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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6.12(일) 18:13

아빠는 불법체류자 네팔인 나는 8살 한국사람…


△ 네팔인 불법체류자 푸르자(왼쪽)와 그의 아들 윤주(가명). 좁고 어두운 월세 단칸방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인 엄마는 1년만에 도망갔다
지하단칸서 단 둘이 7년…
아빠가 강제축국 당하면 난 누구랑 살죠?
주위서 발벗고 진정해도
법무부는 요지부동

침대 하나로 꽉 차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 좁은 방 벽마다 윤주(8·가명)의 사진이 하나씩 걸려 있다. 멋들어진 옷을 차려입은 유치원 졸업사진 속의 윤주의 웃는 모습은 네팔인 푸르자(34)의 눈매를 꼭 빼닮았다. 윤주는 낯선 사람의 방문에 뚱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눈치를 본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라며 윤주를 타이르는 푸르자. 윤주는 ‘불법체류자’ 푸르자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10일 저녁 경기도지역 한 주택가 셋방에서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푸르자는 1997년 공장에서 만나 3년간 사귄 한국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윤주를 낳았다.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혼인신고는 엄두도 못 냈다. 윤주는 어머니의 성을 쓰고 어머니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 부인은 갓 돌이 지난 윤주를 놔두고 집을 나갔다. 한국 국적의 아들과 불법체류자 아버지만 남게 됐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제는 다 컸으니까….” 윤주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맡겨 키웠다. 집과 공장이 가까워 그나마 다행이었다. 출근 때 아이를 맡기고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 얼굴을 보러 부리나케 달려왔다. 일이 끝나는 밤 12시쯤에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 몇 년 동안 반복됐다.

푸르자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윤주 목에 집 열쇠를 걸어 준다. “벌써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이제는 밥도 알아서 먹죠.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걸 보면 그게 부모 마음인가 보죠.” 요즘은 월급이 줄어 50만~60만원 정도다. 그래도 태권도학원을 보낸다. “안 보낼 수 있나요. 뭐든지 해주고 싶은데요.” 어쩔 수 없는 한국의 학부모가 다 됐다.

문제는 서슬 퍼런 불법체류자 단속이다. “지금 당장 단속이 돼 강제출국을 당하면 윤주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푸르자는 91년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죠”라는 짧은 말에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14년간의 고단한 삶이 묻어났다.

1년 전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일이 있었다. 불법체류자 단속반이 옆 공장에 들이닥쳤다. 두 사람이 잡혀갔다. “처음에 단속반이 공장 위치를 물어보려고 우리 공장으로 왔습니다. 나를 잡으러 온 줄 알았죠. ‘윤주와는 영영 이별이구나’라는 생각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상황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푸르자는 ‘안양전진상복지관’의 도움으로 지난달 법무부에 윤주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윤주의 유일한 양육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출생증명서, 호적등본 등이 첨부됐다. 하지만 법무부는 “사연은 안타깝지만 사실혼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 양육을 이유로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는 어렵다”며 ‘불가’ 회신을 보내왔다.

“아들만 버려두고 나 혼자는 절대 못 나갑니다.” 사람 좋던 푸르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장기간 불법체류를 해온 푸르자는 한번 나가면 재입국이 힘든 ‘입국규제’ 대상자다. “친구들과 학교도 잘 다니고 있어요. 네팔말도 모르고. 윤주는 한국 사람입니다.”

단속이 무서워 아들과 함께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해봤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많다. 11년째 이곳에 머물며 한 공장에 다니다 보니까 법무부에 진정서를 낼 때 한국인 회사 동료 8명이 ‘푸르자가 유일한 양육자’라는 진술서를 써줬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윤주를 주민등록상의 동거인으로 올려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배려해줬다. 푸르자는 조만간 법무부에 재진정을 넣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소라미 변호사는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인도적 사유가 있을 때는 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며 “한국 국적 아이의 유일한 양육자를 강제출국시키는 것이 과연 인도적인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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