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무전여행중인 무소유공동체 브루더호프 오정환·원충연씨

“삶을 사랑하고 나누는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은 추억 속의 단어가 되어버린 ‘무전여행’. 영국과 미국에서 고국을 찾아 땡전 한 푼 없이 여행을 다니는 두 사람이 있다. 오정환씨(35)와 원충연씨(32)다. 둘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브루더호프(형제들의 집) 사람들이다. 80여년 전 독일에서 시작된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 세계 10여 곳에 공동체마을을 세워 살아가고 있다. 2001년에 아내와 함께 영국 브루더호프로 들어간 오씨는 그 곳에서 네 자녀와 함께 살고 있고, 총각인 원씨는 2002년 미국 브루더호프에 합류해 살고 있다.

집도 옷도 돈도 개인의 것은 없는, 철저한 무소유 공동체인 브루더호프는 아직도 마차를 타고 고대의 삶을 살아가는 아미쉬 공동체의 후예들로서 그들의 영성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에 테레사 수녀 등 영성가들도 경탄하곤 했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이런 공동체에 합류하는 서양인은 이제 거의 없다. 300여명이 사는 영국 브루더 호프에도 영국인 새 회원이 합류한 것은 10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브루더호프는 서양인에게 박물관의 유물처럼, 또는 경외의 대상이 되어갈 뿐이다.

무전여행은 한 젊은이가 ‘우리가 직접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고 한 제안을 공동체가 수용해 갑작스레 이뤄졌다. 이웃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돈 한 푼 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웃의 생각과 삶을 공유해보자는 것이었다.

세상 등진 자족적 생활공동체
100명 2인1조 세계 무전여행
한국 와서 원불교 자선원 봉사
손례중인 도법 일행과도 조우
공동체적 삶의 희망 발견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선 5월부터 젊은이 100명이 2인1조로 무전여행을 떠났다. 오씨와 원씨도 지난 5월 21일 오직 비행기표 한 장만 달랑 들고 인천공항에 떨어졌다. 주머니엔 신용카드도, 100원짜리 동전 하나도 없었다. ‘각박하다’는 이 사회에서 이대로 어쩌란 말인가. 한국의 부모 형제에게 연락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는 너무도 쉽게 드러났다. 지나가는 자가용을 향해 손을 들어 태워줄 것을 부탁했는데, 두 번째 만에 차를 타게 된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우편을 통해 <한겨레21>과 <녹색평론>, <작은책> 등 세권의 잡지를 구독한다고 했다. 우선 <작은책> 편집자들이 ‘누구든 방문하면 사무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내용을 읽은 것이 생각나 서울 합정동 <작은책> 사무실로 향했다. 꿀 맛 같은 점심이었다. 이어 경기도 화성의 공동체마을인 산안농장에 갔다. 그곳에서 ‘그리스도’란 종교적 신념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았다.


머지않아 이들은 전북 익산에 갔다. 일요일에 원불교 중앙총부 정문에서 당직 중인 한 교무(원불교 성직자)에게, “일 할 테니 재워 달라”고 떼를 써 자선원에서 머물게 됐다. 그곳엔 120여명의 정신지체장애아들이 있었다. 브루더호프에선 이런 장애아들을 ‘보석’으로 부른다. 하나님이 보내준 천사이자 특별한 선물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브루더호프의 장애아들은 ‘따로’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 속에서 어울리며 살아간다. 오씨의 두 딸도 걷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보석’이다. 오씨는 “자선원에서 정성껏 보살핌을 받고는 있지만, ‘보석’들이 120명이나 한꺼번에 뭉쳐있어 보석으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전남 나주에선 탁발순례 중인 도법 스님 일행과 합류해 2박 3일간 함께 했다. 순례단이 사회적 쟁점보다는 ‘자아 성찰’과 같은 생명평화의 마음을 나누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도법 스님이 ‘선생’으로서 얘기를 끌어가는 동안 순례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이 순례의 주인으로서 함께 느낌을 나누지 못한 채 뒤에 구경꾼으로만 앉아있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또 이들은 전북 부안 박형진 시인의 ‘가난한’ 집에서 아직도 식지 않은 따뜻한 정을 보았다. 그리고 경남 함양의 녹색대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자신은 농촌에 살면서도 농촌의 삶에 환멸하며 자식만은 농촌을 떠나기를 갈구하던 과거의 농민들과 달리 자신의 자녀들도 외적인 욕망보다는 농촌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길 원하는 소박한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오씨는 “한국에서 30년 간 살면서도 그리스도인 외에는 가슴으로 교유하지 못했다”며 “삶을 사랑하고 나누는 사람들을 드디어 만났다”고 말했다. 원씨는 “공동체 삶은 여러 모양, 여러 마음으로 있었다”며 “이런 자연스런 ‘흐름’을 기존의 공동체들과 같은 경직된 조직으로 묶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라면과 막걸리를 함께 나누며 전국을 누빈 이들은 불과 한달 보름 만에 몇 뼘이나 키가 훌쩍 커 보였다. 서양인들이 잃어버린 공동체적 삶의 희망을 고국에서 찾고 있는 이들은 오는 26일까지 무전여행을 계속하고 브로더 호프로 돌아간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기사등록 : 2005-07-05 오후 06:53:00기사수정 : 2005-07-18 오후 02:15:29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