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세우자] 탈세가 '상식'인 자영업 공평한 조세체계 꾸려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박경호(34·서울 은평구 역촌동)씨는 지난해 말 대학 동창들과의 송년 모임 뒤끝이 영 개운치 않다.

오랜만에 동창들 만나는 자리에서는 으레 한달 소득이 얼마나 되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게 마련인데, 학원이나 음식점 등을 운영해 자신보다 훨씬 돈을 잘 버는 친구들이 세금은 적게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려워 지난해 말 상여금도 받지 못했거든요. 그런데도 그 친구들이 내야 할 세금을 내가 대신 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열받더군요. 친구들도 얄미웠지만, 불공평한 세금체계를 방치하고 있는 정부에 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불만은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문제이다. 지난달 국세청이 `2000년 근로소득자 연말정산 안내' 자료를 발표한 뒤 국세청 홈페이지에는 봉급생활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주로 “소득공제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여기저기 쫓아다녀 보아야 겨우 몇만원밖에 환급받지 못하는데도 안달복달하는 내 신세가 서글프다”거나 “정부는 훤히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들의 `유리지갑'에서 손쉽게 원천징수한 뒤 쥐꼬리만큼 소득공제해준다고 생색만 내지 말고 돈 많이 버는 자영업자들 소득이나 제대로 파악하라”는 내용들이다.

봉급생활자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세금제도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데 공감한다. `조세정의를 위한 한국납세자연합회'가 지난해 8월 한달 동안 전국 만 20살 이상 4828명을 상대로 실시한 납세자 의식구조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5.3%가 `납세계층간 세 부담이 불공평하다'고 답했다.

탈세 순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변호사·세무사·회계사·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를 1위로 꼽았으며, 탈세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 `약자에게 세부담이 전가된다'는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세정에서 가장 불신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 소득파악 문제의 경우, 징세업무를 맡고 있는 국세청조차 실제 매출액 대비 신고수입금액을 의미하는 과세표준 현실화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국민연금 보험료나 의료보험료도 소득이 그대로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들만 부담이 커지게 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해 4월 발표한 `국민연금 도시지역 확대 1년 평가' 자료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과세소득이 있는 자영업자(61만4천명)가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신고한 월평균 소득은 99년 12월 기준 140만6천원으로 보건복지부 신고권장소득액의 67.3%에 지나지 않는다. 또 자영업자를 포함한 도시지역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소득신고액은 95만6천원으로 근로자 평균 소득의 68.0%였다. 권장신고액은 복지부가 국세청 자료 등을 근거로 자영업자들이 소득 신고를 할 때 기준으로 삼도록 한 가이드라인이다.

지난 99년 시민단체들의 요구로 정부가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도피처로 악용되고 있는 과세특례제·간이과세제 대폭 정비를 뼈대로 한 부가가치세법 개정안과 재벌들의 편법 상속 및 주식양도차익을 막기 위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냈지만, 재정경제위원회 심의과정에서 법안이 크게 후퇴한 채 통과됐다.

이번에 개편된 세제만 하더라도 담배소비세나 유류세 등 간접세 부문의 세율을 대폭 인상하는 등 정부가 서민의 세부담을 덜기보다, 세수 목표 달성을 위한 징세편의주의에 치중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 종로 국세청 근처에서 노점을 하는 이태화(54·경기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씨는 바뀐 세제로 오히려 부담이 늘어난 경우다. 지난해 초 노점을 시작하며 구입한 봉고차 연료비가 엘피지값 인상으로 이달부터 한달에 5만원 정도 더 들어가게 됐다.

이씨는 “추운 겨울에 아무런 바람막이도 없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나같은 사람한테서는 담뱃값이나 기름값 따위를 올려 손쉽게 세금을 거둬가면서, 왜 재벌 2세들에게는 국세청이 증여세를 제대로 추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조세 전문가들은 경기불황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질수록 번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물리고 적게 번 사람에게 적게 물리는 공평과세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양대 경제학부 나성린 교수는 “쉽게 거둘 수 있다고 해서 간접세에만 매달린다면 중산층과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져 세수 기반이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소득세와 재산세 등 직접세를 조정해 조세 형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루빨리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해 탈세를 할 수 없도록 하는 한편, 상속세·증여세·종합토지세 등의 과세를 강화하고 주식양도차익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영미 기자youngm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