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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8.29(금) 10:09

“한국의 모스크바가 보수1번지로 바뀐 것은 패권주의 때문”


△ 허종 연구원은 대구의 보수성은 특정 이념의 성향을 띠기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패권주의적 성격이 강한 '뿌리없는 보수'라며 "예전의 열린 마음과 진취적인 기상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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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한겨레> 대구 민심기행

  • 경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허종 연구원
    <인터넷한겨레> 인터뷰

    "대구의 보수성은 특정 이념의 성향을 띠기보다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패권주의적 성격이 강합니다."

    경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허종(40) 연구원은 대구의 보수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보수성을 가리켜 '뿌리없는 보수'라고 표현했다.

    허 연구원은 2001년 대구지역 교수들과 함께 <역사속의 대구, 대구사람들>이라는 책에서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구시민들에게 "예전의 열린 마음과 진취적인 기상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한 신문은 이 책을 '대구시민에게 몰매 맞을 각오를 하고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인터넷한겨레>는 일곱 살 때부터 대구에서 살며 대구의 역사와 대구사람들을 연구해온 '대구토박이' 허종 연구원으로부터 '원조 보수'의 과거와 현재를 들어봤다.

    "한때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였다"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눈여겨본 적 있는가. 득표율 70:30 수준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조봉암 후보를 전국에서 고르게 앞섰다. 그런데 이 비율이 30:70으로 뒤집어진 지역이 딱 한 곳 있었다. 바로 대구다."

    정말 그랬다. 허종 연구원이 내놓은 자료에는 당시 두 후보의 대구지역 득표율이 '27.7 : 72.3'으로 조봉암 후보의 압승이었다.

    당시에도 지역 감정이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말기로 치닫던 자유당 시절, 대구 시민들이 강화도 출신의 무소속 후보 조봉암에게 몰표를 던진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허 연구원은 '뿌리 깊은' 대구의 진보성에서 그 배경을 찾았다.

    국채보상운동, 항일투쟁, 노동운동, 좌익활동의 근거지 대구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서 시작된 대구 시민의 단결력은 1960년까지 항일투쟁과 노동운동, 좌익활동으로 모습을 달리하면서 진취적으로 이어져왔다. 대구가 한국의 모스크바라고 불린 것도 이런 역사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일제 시절 대한광복회의 본부가 있었던 곳도 대구였다.

    미 군정기에 꾸려진 좌익단체 '대구시인민위원회'가 대중조직이었던 반면 이승만의 노선을 따른 '조선독립경북촉진회'는 지역유지의 모임이었다. 1960년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학생운동 역시 대구가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대구의 진보는 1960년 이후 숨통이 끊기고 만다.

    대구의 진보성, 숨통이 끊기다

    "61년 5·16 쿠데타와 함께 박정희가 등장하면서 대구는 지배세력에 편입했다. 대구가 정치, 경제의 중심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시민들의 의식에도 패권주의가 자라났다. 대구가 원조 보수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이후 30년 동안 계속된 군사 독재 속에서 대구는 'TK'라는 이름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도시의 외곽이 커지는 만큼 대구의 보수성은 '진화'하지 못했다는 것이 허 연구원의 설명이다.

    "공단과 함께 시작된 대구의 보수는 패권주의가 그 핵심이다. 정권의 수혜 속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보수였지 특정 이데올로기가 길러진 것은 아니었다. 대구 보수의 뿌리는 물 위에 떠 있는 셈이다."

    역사 속의 대구가 뿌리깊은 진보성을 길러왔다면 보수성은 그 뿌리가 '물위를 떠다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반증은 '패권'을 잃고난 뒤 대구 시민들의 반응에서 곧바로 불거졌다. 허 연구원의 얘기다.

    "TK시대가 막을 내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로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작 대구가 받아 온 특혜가 별 게 없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대구 경제의 문제점을 짚어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는데 결국 산업구조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부가가치를 창출할 대표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보수 기질이라 옷 디자인은 좀..."

    그는 '대표 기업'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대구의 보수적인 성향을 한 원인으로 꼽았다.


    "60년대까지 갖고 있던 진취적인 성향이 살아있다면 대구의 섬유 산업은 얼마든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의 특혜 속에서 성장해 온 대구는 적극적인 투자 없이 현상유지만을 바랐다. 지금 드러나는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대구는 지금 섬유 산업으로 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지난 25일과 26일 대구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 대부분은 대구 경제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밀라노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밀라노프로젝트는 정부와 대구시, 섬유업계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 대구를 이탈리아 밀라노와 같은 세계적 패션산업도시로 키우자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대구의 보수성은 디딤돌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대구를 찾은 노무현 대통령은 대구지역언론사 편집국장들과 가진 오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구의 직물 산업이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요.(중략) 대구의 보수적인 기질 때문에 (의류의) 디자인이나 색감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대구 민심의 근원은 '반발 심리'

    허 연구원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대구 민심 또한 '뿌리없음'으로 설명했다.

    지난해 대선 결과에 대한 허 연구원의 분석이다.

    "일정부분 지역감정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겠지만 이회창 후보에게 던진 대구의 몰표와 노무현 후보에게 쏟아진 광주의 몰표는 성격이 다르다. 광주의 표심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면 대구의 몰표는 민주당이 싫다는 심정적인 이유가 크다. 한나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민주당이 싫기 때문에 쏟아진 몰표라는 점이다."

    한나라당 관계자 역시 이같은 대구 정서에 대해 같은 뜻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대구지부 전태흥 홍보팀장은 "대구의 민심은 한나라당 지지가 아니라 민주당이 싫다는 것"이라며 "외지에서 바라보면 한나라당이 대구의 맹주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같은 맥락에서 대구라는 지역구가 '무주공산'인 것처럼 보수성 역시 사상누각의 관념들"이라고 말했다.

    'TK'를 'DG'로 바꾸면 달라질까

    바로 이 대구에서 지금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둘러싼 이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회 흥행에 '키'를 쥔 북한 선수단과 연관된 문제여서 더욱 관심을 끈다.

    허 연구원은 "대구 시민들이 북한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라며 "다만 대회가 끝나고 난 뒤 대구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변화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허 연구원 등을 비롯한 대구 지역의 일부 학자들은 'TK'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오명을 털고 'DG'라는 새로운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자고 대구 시민들에게 제안했다.

    대구가 영문약칭을 '티케이'(TK)에서 '디지'(DG)로 바꾸면 불필요한 격음화가 사라지는 만큼, 대구의 '이념적 정서'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유니버시아드대회로 인해 대구는 또 하나의 실험에 마주 섰다.

    <인터넷한겨레> 김현 박종찬 기자 hkim@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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