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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5.06(금) 17:28

“왜 모이는지는 관심없어.‘배후·주동’만 궁금해”


△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http://heemang21.net)은 7일 서울 광화문에서 ‘입시경쟁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집회’를 열기로 하고 홈페이지 첫 화면에 고지를 띄웠다.


‘촛불집회’ 고딩을 위한 변명…“어른들 시각 문제없나”

난리다. 고등학생들이 7일 시위를 벌이겠다고 하자 교육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집회 장소를 원천봉쇄하고 참가자들은 중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주말, 학생들의 출입이 빈번한 교보문고 앞을 어떻게 막을 것이며,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어떻게 집회에 참여할 의사를 가지고 현장에 온 고딩들을 쪽집게처럼 집어내 처벌을 할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아주 낯익었던, 그러나 최근에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던 ‘원천봉쇄’와 ‘엄벌’이란 단어가 편치 않게 들린다.

고등학생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교육당국을 비롯한 어른들의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학생들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교육과 훈육의 대상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마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나 할 것이지…’하는 생각들이 깔려 있다. 그 주장이 이치에 닿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들에게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이마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시키는 공부나 할 것이지…’


△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선양의 1주기인 2003년 6월13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효순·미선양 촛불집회에는 청소년들도 다수 참여해 광장문화의 새지평을 열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하지만 학생들이 사회를 향해 집단적인 의사 표시를 하는 일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낯선 일이었을지 몰라도 민주화가 진전된 서구 사회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당장 우리나라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어디에도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그 권리를 잠시 유보당해도 좋다’는 문구는 없다. 또 유엔총회에서 1989년 채택된 ‘아동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아동은 18살 이하의 어린이·청소년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어린이·청소년 권리 조약으로도 불린다) 12조는 “어른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에겐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돼있다. 우리나라는 91년 이 협약의 비준 절차를 마쳐 정식 회원국이 됐고,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고등학생들이 입시 문제와 관련한 집회를 열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의 정당한 권리로 볼 수 있다.

‘권리 말하는데 니들 얘기는 결국 공부하기 싫다는 말 아니냐’

고등학생 시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부정적인 시각은 냉소다. ‘권리도 좋은데 니들 하는 얘기는 결국 공부하기 싫다는 거 아니냐’는 태도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번져나간 내신등급제 반대 논리들은, 그 자체로만 보면 빈틈이 많다. 인터넷에서 시험성적 비관이나 입시 부담, 혹은 친구과의 관계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고3의 죽음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신등급제 도입에 따른 것으로 왜곡됐다. 고교 3년 동안의 성실도가 반영되는 내신등급제가 단 한 차례의 수능시험으로 결판을 내는 방식과 비교해 개악됐고 얘기할 만한 근거도 없다. 제도가 어찌됐건 학벌위주 사회, 입시지옥이 현존하는 한 경쟁관계에 있는 학교 친구들 사이가 내신등급제 때문에 더 나빠졌다고 얘기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됐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겠다는 학생들에게 그 ‘대안’을 물어서는 안된다. ‘이게 좋은 건데, 이것을 반대하면 니들의 대안은 뭐냐’고 구박하듯 묻는 것은 어른들의 성숙한 태도로 보기 힘들다.

왜 모이려는지는 알고 싶지 않고, ‘배후’와 ‘주동’만 궁금한 어른들


△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터가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고 있다.



앞의 두 시각 모두에서 부족한 게 있다면 고등학생들을 ‘미숙아’로 볼 것이 아니라 ‘예비 성인’으로서 대우해주는 자세다. 집회와 시위를 무조건 틀어막으려고만 할 게 아니다. 집회를 기획하고 전파하고 배후조종하는 ‘불순 학생’이 누군지 적발해서 처벌하려할 게 아니라, 이들은 왜 모이려고 하는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진지하게 들으려 귀를 열어야 한다.

실제 집회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모일지는 점치기 힘들지만, 집회 알림글이 들불처럼 번져나간 데는 불이 번지기 위한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최근 고교생들의 반발은 단순히 내신등급제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입시 위주 교육 자체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회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은 ‘내신등급제가 나쁘니 우리가 힘을 모아 도입을 저지해야돼’라는 생각보다는, 학교에서 학원에서 입시에 내몰리고 친구마저 경쟁자로 만드는 현실이 싫고 우리들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것이다.

광장문화에 익숙한 그들…월드컵, 효순 미선, 탄핵 집회 거쳐온 그들

게다가 이들은 ‘광장 문화’에 익숙하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에 나가 맘껏 외쳐봤고, 또래 친구들이 죽었을 때는 추모제에 참여해본 경험도 있다. 그리고 2004년 탄핵사태 때는 부모나 친구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집회 현장에 어울렸을 터다. 따라서 집회·시위장이 대단한 결의에 이끌려 가는 곳이 아니라 ‘함 나가봐? 들어봐?’ 정도로 여길, 그리 턱이 높지 않은 공간인 셈이다.

교육당국이 ‘강공’으로만 밀고나가자, 추모제를 제안했던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http://heemang21.net), ‘아이두 넷’(http://www.idoo.net/)과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징계로 탄압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징계로 탄압하려는 작태”라면서 “집회 참여를 억지로 막거나 집회 참여를 빌미로 학생들을 징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인터넷상의 청소년 활동에 대한 감시·통제 중단 △학생들의 자살과 거리 시위 책임이 교육부에 있음을 시인하고 청소년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 △입시와 경쟁 교육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것 등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엄단’과 ‘처벌’ 앞세운 교육당국은 과연 교육적인가


△ 내신등급제를 풍자한 패러디가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고 있다.

고교 시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은 ‘다 알겠는데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군중심리에 휩쓸려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게시판에는 6일 ‘성숙한 시위태도 보입시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럴리 없겠지만, 행여나 감정이 격양되어 폭력 사태를 유발한다거나 길에서 쓰레기나 버리고 껌뱉고 욕이나 한다거나 하면 어른들은, ‘요새 애들이 그렇지 뭐. 달라고만 하지 지킬 거 지킬 줄은 모르잖아’ 라고 할겁니다. 성숙한 시민의식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정당성을 과시합시다.”

그 글에 ‘백성균 ’이란 사용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네 맞습니다. 물론 저는 학생들의 시위문화에 긍정적입니다. 이미 그것은 미선,효순사건때 보인바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은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상황이기에 특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질서정연하게 진행될것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애들 어쩌구 하는 거는 말이 안되죠. 어느 집회든 어른들이던 청소년들이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디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얕잡아보는 태도를 쑥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내일은 청소년들이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또, 그럴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교육당국이 미숙아로 보는 ‘예비 성인’들은 어른들의 눈높이까지 고려해 ‘성숙한 시민의식’을 스스로 촉구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교육당국이 ‘장학관과 담임장학사 59명 등 전체 직원 435명으로 비상근무반을 편성해 집회현장에 배치’해 감시하고 처벌하는 게 능사일까.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이 집회에 참석해 학생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반론권을 신청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입시정책을 홍보하고 설득하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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