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핫라인] 자녀까지 해치는 가정폭력 폐해

오착한씨의 단정한 옷매무새와 부드러운 미소, 교양있게 말하는 모습 어디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0년 넘게 남편의 구타와 폭언, 강제 성행위(부부강간)로 얼룩진 그의 결혼생활은 겉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그는 남편이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무조건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다고 했다. 잘잘못을 떠나 한쪽이 지고 들어가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구타당한 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당해도 제발 화를 풀라고 애원했다.

그런 그가 이혼하고 싶다며 상담하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뎌낸 건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폭력적인 아빠일지라도 부모가 있는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조금만 화가 나도 참지 못하고 난폭해져갔다. 중상위권이던 성적이 뚝 떨어지고 주위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가 유난히 산만하고 정서가 불안정하다며 집에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어왔다. 큰 아이는 가출을 하기 시작했고 작은 아이는 말수가 적어지고 의기소침해졌다.

아이들을 붙잡고 울면서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참고 사는데 왜 이러냐고 했더니, 아이 입에서는 뜻밖에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엄마는 맨날 그렇게 당하지만 말고 차라리 나가서 살라고 하더란다.

순간 그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참고 살아왔는데, 오히려 아이들을 문제아로 만들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이들은 마음의 멍이 깊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가정폭력은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녀는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폭력 상황에 노출되면서 폭력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돼 난폭해지며 주위 산만·불안·우울증 등의 심리적 증세를 보이게 된다. 심한 경우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존속살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정폭력은 피해자는 물론 자녀를 위해서도 무조건 참기보다는 적극적 대처해 뿌리뽑도록 노력해야 한다. (02)681-0238. 강은숙/경기 광명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