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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2.22(화) 15:31

“친일은 짧다. 그러나 대가로 받은 땅은 영원하다”


△ 대표적 친일인사 송병준.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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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와 민족을 일본에 팔아넘긴 대가는 무엇인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선인들의 지혜가 있지만, 황금만능시대에 ’이름의 값어치’는 ’황금’ 앞에서 무력하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실정법은 ’사유재산권 보호’의 이름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한다.

    민족을 팔아넘긴 당사자들은 일제로부터 봉토·은사금과 더불어 후작 남작 백작 등의 귀족 칭호를 받았고, 그 후손들은 조상의 친일 대가로 얻은 땅에 대해 굳건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름은 간 데가 없지만, 매국의 대가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방된 나라의 법률은 오히려 친일의 후손들이 역사의 격동기에 잃어버린 ‘잊혀진 땅’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유재산권 수호’의 이름으로.

    친일파 후손들의 ’내 조상 땅을 돌려주오’ 승소율 50% 넘어

    지난 97년 이완용의 증손자가 부동산 관련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계기로 친일파 후손들의 ‘조상땅 찾기’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친일파 후손의 재산반환소송은 현재까지 이완용 후손 17건 송병준 후손 4건, 이근호 후손 5건, 윤덕영·이재극·이해창·이기용·남장희 후손 각 1건 등 31건(시가 3~4천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조상땅 찾기 소송은 50%를 웃도는 높은 승소율을 거뒀다.

    최근에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일제시대 법무대신을 역임했고, 남작 작위까지 받은 이근택의 형 이근호의 손자가 일제로부터 받은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확인하는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하기도 하는 등 친일파 후손들에겐 ‘로또 당첨’과 같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 대표적 친일인사 이재극.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현재 법원에서 심리중인 6건 땅값 3000억 넘어

    현재 법원에서 심리가 진행중인 사건은 송병준·이근호·윤덕영 관련 소송 6건으로 대상 토지는 약 14만평에 시가 3000억원이 넘는다. 이근호·윤덕영의 후손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법’이 제정(2004년 3월2일)된 이후에도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근호 후손은 지난해 10월15일 경기도 화성시 소재 700평의 토지에 대한 재산반환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이근호 후손들은 경기도 오산시 궐동,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경기도 안성시 소재 토지에 대한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며, 윤덕영 후손들도 경기 파주시 임야 2525평에 대한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다.

    송병준 후손들은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군부대 토지 13만3000여평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제기해 1심이 진행 중이다. 인천 미군부대 토지는 시가 30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송병준 보유 토지만 95만평, 시가 수조원

    특히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과 송병준이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 토지가 95만평으로 시가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병준은 80만평 규모의 토지와 임야를 일제시대에 제공받았으며 이완용도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를 조사한 상황에서 14만5000평의 토지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국가자료가 정리된 곳이 주로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향후 전면적 조사가 이뤄진다면 이들 명의의 일제시대 부동산 규모는 수백만평 이상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민족문제연구소 백동현 연구사는 지난해 9월 공청회에서 “이들의 재산은 대부분 일제침략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비자금과 은사금으로 재산을 축적한 것”이라며 “매국 행위의 대가로 형성한 재산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은 과거의 매국행위를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자는 논리와 같으며, 환수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대표적 친일인사 이완용.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97년 이완용 후손 땅찾기 소송 승소 이후 크게 늘어

    1990년대 이전에는 1건에 불과했던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이 활발해진 데는 이완용 후손의 재산반환 소송 승소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97년 서울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권성)는 “반민족행위자나 그의 후손이라고 해서 재산에 대한 법의 보호를 거부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는 ‘사유재산의 법적 보호’ 논리를 내세워 친일파 후손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친일파 후손의 재산반환 소송 재판과정에서 판례로 이용돼 왔다.

    당시 재판부는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는 등의 죄를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1951년 2월14일 시행 3년여 만에 폐지됐고, 이후 관련법이 입법된 적이 없다”며 “일제시대 반민족적 행위를 한 사람들이나 그 후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률도 현재 제정·시행되지 않는 마당에 단지 막연하게 정의나 국민정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법원이 그 의무를 위배해 국민의 평등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법치주의 구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친일재산환수특별법’ 제정으로 ‘땅찾기’ 원천봉쇄하겠다!”

    광복 60주년,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을 맞아 친일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망동’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49·인천 부평을)은 친일행위자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 특별법’을 이달 중 발의할 예정이다.

    최 의원이 마련한 이 법안은 일제 식민통치에 협력,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과 작위를 받았거나 을사보호조약 등의 체결을 주장한 고위공직자를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고, 이들이 당시 취득했거나 이들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국가가 환수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은 최 의원이 작년 2월에도 발의했지만 선거법 개정, 총선 등 정치일정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도 못해 본 채 폐기됐으며, 17대 국회 출범 후인 지난 9월에도 공청회를 여는 등 법안의 재추진 의지를 피력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가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장기 공전돼 발의 자체가 무산된바 있다. 최 의원은 현재 이 법의 발의를 위해 의원서명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 누리꾼 “친일재산 환수 특별법 제정 시급”

    시민단체와 누리꾼들은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을 제정해 ‘친일파 후손의 땅찾기 소송’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흥사단은 “해방된 지 60주년이 지났지만 친일파의 땅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라며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잘못된 과거의 행위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객관적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올바른 형태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특별법’ 제정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야후>가 2만2200명을 상대로 ‘특별법 제정’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89%(1만9867명)이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10%(2135명)에 그쳤다.

    <야후>의 ‘sunmin4716’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지금이라도 친일파 후손들에게 나라땅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을 빨리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으며, ‘ryubk2001’는 “친일파 재산 소급 적용해 국유화하고, 독립유공자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의 ‘행복한집’은 “조국을 배신한 자들의 재산은 그 후손들의 것이 아니다. 전부 국가재산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보수성과 정치인들의 무관심이 ‘친일청산 가로막아’

    친일파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의 보수성과 정치인들의 소극적 태도도 비난받고 있다.

    <야후>의 ‘kks9314’는 “역사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가 불쌍하며, 친일 청산하는 법을 만들지 못하는 부끄러운 정치인을 가진 우리가 불쌍하게 느껴진다”고 개탄했다. ‘hamkh1960’는 “선거를 통해 친일파 재산문제에 소홀한 정치가들에게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썼으며, ‘limpositive’는 “아직까지 친일파 문제가 처리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뭐 했나. 정신차려라”고 충고했다.

    <다음>의 ‘난꾼이다’는 “현 정치인들이 문제여서 친일파 후손들이 버젓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네이버>의 ‘whang840’는 “친일자손들이 법조계에 상당수 포진해 있기 때문에 친일파의 손을 들어주는 거다”라고 꼬집었다.

    현재 <다음> ‘아고라(http://agora.media.daum.net/agr/board_list/petition/1749/)’에서는 누리꾼들의 여론을 모아 ‘친일파 후손의 토지반환’에 항의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사유재산 침해’와 ‘소급입법’vs‘3.1운동 및 임시정부 계승 헌법정신 수호’ 논란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친일재산환수특별법’의 전망은 밝지 못하다. 반민족 행위자나 그 후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가 헌법에 보장된 ‘사유재산 침해’와 ‘소급입법’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지난해 9월 공청회 당시 소급적용,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이 법의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며 법안 제정에 반대했다.

    그렇다고 해서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상급심의 파기환송으로 인해 판결취지가 퇴색되고 말았지만, 2003년 친일파 이재극 관련 소송에서 서울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이선희)는 “반민족행위로 얻어진 재산은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며 원고의 소를 각하 판결해 주목을 받은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3.1운동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고 법원은 헌법기관으로서 헌법정신을 구현하고 헌정질서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며 “이 같은 헌법정신으로 볼 때 반민족행위자가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의 보호를 구하는 것은 현저히 정의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반면 헌법을 수호하는 모입의 이승환 변호사처럼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재까지 친일재산환수법에 대한 법조계와 정치인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용규 의원쪽은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이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할 예정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10여명도 서명에 참여하고 있어 의견수렴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밝혔지만 넘어야 할 고개도 만만치 않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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