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세우자] 연고인사 이젠 그만

끊이지 않는 '연줄' 잡음
인사원칙 다잡아야
검·경·정부산하기관
특정지역·낙하산인사 말썽
지역갈등 골 깊어져

지난해 초 서울시 정기인사를 앞두고 담당국장은 폭탄 선언을 했다. “앞으로 인사청탁을 하는 공무원은 인터넷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실명공개를 거론한 것.

이때 들어온 인사청탁은 모두 120여건. 국회의원·시의원 등 정치인, 중앙부처 고위공직자, 인사권자의 학교 동문 등 온갖 연줄이 동원됐다고 한다. 청탁이 곧 인사왜곡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형평인사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거나 지켜지기 어려운 실정을 보여준다. 정부는 인사 때마다 전문성과 개혁성 도덕성을 우선하되 지역안배를 병행해왔다고 밝혔다. 부처나 기관에 따라서는 인사형평이나 원칙이 바로 잡혀가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챙겨주기 줄대기가 독버섯처럼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검찰 경찰 국정원 등 힘께나 쓰는 특정직과 정부산하기관 등이다. 특정지역과 특정고 인맥이 요직을 독차지하는 편향인사의 폐해는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인사잡음만 1200여건에 이른다.

“대통령이 아무리 잘 나고 잘 하려고 애쓰면 뭐합니까? 대통령 일의 8할은 인사고, 그 인사에 계속 문제가 끊이지 않는데…” 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ㄱ씨의 푸념은 이어진다.

“대통령은 지난해 초 국무회의에서 출신고등학교별 정실인사를 하거나 압력을 넣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지요. 그런데 제2인자 제3인자라는 측근들 스스로가 의혹사건이 터지자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듯 인사청탁에 관여했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총장·차장이 탄핵 대상에 올라 2000년 한해를 어둡게 했던 검찰도 편중인사가 끊이지 않았고, 취임 3일만에 학력 위조 의혹으로 사퇴한 박금성 서울경찰청장의 사례는 잘못한 인사의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총경에서 치안정감까지 2년8개월만에 세 계급을 뛰어오른 박 전 청장의 초고속 승진은 특정지역 출신을 요직에 앉히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 힘을 실어주었다.

정부 산하기관은 정치권 낙하산 인사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석유공사는 국민회의 당무위원을 지낸 나병선씨, 한국조폐공사는 국민회의 국회의원을 지낸 유인학씨, 한국방송광고공사와 한국언론재단은 지구당위원장 출신인 강동연, 김용술씨가 각각 사장과 이사장이다. 낙하산 인사가 50여명에 이른다.

산하기관 임원의 출신지역을 비교해 보면 지난 98년 2월 정부 출범때는 호남이 121명으로 전체의 12.5%, 영남이 317명으로 32.7%였으나 지난해 7월에는 호남 238명으로 24.7%, 영남 256명으로 26.6%으로 호남이 약진했다. 지역성보다 비전문가의 임명이 많아 더욱 문제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9월 `국민의 정부인가 호남의 정부인가'라는 제목으로 장관급 28명 가운데 9명이 호남, 영남이 7명, 서울 4명, 국정원은 요직 8명 가운데 4명이 호남 출신으로 인사 편중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과거 정권에서 영남에 비해 차별받았던 호남사람들이 새정권 들어 정상적으로 등용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 정권이 인사의 원칙을 바로세웠다는 인식은 주지 못하고 있다. 인사 실패는 공직 사회의 역량 약화로 이어지고 지역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한다.

중앙인사위위원회는 행정부 소속 1~3급 일반직 공무원과 이에 상응하는 별정·계약직 공무원의 채용과 승진 심사를 한다. 그 직위수는 모두 1359개다. 지금까지 75차례의 회의를 열고 1028건을 심사해 인사가 적합하지 않는 12건을 부결하고, 84건을 보류했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인사가 중앙인사위에서 걸러지면서 일반직의 연고·정실인사 시비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편중인사 시비를 낳고 있는 검찰, 경찰, 국정원, 정부 산하기관 등과 감사원, 소방, 외무부 등 특정직 공무원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중앙인사위원회 김광웅 위원장은 “인사를 잘못하면 다수의 공무원들이 장관이나 정권이 바뀌기만 기다린다”며 “이런 조직으로는 일을 못한다”고 잘못된 인사의 폐해를 지적했다. 그는 “특정직 공무원도 인사때 중앙인사위원회 위원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통해 외부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앞으로는 특정직 1~3급도 적격성을 심사하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인터넷에 인사 청탁자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이후 인사개혁조처를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자 지난해 3월 인사 때는 인사청탁이 8건, 12월 정기인사 때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인사권자의 의지와 제도장치가 있으면 인사원칙을 다잡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허종식 기자jo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