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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2.21(월) 18:03

나는… 섬이 아니요 ‘산’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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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의 산수화에도 등장…‘서호십경’ 중 으뜸
  • 채석장→정수장→생태공원
  • ① 잠실도·부리도-뽕밭이 ‘콘크리트숲’ 으로
  • ② 난지도-“두번, 천지가 개벽했지”
  • ③ 여의도-한강개발, 1백만평 백사장을 삼키다
  • ④뚝섬-왕의 숲, ‘평민의 숲’으로 환생하다
  • ⑤노들섬-그 많던 피서객들, 다 어디로 갔나



  • ⑥서울의 섬 - 선유도

    “예전에는 선유도가 아니었어, 선유봉이었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산이 섬이 된 걸 말이야. 이젠 거기 사람이 살았다는 것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싹 쓸어갔어. 흔적도 없이 고향이 사라졌지.”

    서울 양천구 양화대교 중간의 선유도는 예전에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에 속한 높이 40m의 ‘선유봉’이었다. 10살까지 선유봉 아래 마을에 살았던 김광수(79)씨는 “선유봉 동·서·남쪽으로는 10만평이나 되는 넓은 모래밭이 있어서 양화리·양평리 쪽으로 걸어 다녔다”며 “서쪽으로는 작은 양화나루가 있어서 한강 건너편 큰 양화나루로 배를 타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10만평 모래밭에 우뚝 솟았던 40m 돌산
    일제와 미군이 도로 만든다고 깨어가고
    지금은 양화대교에 눌려도 내 근본은 산이라


    △ 1930년대로 추정되는 선유봉의 사진에는 지금과 달리 선유봉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 모래벌판과 한강, 강 건너편이 보인다. 한강시민공원관리사업소 제공




    선유봉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30여가구가 작은 마을을 형성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래가 많은 땅에서 수수나 보리, 메밀을 가꾸거나 양화나루에서 짐을 나르며 살았다. 대대로 선유봉에 살았다는 윤영동(64)씨는 “추수가 끝나면 흉년을 대비해 함께 ‘비상 쌀’을 모으고, 양식이 떨어지면 식솔이 많은 집부터 나눠주던 인심 좋은 마을이었다”고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강가나 강섬 사람들이 다 그렇듯 선유봉 사람들에게도 최대의 공포는 물이었다. 선유봉 마을과 고운 모래밭은 여름 장마 때면 수마에 당하곤 했다. 김씨는 “매년 10월 마을 사람들이 선유봉 중턱 아름드리 당나무(느티나무) 앞에 모여 ‘제발 내년엔 홍수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당제를 올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제는 소용이 없었고 한강은 관용을 몰랐다. 한해 걸러 홍수가 났고 큰비가 오면 마을 사람들은 선유봉 높은 계곡의 용화사로 피난을 떠났다.

    줄기찬 홍수에도 버텼던 마을 사람들은 한강의 물길과 치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을축년(1925년) 대홍수를 겪으며 이주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제도 1925년 한강의 홍수를 막기 위해 세운 ‘한강개수계획’에 따라 강가에 둑을 쌓겠다며 이주를 종용했다.

    김씨는 “대동계를 조직해 한푼 두푼 10여년 돈을 모은 끝에 300~400m 너비의 샛강(모래밭) 건너 양평리(동)에 땅을 사고 30가구 전부가 이주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당나무로 쓸 1m 정도 되는 느티나무 묘목 한 그루를 품에 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선유봉을 떠난 때가 1936년이었다.

    주민들이 모두 옮겨가자 일제는 선유봉을 채석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강가에 홍수 방지 둑을 쌓고 여의도 비행장으로 가는 도로를 놓기 위해 45년까지 선유봉의 절반 이상이 깨져 나갔다. 45년 해방의 여름이 찾아왔지만 이번에 미군들이 들어와 “인천 가는 길을 만든다”며 일제와 똑같이 돌을 캐갔다.

    미군들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군인 출신의 윤태일 서울시장은 62년 길이 1108m, 너비 13.4m, 4차로의 ‘제2한강교’(현재의 양화대교)를 착공했다. 제2한강교의 건설로 겨우 남아 있던 선유봉의 흔적마저 사라지고 주변엔 3만여평의 모래밭만 남았다.


    △ 2005년 선유도는 양화대교와 선유교로 뭍과 연결되는 섬으로, 정수장 시설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68년 시작된 ‘한강 개발’은 선유봉을 결국 섬으로 만들었다. 선유봉 주변에 7m 높이의 시멘트 옹벽을 쳤고, 한강제방도로(현 강변북로)를 건설한다며 선유봉 앞 모래를 파갔다. “남들은 이걸 ‘한강의 기적’이라고 떠들었지만, 우리들은 고향을 잃었을 뿐이야.” 윤영동씨는 개발시대를 원망했다.

    70년대 도시화·공업화에 따라 선유봉은 또 한번 변화를 겪는다. 영등포구에 공단이 밀집하면서 급격히 늘어난 서울 서남부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78년 서울시가 선유도에 정수장을 건설했다. 그때는 건설하고 또 건설하던 시대였다. 선유 정수장은 팔당에서 끌어온 물로 하루 40만t(95만명 사용분)의 수돗물을 만들어냈다.

    선유봉이 여기저기가 망가져 볼 수 없게 됐을 때 양평동으로 옮겨갔던 30가구의 선유봉 마을 주민들도 2세대까지 여섯 가구를 빼곤 모두 흩어졌다. 36년 선유봉을 떠나올 때 신주처럼 안고 온 당나무도 82년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다.

    선유 정수장은 2000년 12월 폐쇄됐고, 월드컵을 앞둔 서울시는 2002년 4월 정수장을 재활용한 ‘선유도 공원’의 문을 열었다. 김씨도 초대받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선유도에서 예전 선유봉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 하지만 공원엔 정자도 짓고 역사관도 있어서 그전 채석장이나 정수장 시절보단 나아. 그렇다고 개발에 쓸려간 우리 고향이 돌아오지는 못하겠지만 말이야.”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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