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한겨레 | 씨네21 | 한겨레21 | 이코노미21 | 초록마을 | 교육과미래 | 투어 | 쇼핑

통합검색기사검색

한토마

사설·칼럼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 국제 | 문화 | 과학 | 만평 | Editorials | 전체기사 | 지난기사

구독신청 | 뉴스레터 보기

편집 2004.11.24(수) 17:43

도시땅값 크게올라 더이상 떠날 엄두 못내


△ 지난 18일 열린 충남 논산시 채운면 이화초등학교 학예회에서 어린이들이 ‘사랑으로’ 노래를 수화로 공연하고 있다. 논산/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관련기사

  • <상>노인과 아이들
  • <중>땅은 정직하다지만



  • 우루과이라운드10년-우리농촌은 화정리 사람들

    <상>노인과 아이들
    <중>땅은 정직하다지만
    <하>떠난 사람 돌아오는 사람

    논산 채운면 이화초등학교에서 열린 학예회를 보던 김양기(72·여·가명)씨는 손자 양재환(10·가명)의 공연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말없던 손자가 다른 애들과 어울려 피리를 불고 수화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아이 엄마는 우울증을 앓다 재환이가 첫돌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아빠는 대전에서 직장을 다닌다. 김씨는 “세상 다할 때까지 뒷바라지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쓰럽다”며 한숨을 내쉰다.

    한영희(12·여·가명)의 할머니도 눈물을 훔치는 사정은 김씨와 같다. 영희는 11년 전 도시로 간 아빠와 엄마가 이혼한 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맡겨졌다. 젖먹이를 받아든 뒤 보낸 그 세월을 생각하면 새삼 설움이 복받친다.

    서대원(59) 교장은 “가정이 깨진 아이들이 많아요. 시골 학교는 대부분 사정이 비슷할 겁니다”라고 했다.

    이화초등은 전교생 63명 가운데 재환이, 영희와 같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거나 가정이 깨진 아이가 20명이다. 아이 부모들은 젊을 때 도시에 나가 생활하다 실직하고 생활고에 쪼들려 가족이 해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 한쪽이 타계하거나 이혼하거나 아이만 맡기고 홀연히 사라져 아예 소식이 끊긴 경우도 적지 않다.

    영희와 같은 아이들은 불과 삼사년 전만 해도 전교 통틀어 네댓이었다. 이 정도면 교사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관심을 갖고 지도할 수도 있었다. 최근에는 한 학기에 2~3명씩 늘고 있어 제대로 손을 쓰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서 교장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들은 방과후 학교에서 운영하는 특기·적성 교육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면 소재지 학원을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다.

    '가정 깨진' 아이들 학기당 2~3명씩 유입
    전교생 3분의 1 할머니 손에

    화정리는 10년 동안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다. 전반 5년보다 후반의 감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떠나는 인구가 유입 인구보다 많아서 발생하는 사회적 감소는 갈수록 줄어든다. 더 떠날 사람이 없어서다. 그럼에도 인구 감소가 빨라지는 이유는 사망인구가 출생인구보다 많기 때문이다. 1990년대 전반에는 1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출생해 자연적 감소가 5명이었다. 반면, 95년부터 7년 동안에는 19명이 사망했지만 단 1명이 출생했을 뿐이다.


    40년 전 화정리 최고 부자는 박원갑씨였다. 마을에는 그의 흔적이 없다. 문전옥답이 50마지기를 넘고, 형제·조카 등 식구만 15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50마지기면 동네 땅을 다 갖고 있을 정도였다. 20년 전만 해도 논 한 마지기 팔면 도시 가서도 비슷한 면적의 땅을 살 수 있었다. 박씨네가 시골 땅 팔고 대전 중심지에 큰 건물을 사 부자가 됐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 중농으로 꼽히던 윤치원씨도 우루과이라운드 얘기가 한창이던 90년대 초입에 마을을 떠났다. 윤씨 외에도 어지간히 농사를 짓던 이들이 그즈음 집 팔고 땅 팔아 빚 갚고 마을을 등졌다. 마을 사람들은 떠난 사람 대부분이 도시에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을 거라고 전한다. 조병근(64)씨는 “고향을 떠나면 몇년 동안은 소식이 전해지는데 예외없이 5년 정도면 소식이 끊기지유”라며 “농사지을 때 각오로 부지런히 살면 셋방살이인들 못 살아 가겠어유”라고 말했다.

    “인생 마무리하러” 피폐한 삶 안고 귀향도”

    이영주(54·가명)씨는 중학교 교장인 형이 취업을 알선해줘 도시에 안착한 운좋은 경우다. 손바닥만한 종답을 부쳐 일가족이 빠듯하게 사는 모습을 본 형이 대전의 한 학교에 임시 관리직을 주선해 이삿짐을 쌌다. 그는 두 남매 교육을 위해 미련없이 고향을 떠났다. “우리들이야 뭘 해 먹어도 살 수 있지만 애들에게는 좋은 것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잖아유.” 셋방을 전전해온 어려운 살림이지만 아이들이 대학원까지 진학해 ‘제대로’ 커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젠 떠나고 싶어도 떠나기가 어렵게 돼가고 있다. 예전엔 도시 땅값과 농지값이 별 차이가 없어 땅 팔아 나가면 어느 정도는 자리잡을 수 있었다. 되레 도시 땅값이 크게 올라 기반을 잡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반면 농촌 사람들은 웬만한 땅뙈기를 팔아서는 도시에 나가 전세금도 마련하기 힘들게 됐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마을을 떠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화정리도 이때 이후 마을을 떠난 사람이 거의 없다.

    정진복(57)씨는 이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도시행을 단행한 경우다. 그가 농사를 접고 화정리를 떠난 것은 2001년이다. 13마지기 논을 팔고 아내가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보태 대전에 작은 집 한 채를 샀다. 그래도 2년여 떠나지 못하다 3년 전에 눈 질끈 감고 이사를 해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서울로, 대전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배웅할 때만 해도 설마 내가 떠나랴 했던 그였다.

    "애들 교육위해 고생 각오" 도시로
    "타향살이가 쉬운가…고향이 편안"
    95년이후 28명 마을로 들아와

    “타향살이가 쉽겠어요? 지금도 심란하면 직행버스 타고 화정리로 갑니다. 고향을 지키는 동네 형님들 만나 술 한잔 하고 사는 얘기 하다보면 속이 후련해집니다.” 그는 “더 나이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다.

    화정리 이웃 동네 김경민(56·가명) 박준기(45·가명)씨는 빚에 쪼들리다 밤에 몰래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은 “농사짓다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어 이웃에 인사도 못하고 몰래 떠났다”며 “오래됐지만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전했다.

    95년 이후 화정리에는 28명이 새로 들어왔다. 상당수는 도시의 삶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이혼한 뒤 부모와 함께 살러 오는 경우도 있고, 김영자(73·여)씨네처럼 40여년 만에 스스로 돌아온 사람도 있다. 김씨는 “시아버지가 젊을 때 도시 가서 돈 벌라고 권해 서울에서 노동도 하고 장사도 하며 아들 3형제를 키웠다”며 “고향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 그동안 모아둔 돈을 갖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박미영(42·여·가명)씨는 결혼해 대전에서 살다 아들딸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택시 기사를 하던 남편은 딸이 태어나자마자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다. 박씨는 근처 인삼가공공장에 다닌다. 몸이 약해 정부 보조금을 받는 처지라서 농사는 해볼 엄두를 못 낸다. 박씨는 “남편이 집을 나간 뒤 살아갈 길이 막연해 부모님을 찾았다”며 “도시에서 취업하느라 이리저리 떠도는 것보다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안정적일 것 같았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장사를 하는 이춘원(56)씨는 얼마 전 동네 사물(농악기구)이 낡아 못 쓰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벌을 구입해 기증했다. 마을 유지 아들인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마을에는 그 사물을 칠 사람이 없다. 추석 때 고향을 찾은 사람들로 겨우 놀이패를 꾸렸지만 꽹과리와 징을 너무 오랜만에 잡아선지 예전 같은 가락이 나지 않았다. 사물은 그냥 마을회관에 있다.

    화정리는 이제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는 일도 없다. 마을 상여가 사라진 지는 5년 이상이 됐다. 주민들이 대부분 노령층이어서 장례 품앗이를 하려 해도 변변한 음식 준비가 안 된다. 화정리에서 상여가 사라지는 동안 논산에만 장례식장이 3곳 생겼다. 화정리 마을은 이제 떠난 사람을 실은 영구차가 와도, 근처 선산에 누가 와서 묻혀도 그가 누구인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특별취재팀

    |


  • [농어촌문제] “ 어민 생존권 보장하라” ...02/16 19:10
  • [농가부채] 진도 농민들 대파 갈아엎어...01/10 18:21
  • [농어촌문제] 빚독촉 시달려온 40대농민, 차량과 함께 투신자살...11/29 16:48
  • [농어촌문제] 도시땅값 크게올라 더이상 떠날 엄두 못내...11/24 17:43
  • [농어촌문제] 탈농→학교 통폐합→탈농 ‘악순환’...11/24 17:41
  • [농어촌문제] 농사꾼, 여성이 절반넘어...11/24 17:40
  • [농어촌문제] 제발 이번에는…‘로또농사’...11/23 18:58
  • [농어촌문제] 후계농 지원자 해마다 줄어...11/23 18:57
  • [농어촌문제] 대농들도 “앞날 불안” 탄식...11/23 18:42
  • [농어촌문제] 농사도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11/22 19:00
  • [농어촌문제] 농사꾼 41%가 65살 이상...11/22 18:59
  • [농어촌문제] 주민 3명 중 1명이 60~70대...11/22 18:45
  • [농어촌문제] 주민 3명 중 1명이 60~70대...11/22 18:11
  • [농어촌문제] 후계농업인들 무더기로 농촌 떠나...10/13 19:42
  • [농가부채] 농가부채·카드빚 상환독촉에 농민 자살...01/30 09:06
  • [농가부채] 농가부채 추가 경감‥예산 80% 증액...09/29 14:12
  • [농가부채] 농지경매 속출‥`농가부채 악화'...09/22 14:29
  • [농어촌문제] 한나라, 농어촌 부채이자 1%로 인하추진...09/09 11:50

  • 가장 많이 본 기사

    [사회]가장 많이 본 기사

    •  하니 잘하시오
    •  자유토론방 | 청소년토론마당
    •  토론방 제안 | 고발합니다
    •  한겨레투고 | 기사제보

    쇼핑

    한입에 쏘옥~
      유기농 방울토마토!

    바삭바삭 감자스낵!!

    속살탱탱 화이트비엔나소시지~
    딱 1번만 짜는 초록참기름~
    건강한 남성피부 포맨스킨~

    여행

    신개념 여름 배낭의 세계로
    2005 실크로드 역사기행!
    천년의 신비 앙코르왓제국
    전세기타고 북해도로~!

    해외연수/유학

    캐나다 국제학생?!?
    세계문화체험단 모집
    캐나다 대학연계 프로그램
    교환학생 실시간 통신원글

    클릭존

    남성,확실한1시간대로?
    고혈압관리-식약청인정1호
    ◈강남33평아파트 반값입주
    강원도 찰옥수수 9,900원
    [속보]영어가 느리게들렸다

     

     
     

    인터넷광고안내 | 제휴안내 | 개인정보보호정책 | 지적재산보호정책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사이트맵 | 신문구독 | 채용

    Copyright 2006 The Hankyor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