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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0.29(금) 18:14

독일, 당시 국교단절 검토


67년 윤이상씨등 서울로 납치 '동백림사건' 항의

독일 외무성 보관문서 확인

지난 1967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으로 발표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대해 독일 정부가 한때 한국과의 국교 단절까지 검토했지만, 한국의 국내 사정을 고려해 한발 물러났던 것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독일 외무성문서보관소 현장조사를 통해 29일 밝혀졌다.

또 독일에 있는 한국인들을 납치하는 과정에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독일 주재 외교관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외교관 3명이 독일 쪽의 요구로 한국에 송환됐고, 한국 검찰은 체포된 일부 인사에게 “죽도록 공산주의와 싸우겠다”는 성명을 신문에 발표하도록 종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백림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유럽에서 활동하던 음악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 194명을 체포해 발표한 간첩단 사건으로, 당시 검찰은 윤이상 등 6명에게 사형, 이응로 등 4명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독일 등 서방국가의 거센 항의에 밀려 이들을 전원 석방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1967년 12월14일치 독일 연방의회 외무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독일 정부는 독일에서 체포돼 본국으로 송환된 사람들의 구명을 위해 아직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개발지원계획 2개를 철회하고 한국 정부와의 외교 단절을 고려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북한 무장간첩의 ‘청와대 습격사건’이나 미국 선박 푸에블로호의 납북 사건 등으로 긴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국교 단절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보고서는 “독일 정부는 한국에 대한 외교적 조처들을 매우 신중하게 내려야만 한다. 한국에 결정적인 조처를 취한다면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태도가 경직될 뿐”이라며 독일의 고민을 에둘러 표현했다.

보고서는 또 중앙정보부가 독일에서 이들을 체포해 갈 때 폭력이 사용되진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의 협박과 회유가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한국 검찰은 이들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강제 ‘전향서’를 써 신문에 게재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주재 독일 대사 페링이 1967년 8월3일에 본국에 보낸 ‘독일 국적자 하이드룬 강의 구속’이라는 문건에는 강씨가 기소되지 않고 풀려나는 대가로 67년 7월28일치 <조선일보>에 정부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며 죽을 때까지 공산주의와 싸울 것을 약속하는 성명을 싣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성명은 검찰이 편지지 2장 분량으로 작성했지만, 강씨와의 협상 과정에서 분량이 크게 줄었다.

이 사건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독일 대사의 기록도 관심을 끈다. 페링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뒤 작성한 1968년 2월23일치 보고서는 “한국 사람들은 중앙정보부의 활동에 대한 독일의 반대 여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은 서방 민주주의의 자유를 감탄하기보다는 그것을 약점으로 평가절하한다”고 적고 있다.

강인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는 “제대로 된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미국·독일 등 외국 기록물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며 “추가 분석작업을 통해 아직 베일에 가려 있는 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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