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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22(월) 18:45

주민 3명 중 1명이 60~70대


△ 우루과이라운드 10년이 남긴 농촌의 초고령화에서 충남 채운면 화정리도 예외가 아니다. 추수를 앞둔 지난 10월8일 오후 화정리 논둑길을 나무지팡이를 든 한 노인이 낫을 들고 지나가고 있다. 논산/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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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루과이라운드10년-우리농촌은
    화정리 사람들


    <상>노인과 아이들
    <중>땅은 정직하다지만
    <하>떠난 사람 돌아오는 사람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된 지 10년이 흘렀다. 정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업 구조조정에 82조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쌀 추가개방 협상의 타결을 눈앞에 둔 지금, 그동안의 노력과 투자가 무색할 만큼 농촌은 이전 그대로의 불안감으로 더욱 거센 개방파고 앞에 놓였다. 정부가 다시 119조원을 들여 강력한 대책을 펼 계획이라고 하지만 농촌을 짓누르고 있는 상실감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농촌은 어떻게 변했을까? 충청남도 농촌 마을 화정리를 찾아 그 세월이 남긴 것을 추적했다.


    10년전 40명 넘었던 초등학생 이제 9명뿐
    “회갑 잔치하면 웃어요”82살에야 일손 놔

    아침 8시 넘어, 대문을 열고 세살배기 규민이가 강아지 친구 검둥이와 아장아장 걸어나온다. 마을 대농 김득중(57)씨 손자다. 행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옆집 양희열(75)씨가 콩 널던 손을 거두고 황급히 다가선다. 양씨는 하던 일을 잊은 채 아이 머리를 보듬고 쓰다듬고 한다.

    규민이는 마을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마을의 ‘옥동자’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을 전후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화정리는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가물에 콩나듯 잦아들었다. 하나도 보배인데 김씨는 지난 4월 ‘둘째손주’를 얻었다. 두 아이는 부락 평균 나이를 1살 정도 낮췄다.


    △  충남 논산시 채운면 화정리 마을은 대전에서 서남쪽으로 60㎞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얕은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주민 대다수가 벼농사를 짓는 전형적 농촌마을이다.

    하지만 그 나이는 1년만 지나면 간단히 회복된다. 화정리는 말 그대로 ‘초초고령’ 마을이다. 일반적으로 65살 이상 주민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불리는데 화정리는 마을 인구 166명 가운데 65살 이상이 51명이다. 10명 가운데 3명이 노인인 셈이다.

    마을 최고령은 이경재(96)씨다. 최고령 이씨 외에 농촌 기준으로 ‘진짜 노령층’이라고 할 만한 80대가 4명이다. 70대와 60대가 마을 주민의 36.1%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장년층’을 구성한다. 50대 ‘청년’들은 해가 지날수록 줄어 이젠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박원화(65)씨는 10년 전만 해도 마을에 장정들이 제법 됐다고 기억한다. “면민 체육대회 달리기는 우리가 맡아놓고 휩쓸었지. 관록 있는 동네여!”

    “사람 귀하다보니 동네잔치 8년전 사라져”
    50대 ‘청년’도 갈수록 줄어 손꼽을 정도
    달리기 휩쓸던 면민 체육대회 이젠 구경만
    지식들 떠나고 홀로 사는 노인도 11명

    동네 노인들은 체육대회 얘기가 나오자 “해방 뒤부터 40여년 달리기만은 다른 마을에 진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채운면 면민 체육대회는 해마다 8월15일 광복절에 채운초등학교에서 열린다. 50년대 오주환, 60년대 윤흥수, 70~80년대 서기동·박호식 …. 주민들은 화정리의 달리기 전통을 이어온 역전의 용사들을 떠올린다. 도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한 박호식씨를 두고 “얼마나 빠른지 반바퀴나 앞서 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들은 세상을 떴거나 도시로 떠났다. 이제 선수 구성은 불가능하다. 면민 체육대회가 열려도 읍면 소재지 ‘청년’들의 잔치일 뿐이다. 화정리에서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사람 구경하려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화정리 마을에 사는 초등학생은 모두 9명이다. 세운 지 45년 된 이화초등학교는 마을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어 15분 정도 걸어 도착한다. 고학년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원버스를 타고 면소재지 보습학원에 간다. 어두워져야 돌아오는 아이들의 하루 생활은 도시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지난 10월8일 오후 논산시 채운면 화정리 인근의 한 경로당에서 마을 노인들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논산/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이화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3명이다. 10년 전 이 학교 전교생은 140명이었다. 이화초등 출신으로 대학을 마친 뒤 마을로 다시 돌아온 김영신(28·교사)씨는 “그 때만 해도 화정리에서만 이화초등에 40여명이 다녔고, 동네에는 학년별 동급생들이 5~9명씩 함께 살았다”고 기억한다. 당시에도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을 때여서 중학교까지는 동네에서 다니고 여유가 있거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대전과 공주로 유학갔다. 더러는 중학교 때부터 도시 학교로 진학했다.

    형편이 닿지 않는 집 아이들은 장학금 받을 정도가 아니면 근처 실업계 학교를 다닌다. 농사가 싫어 한두해 부모의 논밭일 도우다며 머물다 취업한다고 서울이나 대전, 인근 면 소재지 등으로 나간다.

    최정묵(62)씨는 “사람이 귀하다 보니 제기차기, 그네뛰기, 윳놀이 같은 건 면 단위 행사 때나 구경한다”며 “정초 길 건너 우기리, 아랫동네 심암리 사람들과 전쟁치듯 쥐불놀이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고 한다. 조병근(64) 이장은 “회갑잔치를 하면 주민들이 웃지유 …. 칠순잔치는 면소재지 식당에서 주로 하고, 돼지잡아 하루종일 놀던 동네잔치는 7~8년 전인가부터 마을에선 볼 수 없지유”라고 했다.

    65살을 기준으로 은퇴나 노동력 상실 여부를 얘기하는 노인 기준은 도시 얘기일 뿐 화정리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65살 이상 인구를 15~64살 인구로 나눈 노인 부양비는 95년 28.7에서 2002년 53.1로 갑절 가까이 늘었다. 마을 평균나이가 높아짐에 따라 노동 지속 나이도 계속 높아져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한 70대 후반까지도 농사를 지어야 하고 또 대부분 그렇게 한다.


    화정리 고령노인 가운데 11명은 홀로사는 노인이다. 고춘화(76·가명)씨는 3남10녀를 뒀으나 남편에 이어 아들 셋이 모두 일찍 세상을 떴고, 딸들도 모두 출가했다. 덩그러니 남은 집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다. 한때 국민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혜택을 받았지만 “사위가 많은데 무슨 지원이냐”는 이유로 제외됐다. 그는 논이나 밭둑에 자라는 나물을 캐 팔면서 겨우 살아간다. 임씨는 “돈이 떨어져 온몸이 아파도 몇 달이나 병원도 못 갔다”면서도 “살기 빠듯한 애들에게 손 벌릴 수야 없지”라며 눈물을 훔친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는 9가구 20여명이다. 홀로사는 노인 가운데 이영숙(67·가명)씨와 안화자(70·가명)씨, 문숙희(69·가명)씨는 고씨와 달리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지원을 받는다. 세 사람 모두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날품 품삯과 월 30만원 정도인 정부 지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동네 근처 양문교회의 홍성철(42) 목사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한 영세농민과 독거 노인들한테 정기적으로 밥과 반찬을 나눠드린다”며 “처음에는 도시 사는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 반찬까지 받는다는 소문이 날까 거부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채운면을 담당하는 김희정(35) 사회복지사는 “논산시내만 해도 동마다 사회복지사가 5명씩 근무하지만 면 단위는 2명이 업무를 맡아 자주 형편을 살펴드리지 못한다”며 “어려운 이들이 늘고 있는데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에 기준에 맞지 않아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화정리에는 이제 나이 탓에 힘에 부쳐 농사에서 손을 놓는 농민들이 늘어간다. 최근에 손 놓은 사람만 5~6명에 이른다. 대체로 70살 정도가 되면 더는 일을 하기가 어렵다.

    윤종채씨는 82살이 되던 지난해 일손을 놓았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60마지기 농사를 혼자서 소 몰고 지었다. 그는 “맘만으론 얼마든지 농사지을 수 있다”면서도 “힘이 부치고 주변에서 편하게 살라고 해 일손을 놓았다”고 한다. 편하기는 하지만 앞을 생각하면 마냥 막연하다.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 그는 혼잣말을 한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반=이홍동 부국장, 이근영 사회부 차장,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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