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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생각키우기 등록 2004.06.06(일) 21:31

차별과 저항의 역사 ‘백정’

백정은 흔히 가축을 잡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버드나무 가지로 바구니를 엮는 고리 백정, 가죽으로 신을 만드는 갖바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와 간단한 무용·재주로 구걸을 하면서 유랑하는 광대나 재인, 칼로 죄인의 목을 자르는 망나니도 모두 백정에 속했다. 임꺽정은 고리 백정, 장길산은 광대 출신이었다.

백정은 노비를 제외하고는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속했다. 백정이 사회의 하층민으로 자리 잡은 것은 고려시대였다. 그러나 고려에서 ‘백정’은 일반 농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천인은 직업에 따라 짐승 도축을 하면 화척, 광대는 재인 등으로 불렀고 이들을 합쳐 양수척이라고도 했다.

조선에서는 이들을 ‘백정’으로 고쳐 불렀다. 노비 이외의 천인들을 양인으로 취급해, 군대나 토목 공사 등에 동원할 인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법적으로는 양인이 되었으나 사회적 지위가 평민과 같아진 것은 아니었다. 일반 농민들은 이들과 혼동될까봐 자신을 ‘백정’이라고 부르기를 꺼렸다. 그래서 한때 이들을 ‘신백정’이라고 구분해 부르기도 했으며, 결국 백정은 이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도 여전했다. 백정은 호적을 따로 만들고, 특정 지역에 모여 살았으며, 통행증 없이는 이동을 할 수 없었다. 명주옷을 입거나 가죽신을 신지 못하였으며, 남자는 검은 갓을 쓰지 못하고, 여자는 비녀를 꽂아서 머리를 올리지도 못하는 등 의복과 복장에서도 차별을 받았다. 길에 다닐 때는 백정임을 드러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패랭이를 써야 했다. 죄를 저질렀을 때는 일반 평민들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이러한 차별은 동학농민전쟁 당시 천인의 대우 개선과 백정이 패랭이를 쓰는 제도를 철폐하라는 요구를 낳게 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 제도는 법적으로 없어졌다. 그러나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백정의 호적은 여전히 별도였으며, 직업란에는 도한(屠漢, 짐승을 죽이는 사람)이라고 쓰거나, 붉은 점을 찍음으로써 표시를 하였다. 일제의 식민지가 된 다음에도 이러한 차별은 계속되었다. 이에 맞서 1920년대 백정들은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는 취지의 형평운동(衡平運動)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한종/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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