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수도권
  • 강원
  • 충청
  • 영남
  • 호남
  • 제주

  • 전체기사
    주요기사
    지난기사

    기사검색

    사회기획연재
  • 한민족네트워크
  • 근본을세우자
  • 혈세를되찾자
  • 신도시10년
    ....
    현장을가다
  • 함께하는교육
  • 한겨레가
    ....
    만난사람
  • 현장
  • 이삭
  • 육아 Q&A
  • 가족클리닉
  • 여성핫라인
  • 지난기획연재

  • 편집자에게
  • 광고안내
  • 서비스지도
  • 신문구독신청
  • 편집시각 2001년02월18일21시39분 KST
    충청 한겨레/사회/충청

    [대전] 대전 무형문화재 1호 송순갑옹 구순 잔치


    영원한 상쇠 송순갑(90·대전시 무형문화재 1호)옹의 구순연희가 열린 18일 오후 대전 시민회관 대극장은 큰 선생님을 기리는 후배들의 정성과 소리로 훈훈했다.

    쇠가락이 울려퍼지고 웃다리농악대가 용당기와 농기 영기를 가운데 두고 서방(금), 북방(수), 동방(목), 남방(화)을 돌아 생문방을 찾아 중앙(토)으로 돌아오는 오방진법을 펴치며 멍석말이를 시작하자 송옹의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방울이 맺혔다.

    일찍 부모를 잃고, 6살 어린나이에 사당패에 들어 걸어온 84년, 그 험하던 길의 끝자락에서 기력마저 쇠잔해져 후배와 제자들이 마련했다는 연희도 실감나지 않지만 평생 지키고 가꿔온 쇠소리는 대가의 영혼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1912년 충남 부여 은산리에서 태어난 송옹은 여덟살때 진주 솟대패에 들어가 이우문씨 4형제에게서 사당패 기술인 소고와 땅재주(살판) 등을 전수받았다.

    땅재주는 농악, 덧뵈기(가면극), 어름(줄타기), 버나(접시돌리기), 꼭두각시놀음 등과 함께 남사당의 여섯마당 가운데 하나다.

    남사당 놀이는 떠돌이 예인 집단이던 사당패의 기약없는 운명과 닮아 지난 64년 꼭두각시놀음만 문화재로 지정됐을뿐, 나머지는 88년에 와서야 문화재 지정을 받는 파란을 겪어 많은 명인들이 재주를 잇지 못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참 재주좋은 사람들이 많았어. 지금은 거의 다가고 나도 기력이 없어 살판, 자반뒤지기, 앉은뱅이모말리기 등 땅재주를 보여줄 수 없으니…”

    그는 제자만도 김덕수씨 등 1천여명에 달하는 등 구십평생을 국악을 위해 바쳤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연희는 이광수씨의 비나리를 시작으로 조광자씨의 무용, 대전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 이어 고향임씨가 판소리로 끌어올린 분위기를 한복순씨가 받아 넉넉한 경기민요 한마당으로 흥을 돋운 뒤 송옹이 평생에 힘을 다해 보존하고 가르친 웃다리 농악으로 막을 내렸다.

    대전/송인걸 기자igsong@hani.co.kr



    [Home | 사설칼럼|기획연재|정치|경제|사회|스포츠|국제|증권|문화생활|정보통신|만화|전체기사] []
    copyright(c)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