 생활보호대상자)가 됐다. 아내와 싸움도 잦아졌다.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도 돈이 궁한 그로부터 점차 멀어져갔다.

“세상의 고통은 모두 다 제게 있는 것 같았어요. 없었던 우울증도 생겼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냥 죽고 싶었다.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운이 좋았던지”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권씨에게 삶의 희망을 준 이는 바로 심장 기형을 가진 아이였다. 그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꼭 보고 싶었다.” 그 바람이 그에게 힘을 줬다.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힘이 되는 일이 생겨났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한국백혈병 환우회도 알게 됐다. 날이 갈수록 삶의 의지가 강해졌다. 하늘도 그를 도왔다. 같은 병을 앓던 환자들로부터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던 백혈병 치료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담당 의사는 약을 꾸준히 먹으면 9달~12달 가량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당시 그 치료제는 우리나라에 아직 정식 허가를 받기 전이었으며, 약값도 한달 200~300만원이 들 정도로 비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돈이 없어 죽어가는 환우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도 돈이 떨어지면 그들처럼 될 터였다. 2003년 1월에는 치료제의 보험급여 인정 등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벌였던 점거 농성에 참여했다. 그 뒤 그 약은 보험급여에 포함됐고 그는 2003년 수급권자가 되면서 무료로 약을 타다 먹고 있다. 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아이도 수술을 세 차례나 받긴 했지만 지금은 잘 크고 있다.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지만 그는 “행복한 환자”다.

“3~5달 남았다는 삶이 벌써 5년으로 연장됐어요. 약이 병을 고쳐주는 것은 아닙니다.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동안 자신만을 돌보며 살아왔는데 남은 삶은 사회를 위해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려고 해도 암환자라고 받아주지 않아요.”

권씨는 질병이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며, 요즘 들어서는 환자가 할 수 있는 직업 재활 방안에 대해 ‘환우’들과 논의하고 있다. 그는 주위에서 올바른 의학 지식을 가져 백혈병 환자들에게 쏠리는 오해가 없어지길 바란다.

“백혈병 환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보통 사람들은 백혈병이 전염병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또 백혈병은 아이들이나 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 병의 85% 정도가 어른들에게 생긴답니다. 질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의학 지식을 공부하고 의사를 협력자 삼아 헤쳐 나가야 합니다.”

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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