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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2.21(월) 18:23

중앙정보부 부장실 스피커로 ‘실시간 국회 감시’


△ 1979년 5월 신민당 당권을 놓고 맞붙은 김영삼과 이철승의 대결에도 중앙정보부가 개입해, 신도환에게 접근해 이철승과의 연대를 주선했다. 그러나 결과는 김대중의 지지를 얻은 김영삼의 승리로 끝났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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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공작 사령부’

    1960~70년대 정치인들은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를 이렇게 이해했다. 그 시절 중정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여야를 넘나드는 정치공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산 부장실에는 국회의사당과 연결된 스피커가 설치돼 의회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됐고, 몇몇 ‘남산 장학생’ 의원들은 국회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하기도 했다. 중정은 이를 바탕으로 의원 회유부터 야당의 총재, 대권 주자 결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치공작을 진행했다. 정치자금이라는 ‘당근’과 물리적 폭력이라는 ‘채찍’을 양손에 쥔 중정은 대통령의 수족으로서 한국 정치사의 막후 실력자였던 것이다.

    ◇ 야당 당권 개입 = 1970~71년 신민당 당수, 대선후보 경쟁에서 남산은 ‘타협’에 능했던 유진산 후보를 밀었다. 그에 반해 야당성으로 무장했던 젊은 김영삼, 김대중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기에, 이들을 견제하며 유진산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중정이 나섰다. 당시 김계원 중정 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유진산 의원에게 자금을 건낸 사실 등을 인정하고 있다.

    79년 5월 신민당 총재 경선에서는 ‘체제참여 개혁’을 외친 이철승(현 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씨를 밀기 위해 또 다른 후보였던 신도환 의원에게 접근해 이철승과의 연대를 주선했다. 김재규 중정 부장은 강경파였던 김영삼 의원의 총재 경선 불출마를 위해 자신의 공관으로 김 의원을 불러 계보원 불기소 처분 등 당근을 제시하며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10·26사건 뒤 변호인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야당 공작을 위한 ‘재료’를 얻기 위해 의원들의 꼬투리를 잡는 일은 다반사였다. 70년 중정은 야당의 재력가였던 김세영 의원을 사퇴시켰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의원의 영리업체 겸직 금지’ 규칙 위반이었지만, 실제로는 김 의원이 당시 대표적인 진보 잡지였던 <사상계>를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영리업체 겸직 의원은 공화당에도 10여명이 있었으나, 의원직 사퇴는 김씨가 유일했다.

    71년 총선에서는 김재화(재일동포) 신민당 전국구 후보가 중정 직원을 대동한 채 야당 중진들 앞에서 후보 사퇴 뜻을 밝혔다. 당시 회견에 배석했던 중정 이용택 수사과장(11·12대 민정당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당시 동포사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여야가 해외 동포 출신에게 공천을 주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이를 신민당에서 어겨 ‘조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해명이 설사 사실이라해도, 여야의 정치적 합의 내용 이행 감시도 중정의 업무였다는 얘기가 된다.

    ◇ 공화당 사전조직 = 5·16쿠데타가 일어난 이듬해인 1962년 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일부 핵심 참모들과 함께 비밀 정치조직체를 꾸렸다. 이영근 차장 책임 아래 중정 직원 강성원(현 강성원우유 회장)씨 등이 ‘재건동지회’라는 이름 아래 법조·언론·교육 등 분야별 주요인사 포섭 작업을 진행했다. 민정이양 때 쿠데타 주도세력이 참여할 정당을 만들기 위한 ‘공화당 사전조직’의 태동이었다.

    “5·16 이듬해 20대 청년 몇몇이 찾아와 ‘5·16 혁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직운동을 하는데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김종필 당시 중정 부장의 측근들이었다. 하루는 마포 당인리 발전소 부근 어떤 집으로 데려가더니, 서너평 좁은 다다미 방에 혼자 들여보냈다. 깡통 하나 주며 소변도 안에서 해결하라고 했다. 몇시간 동안 스피커를 통해 왜 혁명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며, 과거 정권이 어떤 잘못을 했는 지 등의 주장이 흘러나왔다. 옆 방에도 사람 말소리는 들려왔으나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공화당 사전조직 참여 제의를 받은 서영훈(당시 대한적십자사 청소년부장·전 민주당 대표)씨는 “마치 간첩들이 받는다는 밀봉교육 같아 겁이 났다”며 “청년들이 입당원서를 쓰라고 했지만 ‘적십자 일이 평생 할 일’이라며 겨우 거절했다”고 회상했다. 조직의 결성과 교육 내용, 참여 인사 등에 대한 내용은 쿠데타 주체들에게도 비밀에 붙여졌다. 중정은 또 사전조직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증권파동, 새나라자동차 사건 등 ‘4대 의혹사건’을 일으켜 또 다른 파문을 낳게 된다.

    ◇ 장기집권 공작의 산실 = 1972년은 남북 관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해였다. 이후락 중정 부장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뒤, 자주적 평화통일 모색에 남과 북이 합의했다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것이다.

    온 국민이 통일의 기대에 들떠 있던 뒷편에서는 중정이 남몰래 박 정권의 장기집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소는 궁정동 안가. 박 대통령이 7년 뒤 살해당하는 ‘그때 그 장소’에서 중정 요원들과 어용 학자들이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이런 내용은 국회의원, 국무위원들은 물론 남산의 일반 간부들과 청와대 경호실장에게까지도 비밀에 부쳐졌다.

    10월17일 공식적인 유신 발표로 계엄령이 선포돼 국회가 해산됐다. ‘강성’ 야당의원 10여명은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일반 의원들이 줄줄이 남산에 불려갔다. 차기 총선에 출마하려면 ‘유신 인정’ 각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중정 ㅈ국장이 찾아와 ‘유신을 인정한다는 전화 한 통만 해주면 정치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했으나 거부했다”는 김상현 전 의원은 “이 제안을 거절한 덕분에 혹독한 고문과 함께 2년여 동안 감옥에 갇히고 18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고초를 겪었다”고 말했다. 중정의 회유와 폭력 아래 대부분의 의원들은 ‘국회에서 유신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지지 서명을 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신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추인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인선도 중정의 몫이었다. 1972년 전북 순창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됐던 조희삼(전 군산시의회 의원)씨는 “중정 허락이 있어야 대의원 출마가 가능하다는 것은 당시엔 상식에 속했다”며 “나 또한 어렵사리 조정관 허락을 얻은 뒤에야 후보에 등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신에 앞선 1969년 3선 개헌도 중정 공작의 결과였다. 김형욱 부장이 직접 나서 여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한편 야당 의원들을 회유 협박했다. 한편으로는 야당 소속의 조흥만, 성낙현 의원 등이 개헌지지 성명을 내도록 조종하기도 했다. 물론 “적지 않은 정치자금”(김형욱 회고록)이 주어졌다. 반면 김영삼 의원은 자택 앞에서 괴 청년에게 초산 테러를 당하는 등 개헌 반대 의원들은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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