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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회 등록 2005.02.10(목) 18:10

선거때마다 ‘북풍’ 회오리 ‘남북 커넥션’ 의혹만 무성

밝혀야할 국정원의 과거 <1> 선거개입
“선거개입은 임무” 민심 쥐락펴락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가 지난 3일부터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1961년 중앙정보부로 태어난 이래 81년 국가안전기획부, 98년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온 이 기관은 막강한 권한과 정보력을 통해 현대사의 많은 부분에서, 대부분 공작·고문·사찰·조작·통제·탈법·불법 등 부정적인 말들과 함께 이름이 출몰한다. 현재까지 26명의 역대 부장이나 원장 가운데 한 사람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한 사람이 나왔고, 한 명이 사형당했으며, 한 명은 실종됐다. 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구속되고 조사받거나 개인 재산을 내놔야 했다. 이처럼 영욕에 찬 국정원의 과거사를 밝혀내는 일은 국정원의 과거를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는 현대사의 많은 부분을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국정원이 밝혀야 할 과거 의혹사건들로 어떤 것들이 거론되고 있는지, 아홉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북한공작 주문생산’ 수사는 흐지부지
대책회의·흑색선전물 등 직접 개입도

“안기부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선거 개입을 우리 회사(이곳 직원들은 그 기관을 회사로 부른다)의 당연한 임무로 생각했다.” 국정원 관계자의 말이다.

60년대 후반 중앙정보부 국장을 지낸 백태하씨는 <반역자의 고백>이란 책에서 당시 중정이 △선거 때마다 분석자료 제공 △여권 승리를 위한 각종 지원사항 건의, 행정부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체제 동원 △정당 공약사항과 지원사항 작성 및 지원 △여당에 유리한 충격적 사건 발표 △야당 분열공작 △친야세력 포섭공작 △각종 선심공작 △각종 단속 완화 △기타 정부와 정당이 하지 못하는 각종 지원사업 등 10가지 선거개입 유형을 털어놓은 바 있다. 92년 총선 때 안기부 관계자들이 야당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물을 뿌리다 잡힌 사건 이후 안기부 직원들의 ‘정치 관여죄’가 신설됐지만 안기부의 선거 개입은 중단되지 않았다.

◇ 북풍 및 남북 커넥션 의혹=역대 선거들에서 ‘북한 변수’가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그 배후에 남북 커넥션이 있어 북풍이 주문 생산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97년 대선 때 안기부의 선거개입 행태는 정권교체 뒤 국정원과 검찰이 전면적인 수사를 벌이면서 상당 부분 드러났다. 대선 직전인 12월2일 안기부는 같은해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김대중 후보에게 보낸 편지를 국민회의에 전달하고 사흘 뒤인 5일 이 편지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 언론에 보도되게 했다. 다음날 고성진 대공수사실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편지 내용을 공개하면서 “오씨 월북사건과 관련해 김대중 후보에 대해서도 의혹과 심증을 갖고 있다”고 말해 색깔 논쟁에 불을 붙였다.

다음날인 11일에는 재미동포 윤홍준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김대중 후보가 북한의 김정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12일에는 오익제씨가 <평양방송>에 나와 “고마운 김대중”을 되뇌자 안기부는 이 방송 비디오 테이프를 방송사에 배급했다. 13일 재미동포 김영훈 목사와 임춘원 전 의원 등이 일본 도쿄에서 “김병식 북한 사민당 중앙위원장이 김대중 후보한테 보내는 편지를 받았다”며 공개하고, 오씨가 2차 방송 연설을 했다. 대선 이틀 전인 16일에는 윤홍준씨가 서울에서 3차 기자회견을 연 뒤 곧바로 출국했다.

검찰은 이런 일련의 ‘북풍’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오익제·김병식 편지 사건 등은 남북관계 주도권 장악을 위해 상대하기 쉬운 후보의 당선을 유도한다는 ‘디제이 불가론’에 입각한 북한의 공작에 권영해 안기부장 등 안기부 수뇌부가 ‘편승’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또 안기부가 가지고 있던 정보에 거짓 사실을 짜깁기해 윤홍준씨에게 20만달러 등을 주기로 하고 기자회견을 사주한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김병식씨의 편지를 안기부 공작원인 ‘흑금성’이 베이징에서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나는 등 안기부와 북한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또 국내의 한 인사가 12월1일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 회장과 전화통화한 내용을 안기부에 보고한 문건에는 박씨가 “△김대중 후보가 71년 도쿄에서 김병식한테 20만달러를 받았으며 △오익제가 월북하기 전 김대중 후보와 모든 것을 토의했고 △오씨를 통해 향후 북한과 교류를 기도했던 내용들을 일본 방송 등에 폭로할 계획”이라며 “김대중의 대북 관련 사항을 이회창 진영 및 관계 당국에 제공해 활용하는 것은 한국 정서상 불가능하므로 외국 언론 플레이를 하기로 했으니 한국 정부에 이를 미리 알려 대처하도록 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 보고서에는 또 ‘박씨가 북한 통전부 부부장 전금철과 긴밀히 협력 중’이라고 적고 있다. 박씨가 북한 고위층과 협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한내 특정 세력과도 북풍 문제를 상당한 정도로 조율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하게 내비치는 대목이다. 이런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수사발표 때 “오익제씨 기획입북설의 진위와 안기부나 정치권이 북한을 사주해 일련의 편지들을 보내게 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실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96년 총선 대북 식량지원 미끼로 무력시위 요청
92년 총선 홍사덕후보 흑색선전물 조직적 살포
92년 대선 김기춘 전 법무 등 ‘초원복국집 사건’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남북 커넥션 존재 여부를 두고서는 96년 4·11 총선 직전 벌어진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과 관련해서도 강력하게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장학로씨 비리 사건 등으로 인해 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되던 여권은 이 무력시위 사건으로 압승했다. 이와 관련해 97년 <시사저널>은 안기부 특수공작원들이 대북 공작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접촉한 북한 대남 공작 수뇌부와의 대화를 담은 녹음 테이프에 △4·11 총선 직전 무력시위 배경 △대북 식량 및 물자 지원을 대가로 북풍(무력 시위)을 요청한 한국 정부 기관과 핵심 인물 △한국이 비밀 지원한 물자와 돈을 댄 한국 기업들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선거 참패가 예상되자 여권이 대북 밀사를 동원해 북한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지원해 주는 대신에 총선 전에 ‘적정한 수준의 무력시위’를 해 달라는 주문이 있었고, 이후 실제 대북사업을 하고 있던 ㅎ·ㅅ·ㅈ·ㄷ그룹 등을 통해 비밀 지원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판문점 무력시위 직전인 96년 3월 진로그룹 고문 김아무개씨가 비밀 방북한 사실이다. 97년 대선 직전 휴전선 부근에서의 무력 시위를 요청했으나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총풍’ 사건의 주범인 한성기씨가 역시 진로그룹 고문이었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총풍 사건에 대해 “북한의 대선 관련 동향을 알아보는 차원을 넘어서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모의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지만, 한씨는 검찰 및 법원에서 일관되게 자신이 무력시위를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과 관련해 또 한가지 관심을 끄는 대목은 국정원의 태도다. 국정원은 98년 10월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한 안기부 입장’을 발표하면서 “4·11 총선 당시 판문점 북한군 출몰사건의 진상도 밝혀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줄 것”이라고 밝히고, 99년 11월에도 <연합뉴스>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당시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고, 현재 국정원의 공식 언급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북풍 사건에서 남북 커넥션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게 하고 있다.

◇ 흑색선전물 살포 등 선거운동=98년 북풍 수사 과정에서 권영해 안기부장이 97년 대선 직전 영남·충청 지역 출신 안기부 직원 200여명에게 여비까지 주어 가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원운동을 벌이도록 직접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안기부의 선거 개입이 처음 명백히 드러난 것은 92년 14대 총선 직전 안기부 관계자 4명이 홍사덕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물을 뿌리다 붙잡힌 사건이다. 역대 선거 때마다 색깔론이나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는 정체불명의 흑색선전물이 광범위하게 살포된 것의 꼬리가 잡혔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검찰과 법원에서 ‘팀장인 한기용씨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친구의 부탁으로 개인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처리되면서 모두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이 사건과 관련해 <신동아>는 99년 익명의 안기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당시 정형근 수사국장(현 한나라당 의원)이 과장급 간부를 불러 흑색유인물 작성을 지시하고 배포하게 했으며, 여러 팀이 움직여 홍사덕 후보 선거구 외에 다른 2개 선거구에서도 유인물 살포가 이뤄졌다”며 “국장이 지휘부 지시 없이 그런 일을 결행할 수 없음은 안기부에 근무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 의원은 이 기사와 관련해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

◇ 관계기관 선거대책회의=92년 한준수 연기군수는 14대 총선 관권개입 사실을 고백(양심선언)하면서 연기군에 안기부가 주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설치돼 안기부 도 부지부장과 군담당 안기부 정보관, 군수, 경찰서장 및 민자당 후보의 친동생이 참석해 선거 진행상황을 일일이 점검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한씨의 업무일지에는 92년 3월16일 1차 대책회의에서 안기부 윤아무개 부지부장이 “돈 안 쓰고는 선거 못한다. 청와대에 긴급 요청해 놓았다”고 여당 후보의 자금상황을 점검했으며, 그날 오전 일어난 박희부 국민당 후보 폭행사건과 관련해 대군민 홍보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적혀 있으나 검찰 수사에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당시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앞으로 관권을 동원해 대통령이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싸우다 지는 편을 택하겠다”며 “일체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금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석달여 만인 12월11일 대선을 앞두고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및 이 지역 시장, 경찰청장, 안기부 지부장, 기무사 지대장, 교육감, 지검장,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모여 선거대책을 논의한 사실이 사진 및 녹음 테이프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들은 이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신문사 간부들을 매수하며 △여당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눈감고, 다른 당은 엄격히 수사하도록 하며 △상공회의소 등 민간단체를 이용해 유세장에 인력을 동원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 사건도 수사 결과, 김 전 장관이 재직 때 자신을 도와준 기관장들에게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단순한 모임이었던 것으로 발표됐다.


선거철은 간첩단사건의 계절?

◇ 선거 때 집중 발표되는 간첩단 사건=백태하씨의 책처럼 선거 때마다 ‘여당에 유리한 충격적 사건’이 발표됐다. 67년 5·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4월21일엔 간첩 2명 생포, 1명 사살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되는 등 무장간첩 및 간첩사건 5건이 잇따라 발표됐다. 71년 대선 때는 선거 1주일 전 보안사가 서준식씨 등이 포함된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경찰·중정이 간첩 및 간첩단 사건 5건을 잇달아 쏟아냈다. 당시 서준식씨 구속영장은 보안사에 체포된 지 50일 만인 4월18일 발부됐다. 이날은 당시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장충단 공원 유세가 있었고, 고려대 학생 4천명이 안암동 거리에서 기동순찰대 4천명과 육탄전을 벌이는 등 교련 반대시위가 최고조에 이른 날이기도 했다.

87년 대선 보름 전인 11월30일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도 최근에는 ‘조작설’ 차원뿐 아니라 이런 측면에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희가 북한의 지령에 따라 폭파한 것이 맞다 하더라도, 혹시 남북 커넥션에 따라 폭파가 주문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92년 10월 터져나온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도 발표가 대선 두달남짓 전이었고,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비서 이근희씨 및 민주당 부대변인 김부겸(현 열린우리당 의원)씨가 구속되는 등 주로 야당을 겨냥한 수사 및 ‘언론 플레이’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선거를 겨냥해 실체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어르고 달래고...후보사퇴공작

◇후보 사퇴 공작 등=중정이나 안기부가 개입해 야당의 유력한 후보나 여당 표를 잠식할 무소속 후보를 사퇴시킨 사례는 60년대부터 무수히 많다. 이 가운데 잘 알려진 사례로는 90년 대구 서갑 보궐선거에서 정호용 당시 무소속 후보를 사퇴시킨 사건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 육사 11기 동기인데다 그 전까지 막역한 친구였던 정씨가 공천에 탈락한 뒤 무소속 출마를 결행하자 여권 표 분산을 막기 위해 공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안기부 직원들은 정씨를 미행하는 한편, 정씨 처남인 한국은행 간부 김아무개씨와 제2금융권 유아무개씨 등 정씨 측근들을 불러 정씨의 재산 관계를 조사했다. 결국 100억원대의 정씨 비자금이 확인됐고, 이를 바탕으로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이 정씨를 만나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92년 14대 총선에서는 경북 경주에서 서수종씨가 현역 의원인 김일윤씨를 밀어내고 공천을 받았다. 그러자 김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다 후보 등록이 시작되기 직전 부인과 함께 출국했다. 공천을 받은 서씨는 안기부 정치판단국장 출신이었다. 이 총선에서 또 5공 때 민정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권정달씨가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다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급히 미국으로 출국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되고 있다.
특별취재반(사회부/ 김인현 이순혁 박주희 기자, 정보자료부/ 박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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