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세우자] 저임 비정규직 “사회보험 꿈같은 얘기죠”

김아무개(44)씨는 요즘 벌이가 없다. 돈구경을 못해본 지 벌써 석달이 다 돼간다. ‘날이 풀리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그러나 건설경기가 돌아가는 걸 봐선 봄이 온다고 해도 좀처럼 뾰족수는 없을 것 같다.

김씨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다. 경기도 ㅇ지역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그리고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하다. 한동안 이것 줄이고 저것 끊고 하다 지난달엔 결국 아이가 다니던 학원을 관두게 했다.

“이 놈의 2천만원짜리 전셋집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조건부 수급자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김씨는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였다. 일감이 없는 겨울철이면 23만원씩 생활보호자금을 받았고, 의료보호 혜택도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전셋집이 그만 재산기준에 걸려 조건부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모든 혜택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젠 공공근로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김씨는 “내 처지는 조합원들 사이에선 결코 별난 게 아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부는 구제금융 체제 뒤로 실업급여 수급 범위를 확대하고 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하는 등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강화에 애써왔다. 다시 닥쳐온 실업자 100만 시대, 이제 정부가 쏟아부은 노력의 성과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때다.

그러나 노동과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기만 하다.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수급대상자 사각지대 때문이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랜드그룹 물류창고에서 1년2개월째 계약직으로 일하는 서아무개(26)씨는 동료들과 벌써 200여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한달 만근에 식대와 복리후생비까지 합쳐 50만6천원을 받는 이들이 파업에 들어간 까닭은 살인적인 저임금 때문만은 아니었다.

“회사는 입사 3개월 만에 고용보험은 들어주면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산재보험에는 들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계약직 39명 가운데 30명이 같은 처지라고 했다. 서씨는 “의료보험은 지역에서 들고 있지만 국민연금까지는 엄두가 안난다”며 “법으로 보장된 4대 보험 가입은 우리 요구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 김씨나 비정규직 노동자 서씨는 서로 다를 바가 없다. 적어도 사회안전망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두 사람은 사회보험 적용을 받아 노령·실업·의료·산재 등 사회적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계층과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지급받는 계층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

이 말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계층을 광범위하게 배제한 채 형편이 나은 계층만을 보호해 사회통합은 커녕 ‘두 종류의 국민’으로 가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각지대에 들어가는 계층이 빠르게 느는 데 있다. ‘고용 유연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는 계층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박영삼 정책국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저임금과 기업복지,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과 경기 흐름에 따른 주기적인 실직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정작 사회보험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5중고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연보>에 따르면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95년 전체 노동자의 42.0%에서 지난해 3월 52.6%로 높아졌다.

불완전 고용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적용률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산재보험 59.4% △고용보험 48.3% △국민연금 52.4%만이 적용받고 있다. 전일제 상용 노동자의 4대 보험 가입률이 100%에 육박하는 것을 감안할 때, 대다수 불완전 고용 노동자들이 사회보험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고용보험 적용 노동자수가 97년 428만명에서 99년 605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정부의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사용자들의 회피와 편법을 막을 제도장치와 사회보험행정기구의 관리능력을 높이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가진 자'가 혜택받고 `없는 자'가 배제되는 모순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영춘 기자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