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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회 등록 2005.06.10(금) 14:14

몰카 ‘성관계’ 협박에 놀아난 정신나간 공직자들

1천명 협박전화 받고 단 1명도 신고 안해

시청 국장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수십 명이 "여자와 함께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찍었다"는 협박 전화 한 통에 1억여원을 갈취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0일 충남 논산경찰서는 전국 단체장과 5급 이상 고위 공무원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협박, 53명으로부터 1억3천여만원을 뜯어낸혐의(상습공갈)로 김모(49.광주)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범행 준비 및 수법 `3분이면 OK' = 전과 11범인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전화번호부 30권에서 관공서 간부급 공직자 1천여 명의 전화번호를 발췌해 수첩 2권에 정리하고, 대포폰 2대와 고등학생들을 유인해 대포통장 4개를 개설하는 등 `작업' 준비를 끝냈다.

김씨는 충청도, 제주도 등 전국의 공직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와 여관 가는 모습을 찍었는데 돈을 안주면 공개해버리겠다"고 협박, 상대방이 무시하면 전화를 끊지만 "돈이 별로 없다"거나 "어떻게 알았느냐" 등 관심을 보이면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김씨는 자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증거물을 보여달라는 말도 철저히 무시한 채 "500만원으로 해결하면 되는데 감당못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 "서로 피곤한데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는 등 상대방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쉴새 없이 말을쏟아냈다.

공무원들이 김씨의 협박에 넘어가 계좌번호를 받아적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3분' 정도로 이들 가운데 단 한 명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하루, 이틀 안에 100만~500만원을 입금했다.

◆ 범행 성공 후 "테이프 폐기했다" 안심시켜 = 김씨는 돈이 통장에 들어오는 즉시 모두 현금으로 인출했으며 돈을 보낸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테이프는 폐기했으니 안심하라"는 등의 인사를 남겼다.

닷새에 한 번 꼴로 돈을 입금 받는데 성공한 김씨는 고급 시계와 금목걸이, 보석반지 등을 과시하며 사업가 행세를 했고, 인출한 돈을 모두 고급 유흥업소에서 탕진해 통장에는 잔액이 남아있지 않았다. 김씨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협박에 약하다고 들었는데 실제 전화를 걸어보니 쉽게 먹혀 들어갔다"며 "비디오 테이프를 요구하는 등의 확인절차 없이 바로바로 돈을 보내줘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고 말했다.

◆ 피해자 처벌은? = 현재 경찰이 김씨로부터 압수한 대포통장은 4개며 이 가운데 2개 통장에 돈을 보낸 계좌를 추적해 피해자 13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들은 시 산하 농산물도매시장 소장, 농업기반공사 소장을 비롯한 시청 국장과 사무관, 구청 과장, 읍장 등 기관장이나 고위 공무원들이다. 경찰은 나머지 두 개 통장에 돈을 보낸 40명도 모두 고위 공직자가 확실하며 이들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면 최상위층 공무원도 다수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씨가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던 공직자 가운데는 시.도지사도 포함되는 등 경찰과 검찰을 제외한 모든 간부급 공무원들이 범행의 대상이 됐다. 경찰은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 가운데 3명을 소환해 조사했으나 "승진을 앞두고 있는데 구설수에 오를까봐 억울하지만 돈을 줬다", "나로 인해 우리 기관이 매스컴에 노출될까봐 여관에 간 적도 없는데 돈을 줬다"며 성매매나 불륜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경찰은 성매매 증거 자료가 전혀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형사처벌할 수 없고, 피해사실도 이들이 근무하는 각 기관에 아직 통보하지 않고 있다.

◆ 수사 방향 = 수사관계자는 "현재 드러난 피해자는 53명이지만 1천명 이상에게 전화를 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가 또 다른 대포통장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씨는 지난 2002년 2월에도 공무원 30여 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협박해 매번 100만원 정도를 뜯어낸 혐의로 전남 광주 서부서에 붙잡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2003년 8월 출소했다. (논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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