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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2.25(금) 18:23

여름엔 30~40척 배가 둥실…“이젠 꿈이지”


△ 1968년 폭파되기 전의 밤섬의 나룻개(왼쪽 백사장)를 당인리 발전소 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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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잠실도·부리도 - 뽕밭이 ‘콘크리트숲’ 으로
  • ② 난지도 - “두번, 천지가 개벽했지”
  • ③ 여의도-한강개발, 1백만평 백사장을 삼키다
  • ④ 뚝섬 - 왕의 숲, ‘평민의 숲’으로 환생하다
  • ⑤ 노들섬 - 그 많던 피서객들, 다 어디로 갔나
  • ⑥ 선유도 - 나는… 섬이 아니요 ‘산’이외다
  • ⑦ 저자도 - 35만평 모래섬 어디로 사라졌지?


  • ⑧ 서울의 섬 - 밤섬

    “밤섬에는 배 짓는 집이 가장 많았어. 주로 봄여름에 배를 지었는데, 여름에는 서강 쪽 넘은둥개에 배가 30~40척씩 서 있었지. 자가용 배, 짓는 배, 고치는 배, 빌려온 배들이 모두 모여 있었어.”

    밤섬 출신 배목수 김성영(80)씨가 기억하는 밤섬은 배를 짓는 마을이었다. 밤섬 사람들의 배 짓는 솜씨는 아랫강(한강 하류) 지나 강화도, 서해까지 널리 알려졌고, 윗강(상류)으로는 단양, 영월까지도 배를 지으러 다녔다. 그러나 이제 밤섬 사람들은 배를 짓지 않는다. 배를 탈 곳도 없고 배를 만들어 달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밤섬은 배 짓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 밤섬 주변에 삼개(마포)·양화·노들(노량) 등 나루가 발전하면서 밤섬은 한강 배들의 제조·수리공장 노릇을 했다. 일제 때 가장 배목수가 많았을 때는 전체 100여가구 가운데 50여가구가 배를 짓기도 했다.


    △ 밤섬은 애초 서강대교 동쪽에 있었으나, 퇴적에 따라 서강대교 서쪽에 윗밤섬이 새로 생겨 새와 식물들의 터전이 됐다.


    여러 대를 밤섬에서 살았다는 김공선(71)씨도 밤섬이 배 공장이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 마포나루에 새우젓, 조기, 쌀 등을 부린 배들이 밤섬에서 배를 수리하고 서강 쪽 공소태에서 얼음을 싣고 나갔어. 뱃사람들은 밤섬에서 술을 마시며 기다리곤 했지.”

    예전에 밤섬 배목수들이 만들었던 배는 10종류가 넘었다. 가장 큰 배는 짐실이배였던 쌈판으로 길이가 15~18m 정도였으며, 사람과 짐, 자갈, 모래 등 뭐든지 실었다. 15m 정도의 조깃배 ‘나가사키’는 앞이 뾰족하고 날씬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영월·단양 등 한강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 부드럽고 늘씬하게 만든 나무못배 ‘늘배’(12m)가 있었다.

    1998년 마포구에서 이봉수(83)씨가 재현한 황포돛배는 12m 가량이었고, 주로 충청도 서산 지방의 실치잡이 배로 쓰였다. 사람, 소, 짐을 실어나르는 나룻배는 9m 정도였으며, 자갈·모래를 싣는 자갈배는 6~7m 정도였는데 나룻배보다 목재가 더 두꺼웠다. 이밖에 ‘평양배’로도 불린 놀잇배(7.5m), 작은 짐배인 덴마(6~7m), 윗강 고기잡이배인 쟁이배(6~7m), 낚싯배(3.6m), 소형 보트(3.6m) 등이 있었다.

    수백년 배짓는 마을…뱃사람들의 안식처
    휴전선이 뱃길 막고 한강개발이 쫓아내
    한강엔 더이상 자유롭게 배를 띄울수 없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밤섬의 배 짓기에 일대 타격을 줬다. 휴전선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 하류에 그어지면서 바닷배들이 더는 서울로 들어올 수 없게 됐다. 김성영씨는 “조기잡이 배나 ‘쌈판’ 등이 한강으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큰 배 주문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다만 6·25 뒤에도 윗강 물길은 열려 있었다. 그래서 밤섬 배목수들은 한강 상류로 다니던 ‘늘배’나 노량진, 뚝섬, 광나루 등 유원지에서 요구하는 놀잇배나 쟁이배, 낚싯배, 보트 등 주로 중소형 배들을 만들었다.

    두번째 큰 타격은 한강 개발이었다. 1차 한강개발은 여의도 둑 건설과 밤섬 폭파로 시작됐고, 500여년을 밤섬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밤섬 배목수인 이일용(69)씨는 “와우산으로 간 뒤에도 놀잇배나 낚싯배, 보트 등을 지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어. 다 지어놓으면 트럭으로 싣고 갔지”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배목수들은 모두 생계를 위해 건축목수로 전업했다.


    △ 1960년대 밤섬 넘은둥개에서 배목수 최창선씨의 아버지 최상동(왼쪽·작고)씨가 배를 짓는 모습.


    그나마 이어지던 배 주문은 80년대 철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배들이 득세하면서 거의 사라졌고, 2차 한강개발(82~86년) 뒤에는 완전히 끊겼다. 더는 한강에서 자유롭게 배를 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허가받은 유람선이나 오리배만 뜰 수 있게 됐다.

    그 많던 밤섬의 배목수들도 이제 거의 다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월20일에도 배목수 이봉수씨가 세상을 떴다. 현재 남아 있는 배목수는 김성영, 이일용, 최창선씨 등 서너 사람에 불과하고 모두 나이가 많아서 밤섬 배목수의 대가 끊길 날도 멀지 않았다. 서울시는 2003년 이일용씨에 대해 무형문화재 지정을 검토했으나 “배를 만든 지 20년이 넘었으며, 지정하더라도 전승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오형철 시 무형문화재팀장은 밝혔다.

    이일용씨도 이제 배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접은 것처럼 보였다. “한강에 배를 띄울 수가 없는데, 누가 배를 만들겠어. 또 띄울 수 있다고 해도 플라스틱 배도 천지인데, 누가 나무배를 만들려고 하겠어. 다시 배를 만들면 나는 좋겠지만 이제 그건 꿈이지.”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고려말엔 귀양지…1968년 2월 '폭파' 수난



    밤섬은 육지와 떨어져 물로 둘러싸였다는 점에서 섬이었다. 또 한강 건너 서강·마포나 샛강 건너 영등포라는 도시문화로부터 고립돼 있었다는 점에서도 섬이었다. 이런 밤섬의 고립은 독특한 문화를 낳았고 때로는 외부인들로부터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밤섬의 역사가 조선 초기부터 시작해 20여대 600년에 이른다고 말한다. 밤섬에 관한 초기 기록인 <명종실록>(1556)에서는 이 섬의 성풍속이 자유롭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한글학회가 펴낸 <한국지명총람>에는 밤섬이 고려 말기에 귀양지였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가장 초기 기록인 <용재총화>(1525) 등에서는 밤섬에 뽕밭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밤섬은 현대에 들어서도 전기나 수도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1968년 밤섬을 떠날 때까지 주민들은 등잔불이나 남폿불을 사용했다. 물은 한강물을 퍼다가 그대로 마셨다. 밤섬 배목수인 최창선(64)씨는 “우물이 있었지만 짠맛이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며 “한강물 떠다가 먼지만 가라앉혀서 마셨는데, 오래 둬도 벌레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들의 마을에는 도둑이 잘 들지 않았다. 가난해서도 그랬지만 외부의 침입을 잘 허용하지 않는 밤섬의 고립도 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밤섬이 고향인 김영희(69)씨는 “주민 모두가 친인척이거나 가까운 이웃이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기 어려웠다”며 “밤섬 내부의 단결은 다른 어떤 마을보다도 강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밤섬 문화의 중심에는 ‘밤섬 부군당굿’이 놓여 있다. 주민들은 밤섬을 떠난 뒤에도 현재까지 서로의 화합과 안녕을 비는 이 굿을 해마다 음력 1월2일 700여만원씩을 들여 열어왔다. 이들의 정성 덕인지 이 굿은 2004년 12월 서울시 무형문화재 35호로 지정돼 올해 굿부터 500만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수백년의 삶은 1968년 2월로 끝났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밤섬을 폭파해 여의도 개발에 필요한 골재를 얻도록 했다. 이에 따라 마포구 서강동 15통 6반 밤섬에서 내몰린 62가구 443명의 주민들 가운데 42가구 300여명이 마포구 창전동 28번지 와우산 기슭에 집단 이주했다. 자신들의 고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97년 이들이 살던 연립주택이 재개발되면서 이들은 각지로 흩어졌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꿈틀꿈틀 밤섬이 늘어나요
    매년 퇴적…개발전 보다 커져

    1968년 폭파 뒤 밤섬에서는 사람들이 떠나갔다. 평소 수면으로부터의 높이가 3~5.5m에 불과한 밤섬은 홍수가 나면 거의 전체가 물속으로 잠겨 버려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섬은 파괴되고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살아 움직였다. 여의도 개발 전 모두 5만2087평(주민 거주지 1만7393평)의 돌산과 모래밭이었던 밤섬은 68년 폭파 뒤 4만7490평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85년에는 5만3630평, 91년 6만170평, 96년 7만1630평, 2002년 7만5576평으로 모두 2만평 이상 늘어났다. 현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폭파 전에는 아랫밤섬(서강 쪽)이 5만905평으로 대부분이었고 윗밤섬(마포 쪽)은 1182평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는 모래와 흙의 퇴적에 의해 윗밤섬이 4만1600평으로 늘어나 3만1450평인 아랫밤섬보다 더 커졌다.

    밤섬에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찾아들었다. 2001~2004년 서울시가 유정칠, 김재근, 진영헌 등 세 교수에게 맡겨 조사한 결과, 밤섬에서는 버드나무, 물쑥, 갈풀, 갈대, 물억새, 쑥 등 194종의 식물이 발견됐다.

    특히 강물이 섬 전체로 완전히 범람한 2002년에는 147종으로 가장 식물종이 많았으며, 땅이 건조해진 2003년, 2004년에는 각각 134종, 110종으로 줄어들어 강의 범람이 생태계를 풍부하게 한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새는 4년 동안 77종이 확인됐으며, 이 가운데는 산새 등 41종, 물새·오리류가 15종, 갈매기류 3종, 백로·왜가리류 4종, 도요·물떼새가 포함돼 있다. 특히 해오라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꿩, 멧비둘기, 붉은머리오목눈이, 까치 등 8종이 밤섬에서 번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신현규 푸른도시국 자연생태팀장은 “밤섬을 통해서 자연은 가만히 두면 강력한 복원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며 “복원된 생태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끝>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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