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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8(일) 20:50

우리가 공부기계인가요? 스스로 하게 도와주세요!


△ 서울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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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행복-인권이 첫걸음이다
    2.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

    “고등학생은 인간이 아니다. 공부하는 기계다.”

    “단 10분이라도 더 자고 싶다. 만성 수면 부족 속에서 하루하루를 몽롱하게 보내고 있다.”

    “우리도 공부를 하고 싶다. 제발 자율적으로 하게 해달라.”

    1960~70년대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2004년 한국 고교의 현실이다. 쉬고 싶다, 자고 싶다는 애절한 목소리가 많은 고등학교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인문계 고교생 학교생활
    하루 평균 13~14시간 달해
    만성적 수면부족에 피로 누적
    몸·마음 파김치 건강 빨간불
    취미·문화활동 엄두 못내

    학생 '선택권 보장' 합의 불구
    학부모·성적 빌미 회귀 조짐

    "공부도 소중하지만
    인간다운 삶이 먼저"

    한 실태조사는 이런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초 전국 164개 인문계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알아본 결과, 하루 평균 13~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의 절반인 12시간 이상을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 비율은 1학년이 82%, 2학년이 81%, 3학년이 84%였고, 16시간 이상 학교에 살다시피 해야 하는 곳도 4개교나 됐다.


    오래 머무르는 이유는 물론 ‘공부’다. 1, 2학년 16%, 3학년 21%가 오전 8시 이전에 강제적으로 등교하도록 하고 있고, 10시 넘어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실시하는 학교도 1학년 10%, 2학년 12%, 3학년 46%에 이르렀다. 주당 5시간 이상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는 1학년 69%, 2학년 71%, 3학년 77%나 된다. 이 가운데 35개교(전남 제외)는 학생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강제로 시행하는 ‘야자’(야간 자율학습)와 보충수업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보다 청소년의 건강을 몹시 크게 해치는 데 있다. 하루에 네댓 시간을 자면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하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쌓여만 가는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는 청소년들에겐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실제로 수많은 학생들이 어깨·허리 통증, 눈의 피로는 물론 학습 의욕 감퇴, 불면증, 노이로제 등 갖은 증상을 하소연하는 것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대학생의 조기등교까지 개선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성장기 청소년들을 좁은 교실에 하루 종일 잡아 두는 ‘학대’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신체의 자유도 심각하게 훼손한다. 청소년들은 정규 교육과정 외의 시간을 활용해 취미활동이나 문화활동 등을 하고 싶어한다. 지역 청소년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활동하는 고교생들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와 학원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열악한 청소년 지역 인프라는 계속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나마 이어지고 있는 지역의 청소년 활동들도 명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공부를 오래 시켜야 성적이 올라간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을까? 아직까지 공부시간과 공부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정밀하게 연구 조사한 결과는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강제 야간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과 같은 선상에 있는 ‘0교시 수업’과 관련된 몇 가지 설문조사 결과는 이 논리가 별로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 준다.

    우선 전교조 경북지부가 5월 도내 34곳의 고교생 52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3%가 ‘0교시가 수업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는 학생이 35%였고, ‘효과가 크다’는 학생은 2%, ‘조금 있다’는 학생은 11%에 그쳤다. 전교조 울산지부가 6월 관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66%의 학생들이 ‘0교시 폐지 이후 정규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반면 학습량은 ‘전과 다름없다’는 의견이 62%에 이르렀고, 되레 ‘늘었다’는 응답이 28%나 됐다.

    충북지역 교사들이 6월 도내 고교생들에게 물은 결과 82%가 ‘보충수업이 입시 준비에 별로 도움이 안 되거나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을 보였다. 야간 자율학습에 대해서도 61%가 ‘학습능률이 오르지 않아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고교생인 김민정(17·2년)양은 “얼마 전부터 등교 시간이 7시30분에서 8시로 겨우 30분 늦춰졌지만 삶의 질이 확 달라졌다”며 “공부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강제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은 현시점에서 더는 논란거리가 될 문제가 아니다. 올해 초 전국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그 결과 교육당국과 교육단체들은 이미 0교시 금지, 야간 보충수업 금지, 야간 자율학습 학생 선택권 전면 보장 등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행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이런 합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학부모들이 원한다’거나 ‘성적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합의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고교에서는 0교시는 없애는 대신 8, 9교시를 신설해 운영하는가 하면, 반강제적으로 보충수업 희망원을 받고 있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서 운영하는 강제자율보충신고센터( www.1318virus.net )에는 합의사항을 어겼다는 신고가 들어온 학교가 1000개가 넘는다.

    마산 합포고 이필우 교사는 “다른 지역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등의 핑계를 대며 겨울방학 때 보충수업을 실시한 뒤 내년 3월에는 학교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쟁적으로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문석 전교조 학생청소년위원장은 “대학 간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학벌사회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우선은 학생들을 옭아매는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없앨 수 있도록 교육부가 확실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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