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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0.20(일)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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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미지 왜곡하는 TV드라마


△ 가정을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는 딸이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 여동생에게 복수하는 드라마 <인어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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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가방에서 아리영과 주왕이 함께 찍힌 사진을 꺼내 아리영 앞에 놓는다)

    아리영:(피식 웃으며) 잘 나왔네요, 사진.

    수정:(아리영 뺨을 갈긴다)

    아리영:(수정 뺨을 두대 이어서 갈긴다)

    수정:날…쳐…야!

    아리영:다시 한번 손대봐! 난 죽구사는 거 몰라.

    최근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 <문화방송>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의 한 장면이다. 아버지가 인기탤런트 심수정과 바람이 나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버려진 주인공 아리영은 방송작가로 성공한 뒤 심수정을 괴롭히고, 둘 사이에서 난 이복 여동생의 남자친구까지 빼앗는다. 위 장면은 주인공 아리영의 음모를 알아낸 심수정이 아리영을 때리자, 아리영도 이에 질세라 맞받아치는 장면이다.

    전형적인 복수극의 줄거리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이다. 복수에 눈이 먼 아리영,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복여동생 예영, 사치와 예영에 대한 질투로 소일하는 마린. 반면, 가정을 버린 아버지를 비롯해 주요 남자 주인공들은 점잖고 교양있을 뿐 아니라 이해심 많은 인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때문에 주요 갈등은 여성들 사이에서만 벌어진다. ‘인어아가씨’에서는 정작 갈등의 씨앗을 뿌린 아버지는 갈등구조에서 빠져나와 있고, 오로지 그를 둘러싼 여자들만의 전쟁이 있을 뿐이다.


    △  동생이 친언니의 애인을 뺏기 위해 갖은 술수를 쓰는 드라마 <당신 옆이 좋아>

    각종 드라마에서의 여성상 왜곡이 심각하다. 흥미 위주로 스토리를 전개하다보니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구식시대적 캐릭터가 여전히 등장하는가 하면, 여성들이 온통 남자들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으로 그려지는 등 온통 희화된 여성들 뿐이다. 이런 데서 양성평등적 관점은 발붙일 틈조차 없다.

    지난 9일 여성부와 한국방송작가협의회가 강원도 강릉에서 마련한 ‘남녀평등문화 정착을 위한 방송작가 워크샵’은 드라마 등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성차별 실태을 점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한국여성개발원 이수연 연구위원은 이날 주제 발표를 통해 3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11편을 모두 72회에 걸쳐 모니터한 결과 대부분의 드라마가 여성과 남성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고스란히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니터 결과 <에스비에스>의 주말드라마 ‘그 여자 사람잡네’와 일일드라마 ‘오남매’가 가부장성, 성적 대상화, 전통적 성역할 강조 등 성차별 요소가 가장 강한 드라마로 꼽혔다.

    돈 많고 능력있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매도 친구도 없다


    △  친구 사이인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두고 끊임없이 다투고 갈등하는 드라마 <그 여자 사람잡네>

    드라마에서 여자의 적이 여자가 되는 이유는 남자 때문이다.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여자들의 비열한 경쟁과 술수가 주요 줄거리다. <한국방송> 일일드라마 ‘당신 옆이 좋아’에서는 여동생이 친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언니의 애인이 전해준 편지와 목걸이도 숨기고 결국 언니가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직전에 결혼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그 여자 사람잡네’에서는 20년지기 여자 친구인 복녀와 상아가 천수라는 남자를 두고 싸우다가 결국 복녀가 천수와 결혼하게 되지만, 상아는 계속 천수를 유혹하기 위해 꾀를 짜낸다. 지난달 막을 내린 <문화방송> 월화드라마 ‘내 사랑 팥쥐’는 ‘착한 여자 컴플렉스’ 극복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를 내비쳤지만, 오랫동안 우정을 가꿔왔다는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이 남자를 두고 다투는 게 주요 줄거리다. 반면, 이 드라마에서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성 주인공들은 정정당당하게 대결하다 결국에는 좋은 친구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또 이들 여성 주인공들은 대개 가난하거나 이른바 결손가정 출신인데 반해 남성들은 부와 사회적 명예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신데렐라 신드롬’을 재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  여자 주인공들은 남자를 두고 비열하게 싸우는 반면, 남자 주인공은 정정당당하게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준 드라마 <내 사랑 팥쥐>

    ‘그 여자 사람잡네’는 전통적인 고부갈등도 판에 박은 듯이 되풀이했다. 아들과 손주에게는 너그럽기만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20년 넘게 참아낸 며느리는 또 자신의 며느리에게 분풀이하듯 구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 역시 집안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아들은 뒤로 빠지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만 부각된다.

    이처럼 되풀이되는 드라마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작 과정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 드라마 사전 제작설명회 등의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김옥영 부이사장은 “작가 중 여성 비율은 압도적이지만, 방송 3사의 여성 연출가는 7.5%, 차장급 이상 관리직급은 5.4% 밖에 되지 않는다”며 “방송 제작 시스템 안에서 여성들의 의사 결정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여성미디어센터 사무국장은 “미디어의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드라마를 제작하기 전에 기본적인 캐릭터와 갈등 유발 구조 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어 여성단체 등 전문가와 토론하는 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아리 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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