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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5.25(일)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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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풀려진 성 강박풀고 소통하라


△ 성생활에도 ‘소통’이 필요하다. 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지닌 채 아무 대화 없이 성생활을 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기 십상이다. 사진은 ‘하룻밤 인연’으로 시작했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대화와 심리를 묘사한 영화 <베터 댄 섹스>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지금 이랬을 때 느낌이 좋아, 아까보다 지금이 좋아, 이런 말들을 나눠요. 상대가 먼저 말하기도 하고, 제가 묻기도 하고요.”

“저는 야한 말을 많이 해요. 다들 안 하나요”

“남자들은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해요. 보험청구서 언제 나오냐…. 사정시간을 일부러 늦추려는 거죠. 애국가를 부른다든가, 숫자를 거꾸로 외운다든가…. 참, 영어사전 외우는 사람도 있대요.”

지난 21일 서울 장충동 여성사회교육원에서 서울여성의전화 ‘평등문화를가꾸는 남성모임’이 연 ‘성생활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토론회. 강사로 나선 인터넷 줌마네 로리주희(35) 부대표가 “성관계 할 때 상대방과 대화한 경험이 있는 분은 손 들어보라”고 말했다.

토론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생활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위해 모였지만, 참가자 15명(여성도 한 명 있다)은 쑥스러워했다. 머뭇머뭇 4명이 손을 들었다. “체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든가 “남성들이 사정시간을 늦추는 것은 삽입으로 여성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부부간 성관계에서 내가 가진 문제는 어떤 게 있을까 궁금해서 왔다”는 회사원 전병진(33)씨, 남녀파트너십프로그램을 운영중이라는 외국인 하유설 신부, 남학생들한테 평등교육 시키고 싶다는 교사 최낙성씨, 여성학 강의 숙제를 하러 왔다는 대학생들, 여성운동이 너무 활발해 남성들이 위축되는 게 아닌가 염려된다는 60대 남성 등 다양한 참가자들은 2시간 넘게 “왜 소통하는게 중요할까”를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된 왜곡된 통념들이 성생활에서 갈등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횟수’에 대한 강박이 대표적이다.

“40대 기혼여성이 상담을 청해왔어요. 남편이 성관계를 요구할 때 싫다고 하면, ‘내 나이 남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해’라고 화를 낸대요. 이 여성이 ‘몇 달에 한 두 번 하는 나는 비정상이 아닐까’ 고민하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모두 사정이 비슷하더라는 겁니다. 혹시 이 남편의 말이 허풍은 아닐까요”

로리씨는 한 가지 사례를 든 뒤 남성들끼리 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지 물었다. 참가자 대부분 다른 사람 이야기, 대상화한 성, 불륜, 룸살롱에 간 경험 등을 주로 얘기한다고 말했다. “자기 경험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성문제가 생겼을 때 제한된 정보에만 의지하게 된다”는 강사의 지적이 이어졌다. 제한된 정보란, 곧 왜곡되거나 실제보다 부풀려진 정보를 뜻한다. 성관계 횟수는 사람마다, 때마다 다 다르고 다양한데도, ‘누구는 하루에도 몇 번 한다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마치 ‘정상적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포르노에서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못 잊는 여자 얘기를 본 뒤 나도 모르게 여자들은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떨쳐내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유창호씨·30)

“남성들이 중학교때 포르노를 많이 보게 되는데, 거기에서 잘못된 지식을 너무 많이 얻게 되는 것 같아요.”(임경빈씨·25)

포르노는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가장 많이 퍼뜨리는 것으로 지목됐다. 로리씨는 “포르노에 나오는 표정과 행위, 소리 등을 자기도 모르게 학습하게 된다”며 “왜곡된 성을 학습한 상태에서 성생활을 하다보면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성들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중시하고, 성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분위기가 “피곤하다”고 말했다.

“여성잡지들을 보면, 남자들이 사정 빨리 하고 곯아떨어진다며 타박하거나, 풀타임서비스를 해줘야 한다고 하잖아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여자들은 센 걸 원하는구나’, ‘여자가 오르가즘을 느끼기 전에 사정하면 안 되겠다’는 강박이 생기죠.”(정채기씨·42)

“허풍과 환상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남성들한테도 피곤해요. 남성들이 성상품화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한상춘씨·33)

로리씨는 “그래서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녀가 서로 다른 정보, 더구나 그릇되거나 부풀려진 정보를 갖고 있는 한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마련이다. 로리씨는 “우리가 잘못 배워서 갖고 있는 환상체계를 무시해보자”며 “정보를 얻게 됐을 때 상대에게 물어보라”고 권했다.

“성에 대한 대화는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번번히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성생활에 있어선 더 어렵죠. 서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죠. 먼저 고민해보세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토론 벌인 ‘평등문화 남성모임’
“성 편견 허물자”의기투합 일상속 실천


△  지난 21일 서울 장충동 여성사회교육원에서 서울여성의전화 평등문화를가꾸는남성모임 주최로 열린 ‘성생활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토론회 모습.

“여성들이 ‘여성다움’에 얽매여 있듯, 남성들도 ‘남성다움’에 매여 자신의 문제를 성찰해 볼 기회가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의식구조와 남성다움 콤플렉스를 찾아내 극복하고 싶습니다.”

서울여성의전화 평등문화를가꾸는남성모임은 95년 “여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남녀가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은 남성 30여명이 만든 모임이다. 들락날락하는 회원들도 많아 현재 회원은 10여명이다. 공무원, 교수, 외국인신부, 교사, 대학생 등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남성들이 모여 토론도 하고, 여성단체 행사 등에 우르르 몰려 다니기도 한다. 2000년에는 미국에서 남성들한테 폭력의 부당함을 교육할 때 쓰는 교재 ‘멘즈 워크(원제 Men’s Work)’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 모임이 열어 온 토론 주제는 ‘남성다움에 대해’, ‘내 삶에 있어서 폭력의 동일화’, ‘명절의 가사분담’,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아내강간’ 등이다. 한상춘(33) 대표는 “남성과 여성의 삶의 안팎에 드러나는 여러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 편견을 허물기 위한 것”이라며 “미래사회에 걸맞는 평등한 관계는 이론적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달 둘째주 수요일 열리는 토론모임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02)2272-2161.

글·사진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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