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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2.24(목) 17:19

총재까지 지정해 “야당 만드시오”


△ 1980년 12월1일 뉴서울호텔에서 열린 민주한국당 발기인대회에서 발기인들과 내빈들이 폐회에 앞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당시 제1야당인 민한당은 중정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관제야당이었다. <81년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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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확신하건대, 과거와 같은 중앙정보부의 월권적 업무수행과 근무자세는 언론을 비롯해서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정은 국가안보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 참신하고 헌신적인 기구로 발전해야 합니다. (중정은 이제) 국내외 대공정보 및 정책자료 수집 등을 주로 하되, 모든 기관과 모든 부서를 드나들며 간섭하던 일은 일체 없을 것입니다.”

    1980년 4월15일 중정 부장서리에 취임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같은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히며, 조직 축소를 약속했다. 물론 이런 방침과 약속은 곧 ‘거짓’임이 드러났다. 1981년 1월1일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꿔 달았지만, 각종 정치공작은 1990년대까지도 여전히 ‘남산’의 주요 업무로 남았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1년 내란 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 받을 당시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관제야당 창당=1979년 ‘12·12 사태’와 80년 5·17 비상계엄 확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기성 정치인들을 ‘싹쓸이’했다.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씨와 동교동계 인사들을 내란음모죄로 구속 기소하고, 10·26 직전 박정희 정권의 공작으로 의원직에서 제명당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가택 연금시켰다. 김종필 총재 등 공화당 주요 인사들도 부정축재자로 몰려 퇴진을 강요받았으며, 나머지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정치규제라는 이름의 족쇄가 채워졌다.

    이렇듯 기존 정당과 정치인을 ‘깨끗이’ 정리한 신군부는 ‘새 정치판’을 짜면서 중정에 야당 창당 임무를 맡겼다. 중앙정보부가 창설 직후 ‘공화당 사전조직’을 통해 여당을 창조했다면, 안기부로 바뀌기 전 중정의 마지막 임무는 여당의 위성정당 만들기였던 셈이다.

    5공 전반기 제1야당이었던 민한당 창당 실무작업을 주도한 신상우 전 의원(전 국회부의장)은 1986년 낸 <고독한 증언>이라는 책에서 중정이 개입한 창당 과정에 대해 자세히 털어놨다.

    “정치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유치송씨는 책임자(총재)가 되고, 신 의원은 뭐랄까, 말하자면 조직을 도맡아 하는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80년 11월 ‘남산’의 간부로부터 이런 통보를 받은 신씨는 “중정에서 창당 작업에 참여할 신진 인사와 정치규제 해제 대상 정치인 10여명씩의 명단을 전달해 왔다”며 “이들을 창당 작업에 동참시키고, (조직책과 공천자) 인선 작업은 매일같이 그 내용을 사전에 알려줘야만 했다”고 밝혔다. 중정은 야당 참여자를 미리 선별했을 뿐 아니라, 일부 운영비를 보조하고 전국구 후보들의 당비 헌금 한도액(1억원)까지 친절하게 정해줬다. 정치규제자의 친인척, 친 김대중 인사, 해직 언론인 등은 공천에서 제외하도록 엄격히 관리하기도 했다.

    △  중정과 안기부는 끊임없는 정치공작을 통해 강성 야당 대신 협조적인 야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은 1983년 가택연금된 가운데 5·17 3주년을 맞아 23일 동안 단식을 벌인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종래의 여·야 개념은 없어지고 모두 우당(友黨) 관계로 형성돼야 한다’는 신군부의 의도는 남산을 통해 충실히 관철됐다.

    깡패 동원 야당공작=1987년 4월20~24일, 통일민주당 창당대회를 열려던 20여개 지구당이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100여명의 ‘주먹’들에게 차례로 ‘점령’당했다. 이들은 집기를 부수며 사무실에 난입, 대회를 준비하던 당원들을 폭행하고 내쫓았다.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은 “당 내부의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며 돌아갔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폭력배들에게 쫓겨 거리를 질주하며 도망가는 모습이 연출됐고, 창당대회는 지구당사가 아닌 인근 식당과 길거리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이것이 이른바 ‘용팔이 사건’으로 불리는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이다.

    전 국민적 민주화투쟁 분위기가 무르익던 당시 신민당은 분당의 소용돌이에 서 있었다. 이민우 총재와 이철승 의원 등이 내각제 개헌 지지 의사를 공표하자, 김대중·김영삼씨가 70여명의 의원, 지구당 위원장들과 함께 신민당을 탈당했다. 이들이 ‘호헌 철폐,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며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자, 폭력배들이 나선 것이다.

    야당의 강력한 항의에도, 수사는 1년이 넘도록 진전이 없었다. 정권이 바뀌고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던 88년 9월에야 ‘용팔이’(본명 김용남)와 이선준 당시 신민당 청년부장이 경찰에 붙잡혔다. 검찰은 김영삼·김대중씨의 반대 진영에 있던 이택희, 이택돈(신민당) 두 의원이 배후임을 밝혀내고 관계자들을 구속한 뒤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 취임 뒤인 93년에 이뤄진 재수사 결과 이 사건 배후에 안기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는 강성 야당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전두환 정권에 협조적이었던 두 의원에게 5억원을 건넸고, 이들 두 의원이 ‘용팔이’에게 창당방해를 사주한 것이다. 검찰은 장씨가 건넨 5억원 중 일부가 ‘용팔이’가 동원한 폭력배들의 숙박료로 지불된 물증도 찾아냈다. 하지만, 장씨는 “내가 혼자서 결정한 일”이라고 진술해 더 이상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YS 견제계획서’와 후보사퇴 공작=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 넉달뒤인 1990년 4월,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노란 봉투’를 들고 청와대를 찾았다.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김 대표는 “아직도 안기부가 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이 봉투 안에 있는 문건이 안기부가 작성한 제거계획서”라며 해명을 요구했다. 노 대통령은 “단순 동향보고였다”며 김씨를 달랬고, 청와대 비서실과 안기부는 문서 유출자를 찾느라 법석을 떨었다. 뒷날 언론 보도를 통해 문건의 존재가 확인됐고,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문건 내용은 ‘제거’가 아닌 ‘견제’ 방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여당 의원들에 대한 ‘관리’도 여전히 안기부의 몫이었다. 다만, 이전 정권 때의 물리적 폭력 보다는 좀더 ‘세련된’ 방법이 동원됐다.

    90년 대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호용(육사 11기) 전 의원을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이 ‘협박’해 사퇴시킨 데 이어, 92년 11월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처남 김복동 민자당 의원(사망·육사 11기)이 중부고속도로 동대구 나들목에서 안기부 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가 민자당을 탈당해 국민당에 입당할 뜻을 밝히자, 노 대통령이 김씨를 찾았고 안기부가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해 김씨를 ‘모신’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는 “(김 의원 탈당은) 집안 문제이므로 대통령이 그 경위를 듣기 위해서”라고 ‘납치’ 이유를 밝혔다. 안기부는 정치 공작에 나선 것이 아니라, 대통령 집안일 심부름을 한 셈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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